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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비니 Oct 14. 2019

어른이 된다는 건

2019년 1월 2일 어른일기



서른 살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어느 날 어느 순간 문득이었던 것 같다. 내가 '어른'이라는 말에 관심을 갖고, 어느 정도는 집착처럼 몰두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그때쯤이었다.


스무 살이면 생물학적으로, 법적으로 성인으로 인정받기 마련인 한국 사회에서 서른 살이 돼서야 조금 어른이 된 것 같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된 건 무척 이상한 소리지만 나에겐 꽤 납득이 되는 말이었다. 성인이라고 모두 어른 같이 사는 건 아니니까. 나도 그랬고.


그때는 결혼을 채 몇 달 남기지 않은 시기였고, 직장에서는 새로운 부서로 발령받아 정신이 없었던 때였다. 막바지 결혼 준비, 새 부서 적응 등 해내야 할 일들이 많아지는 만큼, 그에 반비례해 내 마음적, 신체적 여유는 줄어들어 거의 바닥을 기던 때였다.


난 그런 여유 없음, 하지만 해내야 할 일들을 포기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이제는 조금 어른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됐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해내야 할 일들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나를 덮쳤다.


어른과 어른 이전의 삶을 비교하니 그런 생각은 더욱 명확해 보였다. 어른의 삶에서 해내야 할 일은 책임져야 할 일, 그리고 인생이라는 긴 길에서 짊어지고 가야 할 일들이 대부분으로 보였다. 반면 어른 이전의 삶에서 해내야 할 일은 적거나 비교적 분명하며 그 형태는 단순했던 것 같다.


유년기에는 무럭무럭 자라기,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 잘하고 바르게 성장하기 정도 내가 꼭 해내야 하는 일, 또는 해냈으면 하는 일이었다. 그 외의 일들은 중요하냐 하지 않냐, 와 관계없이 대부분을 어른이었던 부모님과 선생님께 맡기 의존할 수 있었다.


이후 문자 그대로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슬슬 해내야 할 일들이 복합적으로 생겨 났지만 그때만 해도 많은 일들은 단순했고, 외면하며 피하는 게 가능했다. 좋은 성적 받기, 좋은 직장 구하기 등도 충분히 어려운 일이지만 지칠 땐 잠시 모른 척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덧 뭘 먹고살아야 할지와 관련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가 성큼 앞으로 다가왔, 사랑과 연애는 단순히 그 자체가 아니라 결혼 등 앞으로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다른 문제로 확대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일, 일을 하며 돈을 벌고 미래를 그리는 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는 일 등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일들이 동시에 한 사람을 점령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잠시 외면하거나 잊은 척 살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른의 일은 피하는 법 없이 우리를 기다린다. 그래서 어느 어른은 마음의 여유도, 신체적 여유도 없 고된 과정과 두려운 결과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그 일을 끝까지 해내려 부단히 버티고 애쓰 것인지 모른다. 물론 어른이 해내야 할 일은 그 일 자체로도 끝나지 않으며, 좋든 싫든 일의 결과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까지 이어진다.


어쩌면 그래서 어른의 삶은 항상 행복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해내야 할 일을 포기할 수 없는 것, 피할 수 없는 일을 마주하는 것, 어떤 일의 결과를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은 그 자체가 고통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직해지고 싶다. 행복한 척하기보다는 힘들지만 버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가진 힘과 애정, 관심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해내야 할 일에 모두 쏟아내는 썩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다 나 자신을 응원하고 싶다. / 2019년 1월 2일 어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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