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밀수’ 류승완 감독)
토론토 국제 영화제 기간에 영화 ‘밀수’ 시사회가 끝나고 배우감독들이 관객과 대담하는 시간이었다. 류승완 감독 특유의 세상해탈한 듯한 화법과 재치 있는 언변으로 즐겁게 시사회 분위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한 20대 초반 한국계 캐나다인이 손을 들고 자기소개를 했다.
“영화감독이 꿈을 가지고 영화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
갑자기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오~ 하는 사이도 들리며 뭔가 멋지다는 느낌을 표현했다. 류승완은 농담을 멈추고 옆에 있는 TIFF 대표 이자 그날의 사회자에게 물었다.
“저희가 시간이 얼마나 있죠?”
할 말이 많았나 보다. 그리고 자기 개인사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가난해서 카메라 살 돈이 없어서 점심값을 아껴서 카메라를 샀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 학생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지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지금 당장 만들어도 돼요. 그쪽은 어떤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30년 전의 저보다 훨씬 더 나은 역량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몇 년 안에 제가 관객이 되고 질문이 주신 분이 이 자리에서 자신의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
막연한 질문에 개인스토리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안내해 준 답변이었다. 박수와 함께 진로특강 느낌처럼 훈훈하게 시사회가 마무리가 되었다.
지금 그 일이 있고 난 후 일주일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감독이 되는 것과 영화를 만드는 것의 차이가 무엇일까? 영화 만드는 게 영화감독이 아닌가? 그런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영화감독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가 머릿속에 어떤 원형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미디어에서 비치는 봉준호, 박찬욱처럼 여러 배우들과 제작진들 사이에서 카리스마 있게 진두 지휘하고,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해서 진지한 문제에 대해 인터뷰하는 것들을 머릿속에 심어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내 경험을 비추어 보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시나리오를 쓰고, 팀을 만들고, 장비를 대여 혹은 구입하고, 리허설을 하고, 동선을 짜고, 세트를 만들고 촬영 혹은 조명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촬영하고, 이야기에 맞춰 초벌 컷을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추가 촬영 혹은 후반 녹음을 하고, 디테일한 편집(Fine cut)을 하고 영화 장면들을 확정 지은 소프트컷(Soft Lock)을 한다. 그리고 사운드 편집을 하고 믹싱을 하고, 이와 동시에 칼라색보정을 한다. 그리고 최종 편집을 마무리하고 각종 영화제에 제출을 하고 자신의 운명을 기다린다. 이 과정에서 연출자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와 자기 불안, 자기 불신, 그리고 자기 사람됨됨이를 알아볼 수 있다. 본인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어떻게 주변에게 반응하고 대처하고 자신의 하려고 하는 비전을 표출해 내는지 말이다. 그리고 현장과 후반작업과 상관없이 마지막 작품은 그간의 노력과 상관없는 디지털 파일 하나로 만들어져 전세게 수만수십만 영상 중의 하나로 유튜브에 올라간다. 뭐 물론 이건 연출자의 선택의 몫이다. 참고로 영화제에 제출하려면 무료에서부터 8만 원 10만 원까지도 심사비가 있어서 영화를 다 만들었어도 영화제에 출품하는 게 부담이 된다. 이런 현실적인 상황에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영화제에 선정될만한 작품일까?”
그럼 처음 영화를 만들려고 했을 때 차올랐던 순수함, 흥분은 사라지고 내 영화를 여러모로 뜯어보게 된다. 이미 편집단계에서 익숙해질 만큼 충분히 보았어도 또 뜯어보면 인간이 한 일이라 단점이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제출할지 말지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경로로든 세상에 자신의 영화가 공개가 되고 운이 좋으면 많은 시청자들에게 피드백을 받는다. 운이 좋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선사하고 유망 신인감독으로 떠오르겠지. 혹은 몇 달 동안 작업한 것이 나 혹은 몇몇 지인의 피드백으로만 끝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지 않으면 연추자의 단계에서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고 끝나는 경우들도 학생들 작품에서는 부지기수이고. 이런 과정들을 경험한 다음, 다음 작품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것 아닐 까?
류승완의
“영화를 만드세요.”
의미를 내 경험으로 비추어서 풀어보면 이 전 과정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매일 ‘용기’라는 것을 낸다.
관련영상 : https://youtu.be/qmJSaiMn2Wk?si=98OW32TcJAmqL1j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