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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정환 Mar 27. 2022

기록되진 않지만 내가 있어야 하는 세상

모래의 여자

지겨운 일상생활을 지내다가 2박3일의 휴가를 내고 자신이 무슨 이유 때문에 어디로 가는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자신의 취미이자 목표로서 사막지역에서만 사는 희귀벌레를 채집하여 그 벌레의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고파 모래구덩이 아래에 집들이 있는 신비한 어느 마을에 도착한 한 남자가 있다.



모래의 불모성은 흔히 말하듯 건조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끊임없는 흐름으로 인해 어떤 생물도 일체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에 있는 것 같았다. 일년 내내 매달려 있기만을 강요하는 현실의 답답함에 비하면 이 얼마나 신선한가.


그는 늦은 시간까지 벌레채집에 정신이 팔려 그날 밤 마을에 살고 있는 어느 젊은 과부의 집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면서 2가지 사실을 알게되는데, 가장 깊은 모래구덩이 아래 있는 여인의 집은 지붕에서 온종일 모래가 흘러내려와 매일 삽질을 하지 않으면 그 집을 포함한 마을의 다른 집들까지 모두 모래구덩이에 파묻혀버리기 때문에, 모래가 촉촉해지는 매일 밤마다 몇시간을 퍼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집이란 사실과, 하룻밤 신세지는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으로 흘러내리는 모래를 퍼나르는 일을 도와주려 할 때 돌아온 여자의 말을 처음엔 조금 이상하게 느꼈으나 그 다음 날 그녀의 집에서 밖으로 올라가기위한 사다리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통해 그녀 혼자서 매일 그 일을 하기가 꽤나 버겁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과 그녀가 그로하여금 그녀의 집에서 머물며 계속 모래를 퍼내게끔 하도록 감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럼 나도 거들어볼까 / 괜찮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첫날부터 어떻게, 미안해서... / 첫날부터?... 아직도 그런 이상한 소리를... 내가 여기 머무는 것은 오늘밤뿐이라고요. / 그런가요...


남자는 이런 저런 방법으로 점점 무너져가는 듯한 모래구덩이 집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만다.


그가 살던 세상은 누구 한명 없어도 아무런 문제없이 돌아가는 세상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자 더욱 갈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먼저 (어쩌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을)곤충을 발견하고 그 곤충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도 그저 기록되기만 할 뿐 기억되진 않고 그전과 똑같이 '내가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세상'에서 다시 살아가는 것과, 자신이 살던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못하지만 그가 없으면 그와 날 사랑하는 모래의 여자가 모두 죽을지도 모르는, '내가 없어선 안되는 세상'에서 사는 것..


내 이름이 기록되지만, 내가 없어도 되는 세상에서 사는 것과

내 이름이 기록되진 않지만, 내가 없으면 안되는 세상에서 사는 것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떠난 남자는 점점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숨기게 된다.

그런데 남자를 정말 필요로 한 그곳도 과연 그 남자여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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