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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와의 전쟁

감기 너 잡히면 죽는다

by 도토리

아기를 키우기 시작하며 싫어진 것이 세 가지 있다. 하나는 겨우 재운 아기를 깨우는 저녁시간 아파트 방송, 또 하나는 내 새끼 잠도 방해하고 피까지 빨아먹는 모기(평소 둔한 성격이라 아기 낳기 전엔 적선한다 생각했다), 그리고 감기다. 그중 최고 극혐이 바로 감기.


아기 낳기 전에야 감기는 그저 가벼운 질병에 불과했다. 특히 보기보다 잔병치레가 적은 나는 감기가 하루 아프고 땡할 때가 많아 병원도 가지 않는 질병이었다. 그런 감기 이 녀석, 이제는 정말 징글징글하다. 매번 소리 소문 없이 와서 우리 가족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가버린다.


얼마 전 남편이 감기에 걸리더니 그다음은 나, 그리고 어제부터 첫째까지 우리 가족 줄줄이 감기에 걸려버렸다. 이 죽일 놈의 감기를 떠나보낸 지 불과 2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또다시 돌아와 우리 가족을 괴롭힌다. 첫째는 돌 지나고부터 '감기-중이염-감기-중이염'의 무한 굴레에 빠져버렸다. 첫째가 돌아다니며 뿌리고 다니는 감기바이러스는 자연히 둘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둘째에 대한 질투가 심한 요즘, 한눈팔면 둘째 젖병이나 젖꼭지를 만지작거리고 동생 역방쿠를 자기 물건처럼 부비부비를 해대니 옮을 수밖에... 그야말로 '감기와의 전쟁'이다.


엊그제 밤 첫째가 잘 자다가 콜록콜록 기침하더니 저녁에 먹은 음식들을 다 토해냈다. 다음날에도 낮잠시간에 아침에 먹은 걸 기침하며 토해내더니 그 이후부터 주르륵 콧물이 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금요일이라 소아과에 달려가 진찰받고 약 5일분을 처방받았다. 저녁 되서부터는 콧물이 수도꼭지 틀어 논 것처럼 주르르륵 나오기 시작한다. 쌍콧물이 수시로 흐르고 아직 코를 풀거나 닦아낼 줄 모르는 첫째는 코가 목으로 넘어가 괴로워하기도 하고 홀짝홀짝 저도 모르게 먹게 된다. 옆에서 보일 때마다 손수건으로 닦아주지만 역부족이다.


밤에는 자다가 코를 들이마시거나 코가 막혀 불편해서 수시로 앵앵 거리며 깬다. 옆에 보초서는 나 역시 제대로 자지 못하지만 피곤함보다는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크다. 힘들고 괴로워하는 게 보이는데 옆에서 그저 토닥토닥 다독이며 '괜찮아질 거야 다 나을 거야'를 주문처럼 되뇌는 것 밖에 못하다니... 이렇다 보니 언제나 아기가 아프고 나면 후회와 죄책감이 크게 밀려온다.

'밖에 안 나갈걸', '마스크 단디 착용할걸', '손 더 자주 씻을걸', '영양제 까먹지 말고 매일 꼬박꼬박 챙겨줄걸' 걸걸걸걸 후회의 '걸'들이 수없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언젠가는 끝나기야 끝나겠지만 기왕이면 얼른 이 전쟁이 끝나 우리 가정이 평화를 되찾기를 바란다. 감기가 끝나면 아무 걱정 없이 꼭 끌어안아주고 뽀뽀도 해주고 밥도 같이 먹고 해야지! 감기 너 이 녀석, 이번에 끝나고 나면 다시 또 올 생각 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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