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K5008 아름다운 모델이다. 아름다운 인체를 모사하여 생산된 대체신체 안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델이다.
나의 여자친구 사하는 알터이다. 그리고 나는 태어난 신체 그대로인 네처이다.
몇 주 만에 보는 햇살이 내 몸에 생기를 돋게 했다. 지구 온난화를 걱정했다던 나의 부모세대는 얼마나 무용한 걱정을 했던 것 인가. 2056년 백두산대폭발 이후 우리는 겨울 속에 살고 있었다. 잠깐씩 내리쬐는 햇살이 언젠가는 이 지독한 겨울도 끝날 거라고 말해주었다.
창 밖을 바라보는 사하의 눈이 반짝인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어느 나라의 어느 호수를 닮았다. 초록빛 호수를 닮은 그녀의 눈동자, 그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행복해진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동네 카페에서였다. 그 카페는 실시간생성형 AI 뮤직 스트리밍이 아닌 인간이 만든 2040년 이전의 음악이 나오는 몇 안 되는 곳이었다. 20세기에 지어진 주택이었던 이 카페에 나는 자주 갔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산미 가득한 원두향이 가득했다. 과거에는 누군가의 집이었을 이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카페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귀에 익은 기타 전주소리에 나는 생각을 멈추게 되었다. 이 곡은 나에게 특별한 곡이었다. 중학생 때 어느 날 꿈속에서 알지 못하는 노래가 계속 흘러나왔다. 잠에서 깨고도 꿈속의 멜로디는 잊히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하는 대충의 멜로디만으로는 그 노래를 찾을 수 없었다. 꿈속의 그 노래는 실제 하는 노래였을까, 아니면 꿈이 만들어낸 그저 의미 없는 멜로디였을까? 그 멜로디는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해 할아버지 집에 갔던 어느 날 꿈속의 노래를 다시 듣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그 노래의 CD를 가지고 있었다. <My Good Deed>라는 곡이었다. 어째서 이 노래가 나의 꿈속에서 계속 반복되었을까? 어쩌면 이 노래를 자주 들었던 할아버지와 함께 자랐던 어머니도 그 노래를 좋아했고 내가 어렸을 때 자주 들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꿈속에서 정확하게 이 노래가 계속 재생되었을 리가 없다. 초자연적인 어떤 존재가 내 꿈속에서 그 노래를 재생했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단지 나에게도 그런 비과학적인 일이 생기길 바랐을 테다.
활동 당시에도 유명하지 않았던 미국 인디 록밴드의 노래가 2058년 이 카페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아마도 내가 이 카페 있어서 그럴 것이다. 난 이 노래를 참 자주 들었었는데 뮤직플레이어의 추천 로직은 한편으로는 소름 끼칠 정도이다.
나는 <My Good Deed>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게 나 혼자가 아니란 걸 알고는 깜짝 놀랐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가에 나를 등지고 앉은 저 긴 머리의 여성이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린 듯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이 노래 아세요? 이 노래를 어떻게 아세요?”
너무나 깜짝 놀란 초록색 눈의 여성이 뒤돌아 보았다. 그때도 햇살이 비추었던 것 같다. 나는 반짝이는 그녀의 초록색 눈을 바라보았다. 그 호수 속에 빠져 들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