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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비니 Oct 16. 2019

로드킬, 그리고 생존자와 가해자

2019년 2월 7일 어른일기


고속도로가 잘 깔려있는 한국에서 국도를 이용해 장거리를 뛰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말 그대로 빠르게 달리기 쉬운 길인 고속도로는 성격 급한 한국인에게 딱 궁합이 다. 그 위에 자리 잡은 휴게소는 각종 간식과 휴식 공간을 양 손에 들고 운전자에게 어서 고속도로 위 오르라고 유혹한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대신해 국도를 이용해야 하는 몇몇 날들이 있다. 설이나 추석 명절 아니면 황금연휴, 또는 날씨가 끝내주는 주말. 꽉 막힌 고속도로가 저속도로가 돼버릴 때다. 그럴 때는 내비게이션이 앞장서 운전자를 국도로 안내한다.


물론 차량 자체가 많은 날이기에 국도 역시 흐름은 답답하다. 하지만 일부 구간은 얼추 규정 속력을 낼 수 있을 만큼 뚫려있다. 나의 경우는 서울에서 고향 충청도를 내려가는 명절 때나 주말에 국도를 타게 되는 편이다.


고속도로와 달리 신호등이 곳곳에 서 있고 길 폭이 좁 국도를 제법 답답하지 않게 달리다 보면 그게 언제든 항상 마주치게 되는 존재들이 있다. 존재라고 부르기에는 이미 생명이 꺼진 그것들은 바로 로드킬을 당해 산산조각 난 동물들의 사체다. 사실 내가 본 대부분은 죽은 고양이들이지만 가끔은 개나 사슴 따위로 추정되는 것들이 덩그러니 도로 위에 남아 운전자를 맞이한다.


위태롭게 도로 위를 건너다가 죽음에 이렀을 그것들을 보면 당황스럽기가 그지없다. 운전 중 시야 멀리에서 그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내 마음은 쉽게 불행해다. 운전에서 자유로운 동승자는 쉽게 외면할 수 있겠지만 운전자는 꼼짝없이 그 존재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죽은 그것들을 다시 치지 않기 위해 애쓰면 애쓸수록 되레 그 대상에 집중하게 되는 상황은 불행하는 말로 부족하다.


보통은 그것들을 잘 피하며 그을 지나게 되지만 그 존재들은 곧바로 내 망막, 내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짧지만 한동안은 멀어지는 그것들을 사이드미러와 룸미러를 통해 마저 확인하 되는 것은 산산조각 난 그것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너도 이렇게 될 수 있어.'

산산조각 난 그 존재들은 내게 생명의 위태로움을 확인시켜준다. 언제 치였을까 가늠조차 되지 않, 짓뭉개진 형태로 방치된 그것들은 죽음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 문득 내게도 닥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내게 죽음은 부고 기사를 보거나 장례식장에 갈 때나 인지하는 존재, 그러니까 평소에는 그 자체가 없는 듯 잊은 채 살아가는 존재(또는 상황)다. 하지만 우연히 마주치게  이 생명 없는 존재들 내 안 깊숙이에 죽음을 각인시킨다. 그것들은 너희들도 언제든 이렇게 산산조각 날 수 있다며 지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생존자라고 불려도 좋다고 말을 건넨다.


그리고 가끔씩은 이렇게도 말을 건다.

'너도 날 칠 수 있었어.'


고양이었든, 사슴이었든 그게 생전 어떤 존재였던 간에 그것들은 그들에게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대로 숲에서 숲으로 이동하거나 먹이를 찾기 위해 떠돌다가 로드킬을 당했을 것이다. 운전자가 그들을 죽음에 이르도록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나름의 방식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존재들을 우리는 이렇게 쉽게 죽일 수 있는 건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끔씩은 어떤 존재를 죽음에 이르도록 의도하 악행을 저지른다. 저마다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을 인정하지 않 나와는 다르다며, 그 방식은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것이라고 말하며 배척하고 괴롭히고 무시한다. 그리고 결국엔 한 생명을 꺼드리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어쩌면 산산조각 난 사체들은 우리는 생존자인 동시에 다른 생존자를 언제든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잠재적 가해자라고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2019년 2월 7일 어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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