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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네이버 May 05. 2024

아내 없이 3주 살기 - 장보기

작은 부분에 진실로 들어가는 단서가 있다 - 은유

마침내 아내가 집을 나갔다. 어제 아내는 결혼 후 18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당신 없이도 잘 살 테니까, 우리 걱정 말고 잘 갔다 와"

암투병 중이신 아버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에 아내의 발걸음은 마냥 가볍지만 않았다.

조금이라도 아내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고 싶었다.

당연히 엄마의 속마음도 모르는 막내딸아이는 엄마를 꼭 부둥켜안고 강아지처럼 끙끙거리며 훌쩍인다.

첫째, 둘째도 엄마와 떨어져 지내기는 생전 처음이지만, 그래도 컸다고 덤덤한 모습으로 있는다.


아내가 마침내 공항 심사대를 항해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자, 일제히 큰 소리로 외친다.

""엄마 사랑해, 잘 갔다 와!" 마치 영원히 이별이라도 하듯 일제히 모두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인다. 

이민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공항은 늘 이별의 장소가 된다. 떠나보냄이 익숙한 곳.


"자, 얘들아 모여봐!"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 엄마 없이도 잘 살 수 있지?, 파이팅!"

7살 막내딸아이가 옥구슬 같은 목소로리 말한다. "Don't worry. I can take care of myself".

아직도 막내딸이 영어를 쓰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아내 없는 3주간, 나의 목표는

1. 절대로 아내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게 하기 (가능할까?)

2. 절대로 먹고만 살지 않기 (아내가 신싱당부를 했다!)



아내 없이 사는 나의 첫 번째 미션, 두둥~ "장보기"

.

아내가 간호 과정을 공부하기 전만에도 가끔 아내와 장을 보러 다니고는 했다. 물론 아내는 이 사실조차 부정한다. 아내가 간호 과정을 시작한 후 지난 2년 동안 '장보기'는 아내가 전담했다. 그런데 최근 아내가 장을 보고 와서는 말한다. "여보, 우리 부부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았어! 내가 장 볼 때마다 누구를 자주 만나는지 알아?" 하며 대뜸 나에게 묻는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누군데?".  "000 부부, 항상 장 볼 때마다 같이 장을 보더라. 그러니 우리도 같이 장 보러 다니자". 내 대답?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절대로 아이들과 먹고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니 아이들과 함께 장을 봐야겠다는 신박한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또 아이들도 함께 장을 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좋은 기회라 생각이 들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기 전에 한 때 지적장애인을 돕는 일을 했다. 한국으로 치면, 요양 보호사 정도 되겠다. 그때 일하면서 못이 박히게 들었던 말이 있다. "Work with them, not work for them". 직역하면,  "지적장애인들을 위해서(for) 일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with) 일을 하세요"이다. 이 말의 뜻은 지적장애인이 불쌍하다고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것은 결코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좀 시간이 걸리고, 느리고, 결과가 엉성하더라도 모든 일을 그들과 함께하라는 말이다. 예를 들면, 손수 직접 맛있는 요리를 해서 먹여주면, 당장은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좋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Work for them'이다. 그들에게 칼이 쥐어주고 당근, 호박, 감자를 썰게 해 주고. 주걱을 쥐어주고 프라이팬에 올려진 재료를 볶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Work with them'이다.. 그러면 거의 100프로 음식은 형편없다. 감자며, 당근이며 뭉뚝하게 썰려있다. 준비한 재료는 4인분인데 정작 양은 2인분이다. 하지만 그런 기회가 없으면 성장할 수 없다. 스스로 설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없다.


"좋았어! 오늘부터 그러면 Live with my children 할 거야. 절대로 Live for them 하지 않겠어!"

굳게 다짐을 했다. "얘들아, 이번 주에 뭐 먹고 싶으니, 말해봐?" 내 보물창고 '만개의 레시피' 웹사이트를 열고 물었다. 1시간 동안 세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일주일치 메뉴를 짜기 시작했다.

"한국 음식만 먹지 말자!" 둘째 딸아이가 힘주어 말한다. "좋아, 해 보지 뭐!, 먹고 싶은 것 다 말해"

그렇게 해서 일주일 메뉴가 정해졌다.

월요일: 타코(스페인어: taco):  멕시코의 전통 음식

화요일: 칠리 새우 깐풍기

수요일: 나쵸 피자

목요일: 해물 짬뽕

금요일: 불고기 샤부샤부

토요일: 피자 시켜 먹기 (내가 선택 / 나도 쉬어야 하니!)

일요일: 월남쌈


"무슨 요리든 할 수 있어!"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메뉴는 결정이 되었다.


드디어 장을 보러 마트로 출발했다.

"아들, 네가 운전해~~"

뉴질랜드는 16살부터 운전이 가능해서, 아들에게 운전을 맡겼다.


"딸, 네가 사야 할 것 잘 찾아"

"막내,  너도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다 골라!"

 

그렇게 우리는 1시간 동안

신나게 장을 봤다.


엄마와 함께 왔다면

살 수 없는 것들도 사고,


돈 생각은 안 하고,

마구마구 카트에 담았다.


시시하고,

사소한 것은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행복의 스냅숏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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