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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비니 Nov 11. 2019

마법 주문 같은 운명의 말을 만나길

2019년 1월 3일 어른일기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고요. 신라면이 맛있다고 1분 만에 됩니까? 라면이 가장 맛있는 4분 30초. 누구에게나 4분 30초의 순간은 반드시 옵니다."


TV를 멍하니 보다가 문득 배우 하정우가 출연하는 신라면 광고를 보고 눈물을 찔끔 흘릴 뻔했다. 생기가 넘치는 새해 첫 달이 아니라 개선될 기미가 없는 늦잠 탓에 그리 유쾌하지 못한 새해 첫 달을 보내고 있는 내 모습이 처량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발적 퇴사 후 수렁에 빠진 듯 늦잠을 자주 자 나는 이날도 점심이 다 돼 일어났고, 공교롭게 TV 광고를 보며 첫 끼니로 라면을 먹고 다. 입에도, 눈에도 가득 찬 것이 온통 라면뿐인 상황이 살짝 우습기도 했지만 그 웃음은 잠시뿐이었다. 하정우의 굵은 목소리가 이내 내 안의 무엇을 건드린 것 같아 내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려 했다.


그렇다고 하정우의 말이 그리 특별한 것만은 아니어서 살짝 당황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구에게나 최고의 순간(신라면으로 치면 가장 맛있는 4분 30초)이 있을 테니 조급해하지 말라는 말은 우리가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누군가에게 힘을 불어넣어줄 때 쉽게 내뱉을 수 있는 평범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은 분명 내 안을 깊숙이 파고들어 왔고 결국 내 마음을 헤집어 놓는 데 이르렀다. 그 말이 내 안의 문을 하나씩 열며 들어오는 만큼 내 머리에는 '그래, 조급해하지 말자. 조급해하다가 일을 그르치지 말자. 조급할 필요 없으니 천천히 잘해보자'라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떠올랐다. 그리고 왜인지 이런 생각이 내 안을 가득 채우는 만큼 내 은 거꾸로 가벼워지는 듯했다. 깃털처럼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뭐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평범한 말에 위로를 받고 기분이 참 좋아지는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갑작스러운 기분 변화가 참 신기하고 새롭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나 처음 들어본 말도 아닌데, 일생 중 이미 여러 번 들었을 말일 수도 있는데, 가끔 어떤 말이나 문장은 이렇게 갑자기 어느 순간 우리 안으로 들어와 큰 울림을 다.


그런 면에서 이런 말들은 단순히 말 그 자체라기보다는 마법을 거는 주문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해리포터의 법 주문불사조의 털이나 용의 심장이 들어간 지팡이가 있어야만 발동될 수 있만, 이런 주문은 귀를 통해, 눈을 통해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만으로 충분히 마법을 부린다.


하지만 우리는 이마법 주문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마음 안에 완전히 뿌리내리는 마법 주문도 드물게 있겠지만 더 많은 것들이 우리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기도 한다. 크게 감동을 받 어떤 말을 우리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쉽게 까먹는 일은 흔하디 흔하다.


어쩌면 우리는 마음 안에 평생 남아있을, 진정한 운명 같은 말을 만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글을 쓰는 행위는 어쩌면 언제까지나 나에게 울림을 주고, 언제까지나 나를 위로해주는 진정한 마법 주문을 만나는 여정인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 완전히 뿌리내릴 마법 주문을 만나기 위해 나는 더 제대로 살고 싶어 졌다. / 2019년 1월 3일 어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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