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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비니 Dec 01. 2019

미용실과도 궁합이 있는데

2019년 12월 1일 어른일기


한 달에 한 번쯤 꼬박꼬박 방문해야 하는 곳이 있다. 바로 미용실이다. 윗머리는 쏟아져 내리고 옆머리는 좌우로 뜨는 내 머리는 한 달에 한 번쯤 다듬어주지 않으면 지저분해져 내 좋은 인물을 망쳐버린다.

내 머리에 붙어있는 머리카락이라는 생체시계가 한 달이 지났다며 알려주면 나는 또 이번에는 어느 미용실을 가야 하나 민에 빠지곤 한. 지난 여름 새 집으로 이사 온 뒤 근처에 마음에 딱 드는 미용실을 운 좋게 찾아 지금은 고민이 지만 이사 전에는 한 달마다 미용실을 찾아 헤매는 '헤어 유목민' 생활 때문에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첫 신혼집이었던 이전 집은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과 핫플레이스로 떠버린 샤로수길(샤 모양의 서울대 정문과 가로수길이 조합된 이름이다. 익히 알려져 있지만 한번 더 소개한다)이 가까운 곳이어서 미용실이 참 많았다. 대충 세어도 수십 개 수준이었다.

난 그 많은 미용실 중 나에게 딱 맞는 미용실과 헤어 디자이너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헤어샵 앱을 켜곤 했다. 예전에는 길을 오가며 마주쳤던 여러 간판을 기억해두었다가 머리를 잘라야 할 때 떠올려 방문해야 했는데, 카카오헤어샵을 이용한 뒤부터는 위치를 비롯해 미용실의 여러 사전 정보를 미리 알 수 있게 됐다. 먼저 미용실을 찾은 사람들이 남긴 리뷰도 살펴볼 수 있어 난 꼼꼼히 후기를 읽기도 했다.


리뷰 대부분이 형식적인 칭찬이어서 미용실과의 궁합을 확인하는 건 내가 직접 부딪치는 방법밖에 없긴 지만 미용실을 고르는 데 투입하는 시간과 노력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 난 그런 사전 확인 과정을 거쳐 두세 곳의 최종 후보를 추린 뒤 한 곳을 정해 방문하곤 했다. 최종 선택에서 탈락한 후보가 더 나은 선택은 아까,라는 생각도 뒤늦게 들기도 했지만 그 탈락 후보들은 다음 선택 때는 최종 후보로 직행하기에 선택을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보통은 초심자의 행운일까. 새로운 미용실과 헤어 디자이너와의 첫 만남은 대개가 만족스러웠지만 이게 전부인 경우가 많았다. 첫 방문 때보다는 낫기를 바라며 한 달 뒤 다시 찾은 곳에서 난 실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상하게 두 번째가 첫 번째보다 못하면 배신을 당하는 기분이 들곤 다. 내가 지나치게 엄격한 것인가 싶어서 세 번째까지 방문하는 미용실있었지만 이전보다 나아지는 게 없는 경우가 대다다. 그럴 땐 난 연이 아닌가 보다,하고 가차 없이 떠나버리고 새 유목민처럼 찾아 헤맸다.


이렇게 내 헤어 유목민 생활은 멈출 듯 멈추지 않고 오랜 시간 이어졌었다. 그냥 기대를 버리고 지저분한 머리를 이전보다 깨끗하게 정돈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말까,라는 생각도 자주 했지만 돈 들여, 시간 들여, 알아보는 노력 들였는데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그냥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게 더 정신건강을 해치는 일 같다.

지금 안착한 미용실에서 최근 머리를 다듬다가 인간관계를 만드는 일도 문득 가장 잘 맞는 미용실 찾는 일과 비슷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장소이든, 물건이든 어떤 존재와의 관계에는 분명 궁합이 있기 마련이니까. 미용실과도 궁합이 있는데 하물며 인간관계에서는 어떻겠는가.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만들기 시작할 때 우리는 나와 맞나, 안 맞나를 확인하기 위해 주위 사람들의 평가를 듣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한다. 좋은 관계가 될 거라고 기대하며 밥을 같이 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돈을 쓰기도 한다. 때로는 온 마음을 상대에게 쏟으며 친밀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쓰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인간관계가 기대처럼 다 좋게 형성되진 않는다. 첫 번째보다 더 발전될 두 번째의 만남을 기대하지만 아쉬워 실망할 때도 있고 결국엔 맞지 않상처받고 관계가 멀어지는 경우도 많다.


투입된 재원 대비 친밀함이 크다, 작다로 모든 인간관계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쉽게 더 가까워지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분명 있다. 그럴 때면 잘 발전되지 않는 다른 인간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받기보다는 그 좋은 관계에 더욱 집중하는 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이 시간 보내고 더 많은 것을 함께 시도해보며 더 깊이 있는 관계로 만드는 것 말이다.


지금 다니는 미용실에서 커트 2번, 커트 더하기 다운펌을 두 차례 했다. 다음번에는 디자이너 선생님에게 멋있는 파마를 부탁해보려고 한다. 멋진 파마를 한 뒤에는 마음이 통하는 소중한 사람술 한 잔 기울이면 기분이 참 좋을 것 같다. / 2019년 12월 1일 어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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