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굿네이버 May 08. 2024

여보 오늘 나 김장했어! 그러자 아내가 웃었다.

아내 없이 3주 살기 - 김치 담그기

“여보 오늘 나 김장했어!”

멀리 한국에 떨어져 있는 아내에게 카톡 영상 통화를 하며 말했다.

아내의 칭찬으로 먹고사는 나이기에 내심 ‘아내의 라이킷‘ 하나를 기대했다.


“그래, 몇 포기했는데?”

아내가 묻는다.


“진짜 많이 했어, 배추 4 포기!!”

“진짜 하루 종일 걸렸어! 죽는 줄 알았다고…”

포기하지 않고 배추 4 포기를 담갔으니 얼마나 대견한가.


그러자 아내가 폭소를 터트리며 까르르 웃는다.

“여보, 어디 가서 김장했다고 하지 마. 적어도 10 포기는 해야 김장했다고 하는 거야”.


온몸과 혼과 영을 갈아 부어 만든 김치를 무시하다니…

그 순간 가족을 향한 내 위대한 헌신과 사랑을 몰라주는 아내에게 투정을 부린다.

“깍두기도 담갔거든!”


결국 아내는 나의 거룩한 항변에 두 손 두 발을 든다.

“잘했네 잘했어, 고생했어~~”


생색내기.

나의 주특기다.

사소한 것 하나 해도 항상 생색을 내고, 칭찬받으려고 한다.

오늘도 나의 김치 담그기는 생색내기 좋은 구실이었다.


평소 아내가 해 준 김치를 먹을 때는 날름날름 잘만 받아먹기만 했다.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가끔은 ”김치가 너무 싱겁네 “하며 투정 아닌 투정까지 했다.


그뿐인가?

냉장고 속 엄마의 김치는 그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반찬이라 생각했다.

라면을 보글보글 끓어, 김치 한 조각 곁들여 후루룩 후루룩  한 젓가락 삼킬 때도

엄마의 노고, 엄마의 정성과 사랑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김치 한 조각에도 엄마의 깊은 사랑이 녹아 있고

김치 한 조각에도 남편을 향한 사랑이 스며들어 있음에도

나는 지금까지 그 맛을 느끼지 못했다.


비로소 김치를 생애 처음 담가 보고서야 깨달았다.


비록 내가 만든 김치 한 조각 집어 입안에 쏙 넣었을 뿐인데,

짠맛, 매운맛, 상큼하고 달달한 맛만이 아니라,

엄마를 향한 그리움의 맛이,

아내를 향한 고마움의 맛이,

내 입 안과 내 가슴을 가득 메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