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때를 밀지 않는다. 사우나 온탕에서 몸을 푹 담그면 노곤 노곤해지고 힘이 빠진다. 이럴 때 힘을 주어 온 몸을 박막 문지르는 행위는 내게 있어 노동과도 같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동네 목욕탕을 다닐 때를 제외하고는 스스로의 의지로 때를 민적이 별로 없다.
때를 미는 것이 오히려 피부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기사는 내게 매우 좋은 변명거리다. 물론, 피부건강에 좋은 때밀이 방법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어쨌건 내게 있어 그저 '귀찮은 일'일뿐이다.
사춘기 때에도 여드름 한번 나지 않은 피부이기에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이런 내가 때를 밀게 된 것이다. 거의 20년 만인 듯하다.
추석 연휴 막바지, 중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고향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친구는 전국 100대 명산을 섭렵한다는 야심 찬 계획의, 주중에는 여의도 직장인, 주말에는 산을 찾아다니는 산사람이다. 그런 친구가 내가 사는 곳 인근으로 등산 왔다며 시간 되면 만나자는 전화다.
새벽부터 산행에 나선 친구는 온몸이 땀에 젖었을 터. 친구의 제안으로 우리는 만나자마자 바로 사우나로 직행한다. 코로나로 한동안 사우나를 가지 않았기에 가보고 싶던 차였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온탕으로 직행한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뜨거운 물이 선사하는 '시원함'에 온몸이 부르르 떨린다. 탕에서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얼마 전 안타깝게 세상을 뜬 친구 얘기를 하며 안타까워하기도, 미래 퇴직 후 뭐할지 상상하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탕에서 나와 작디작은 목욕탕 의자에 걸터앉는다.
"OO아, 등 대봐". 친구가 대뜸 말한다.
"나 원래 때 안 밀어" 나는 바로 거절한다.
"안돼. 너 때 밀어 주려고 거금 1천 원 주고 때밀이 샀어. 꼭 밀어야 해." 완고하다.
더 이상 대꾸할 새 없이, 친구는 '표면에 돌기가 빳빳하게 서 있는, 영롱한 초록색을 뽐내는, 한 번도 인간의 살결을 경험하지 못한' 때밀이를 꺼내 들고, 무자비하게 내 등을 벅벅 문지르기 시작한다. 친구의 손이 수차례 왕복하니, 오랜 세월 내 등에서 기생하던 때가 힘없이 나가떨어진다.
"후두득, 후두둑"
리드미컬하게 떨어지는 때에 희열을 느끼는 듯 친구의 손놀림에 힘이 더해진다. 거기에 템포까지 빨라진다.
'따갑다. 등이 따갑다.'
쓰라린 등 때문에 눈물이 찔끔 나려 한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때 즈음 분주하던 친구의 손이 멈추더니, 내 등을 두 번 툭툭 친다. 다 끝났다는 신호다. 이제는 내 차례다.
"등! 딱 대"
난 호기롭게 친구의 등을 사포질 하듯 온 힘을 다해 문지른다. 하지만 0.1톤을 왔다 갔다 하는 친구는 미동도 없다. 친구의 광활한 등은 정복되지 않은 산처럼 밀어도 밀어도 끝이 없어 보인다. 친구의 등에 남은 뽀얀 살이 온통 빨개질 때까지 구석구석 손을 뻗친다.
힘이 떨어지면 팔을 번갈아 가며 손놀림을 이어간다. 그렇게 한참을 박박 문지른 끝에 나의 노동이 마침내 끝난다. 에너지 소비가 막심하다. 역시 때밀이는 내게 있어 노동이다.
하지만, 기분은 좋다. 때를 밀었다는 개운함보다는, 내 등을 스스럼없이 밀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등은 따가웠지만 마음은 따스해졌다.
"고맙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