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 이펙트 : 공포에서 미학으로, 사회적 학습이 만든 시선
나는 사춘기 시절부터 대학생 때까지 일기를 썼다. 성인이 된 후에는 매일 쓰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내 일기장들은 집 한편에 남아 있다. 그것들은 일기이자 시, 영화 시놉시스, 때로는 감정의 쓰레기통이었다. 너무 날것의 감정이 적혀 있어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언젠가 죽기 전에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이유로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그중 고등학생 시절 적어둔 단편영화 시놉시스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제목은 <모나리자 이펙트>.
내용은 단순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피하던 한 아이가 결국 그림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그 옆에서 당황한 부모가 아이와 대화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 시놉시스를 쓸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것은 나의 유년기 기억에서 비롯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다섯 살 무렵 살던 집, 2층에서 3층으로 오르는 계단 벽에는 ‘모나리자’의 복제화가 걸려 있었다. 20호 정도의 제법 큰 그림이었다. 왜 그런 그림이 걸려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계단을 오를 때마다 눈을 감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녀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짙푸른 음영 속에서 묘하게 번지는 미소와 눈빛은 어린 나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한 번은 너무 보기 싫어 스케치북 종이를 찢어 그림 위에 붙여둔 적도 있었다. 어머니는 그걸 보며 "이건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그림이야"라며 설명했지만, 어린 나에게 '유명함'은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했다.
당시의 나는 사회로부터 미학을 학습하기 전의 눈으로 모나리자를 보았다. 그 눈에는 아름다움이 아닌 공포가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실제로 본 그림이 아마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일 것이다. 우리는 그 신비한 미소, 스푸마토 기법, 미완의 배경 등을 '배운다'. 그리고 배운 만큼 그것을 '아름답다'라고 느낀다. 그러나 그 감상은 순수한 감정이라기보다 사회적으로 주입된 미의 언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자주 말하는 '미학의 언어성'이다. 우리가 일본어를 모르면 자막 없는 영화를 이해할 수 없듯, 미술 또한 언어의 학습 없이는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작품 감상은 시각이 아니라 언어의 체계 속에서 이뤄진다.
나는 미술사를 혼자 공부하면서 이 사실을 여러 번 체감했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부터 익숙했던 프란시스코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 '옷을 입은 마하' 작품들 뿐만 아니라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조차도 지금 보면 충격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멋스럽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이미 현대미술을 통해 훨씬 더 자극적인 이미지들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을 봤을 때 나는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이건 아무리 고야라도 너무 못 그린 것 아닌가?" 인체 비례는 어색했고, 인물은 투박했다. 그러나 지금 다시 보면 그때와는 다르다. 나는 그동안 고야의 다른 판화 연작들을 공부했고, 그 시대의 역사적 맥락과 미학적 가치들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즉, 나의 시각은 학습을 통해 변화했다.
이 경험은 한국 리얼리즘 회화를 처음 접했을 때와도 비슷했다. 권순철의 거친 인물화, 황재형의 탄광촌 풍경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그들의 진정성과 표현력은 인정했지만, 정작 감정적으로는 거리감을 느꼈다. 나는 이미 ‘시장 논리’ 속에서 학습된 미의 기준에 익숙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리얼리즘 회화(그리고 그 사조 전체)가 언젠가 사회적 학습과 시장의 인정 속에서 '시각적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이 내가 고등학생 시절 써두었던 '모나리자 이펙트'의 핵심 질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 개인적 감상이 아니다. 시간과 시장, 그리고 사회적 학습이 그 가치를 정의할 것이다. 모든 미는 결국 '학습된 감정의 언어' 속에서 존재한다.
'모나리자 이펙트'란, 그 언어를 배우기 전과 후의 간극에서 우리가 느끼는 낯섦과 익숙함의 교차지점 바로 그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