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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비니 Aug 27. 2020

난임 병원을 졸업하는 기분

세 번째 시험관 아기 시술에 우리에게 와 준 콩이

아기 콩이의 임신을 처음 확인한 날. 가운데 왼쪽의 작은 검은 부분이 콩이의 '아기집'이다.

2019년 4월 초였던 그날 나는 아내와 난임 치료를 받고 있었던 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 서울역센터의 진료실을 나서며 들뜬 목소리로 말을 다가 "쉿"하는 아내의 제지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날은 우리 부부가 아기 콩이의 임신을 처음 확인한 날로, 피검사라는 화학적 방식이 아닌 눈으로 생생히 임신을 확인한 첫날이었다. 바로 초음파 검사를 통해 태아가 자랄 장소인 아기집을 본 로, 체외수정(시험관 아기) 시술 세 번째만에 아내의 몸속에서 한 생명이 자라나기 시작했음을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확인받은 기쁜 날이었다.


난 맘 같아선 병원 복도에서 "여보, 드디어 됐어!"라고 큰소리치고 오두방정을 떨면서 아내와 기쁨을 만끽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는 뜻밖에 내게 차분할 것을 요구했다. 아내는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 오르기 전까지 표정과 몸짓으로 내 들뜬 마음을 꾹 눌렀다.


기쁘고 설레는 마음은 같았지만 아내가 마음을 진정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일단 진료실 앞에서 대기 중이었던 많은 부부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나와 아내는 이전에 초음파 사진을 들고 진료실을 나서던 몇몇 선배 부부를 보며 그들의 밝은 표정을 부러워하기도, 또 우리는 언제 임신이 되려나 염려하기도 했다. 그런 부부를 본 날에는 나와 아내는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곤 했다. 아내는 진료실 앞에 마음고생하고 있을지 모르는 다른 부부가 혹시 있을 수도 있어 들뜬 마음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아직은 임신 초기라는 것이었다. 전체 40주라는 기간에서 갓 5주가 지났을 뿐이고, 더욱이 임신 초기는 맘을 놓기에는 조심스러운 시기라는 이유였다. 아내는 차 안에서 "조용히 축하하되 당분간은 차분하게 아기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조심하자"라고 내게 말했다. 그때가 돼서야 난 아기 콩이의 임신을 차분히 준비했던 것을 떠올리며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아내를 든든히 보살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난임 치료를 대하는 우리 부부의 자세


아기 콩이가 우리에게 와 준 세 번째 시험관 아기 시술 과정은 앞선 두 차례와 다를 것은 특별히 없었다. 첫 번째 시술 때와 비교해선 병원이 달라졌지만, 이미 두 번째 시술을 새 병원에서 받았기에 이 변화에는 적응을 마친 상태였다. 작은 차이라면 세 번째 시술을 위해서 다시 난자와 정자를 채취했다는 것, 그리고 아내의 몸 상태를 고려해 난자 채취 직후 바로 신선 배아를 이식하지 않고 배아를 냉동 보존했다가 이식했다는 것 정도였다.


그래도 특별히 달라진 점 하나를 꼽을 수 있는데, 바로 나와 아내의 마음가짐이었다. 적다면 적은 횟수이지만, 우리 부부는 앞서 두 번의 실패를 겪으면서 난임 치료가 기대처럼 되지 않다는 사실을, 몸도 마음도 힘든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와 아내는 난임 치료를 아예 포기하지 않는 이상 계속 시술을 받으려면 우리의 마음가짐, 자세, 태도에 변화를 줘야 한다고 공감했다.


우리는 모든 시술 순간순간, 단계 단계마다 일희일비하고 조마조마했던 것에서 벗어나 여유롭고 긴 호흡으로 치료를 받아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단거리 달리기처럼 모든 에너지를 조기에 소진하지 않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기 위해 긍정적이되 차분한 자세로 에너지를 관리하며 꾸준히 나아가 보기로 했다.


나는 '이번 역시 안 될 수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꼭 될 것이다!'라고 스스로와 아내를 격려하며 여유로운 자세로 시술받기 위해 노력했다. 아내가 세 번째 배아를 이식한 날 나는 보호자 대기 공간에서 지나친 걱정으로 마음 졸이는 대신 이식 후 아내를 어떻게 더 잘 보살펴줄지를 고민하며, 또 여유롭게 독서도 하며 차분하게 아내를 기다렸다.


우리 부부의 차분한 마음가짐은 아기 콩이의 임신이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피검사 때도 거의 유지됐다.


2019년 3월 말 우리는 배아를 이식한 지 딱 10일째 되던 날 병원에 가서 1차 피검사를 받았다(물론 실제 피검사를 받은 건 아내뿐이다). 그리고 이날 오후 '사람 융모성 성선자극호르몬(hCG)'의 수치가 266mlU/mL(이하는 단위 생략)로 나왔음을 전해 들었다. 난임부부 카페에서 소위 '안정권'이라고 불리는 수준(1차 피검사 결과 hCG 수치가 100 이상)보다 크게 높았던 수치에 나와 아내의 기분이 좋지 않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2차 피검사가 중요하니 차분하게 다음을 기다리자"라며 서로를 진정시켰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고, 2차 피검사 결과는 hCG 수치가 649로 나왔다. hCG 수치가 이틀 만에 2배 이상(약 2.4배) 안정적으로 늘어난 긍정적인 결과였다. 피검사 결과를 전화로 알려주었던 간호사 선생님은 6일 뒤 초음파 검사를 하러 병원에 오라고 했다. 나는 이때부터 구름처럼 둥실둥실 뜨기 시작한 마음을 좀처럼 다잡기가 어려웠다. 임신을 확인하고 들뜬 채 진료실을 나서던 나를 아내가 제지할 때까지는 말이다.


아기집과 아기 심장소리


초음파 검사로 임신 사실을 눈으로 처음 확인했던 날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기집’이었다. 아기집은 말 그대로 아기가 자라는 집으로 아기가 자랄수록 아기집은 커지며, 그 안은 양수로 채워진다. 물론 우리가 아기집을 처음 본 임신 5주 차에는 그 크기가 집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앙증맞았고, 그 안의 집주인의 모습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아직까지는 아기가 너무 작아서 초음파 검사로 식별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초음파 검사로 임신을 처음 확인한 날 병원은 우리에게 임신 확인일과 분만 예정일 등이 기입된 '임신 확인서'라는 것을 발급해줬다. 임신 부부는 이 임신 확인서를 이용해 임신·출산 진료비 등을 국가에 신청할 수 있다. 그리고 임신 확인서를 들고 거주 지역의 보건소에 방문하면 임산부 등록도 가능한데, 보건소는 이때 임산부에게 임신 초기에 필요한 엽산 영양제와 분홍색 임산부 배지를 제공한다. 우리 부부는 임신을 병원에서 확인받은 뒤 곧장 보건소로 향해 임산부 배지와 엽산 영양제를 다. 이중 임산부 배지는 아내가 일상생활을 할 때 사람들의 배려를 받을 수 있도록 요긴한 역할을 했다.


우리는 임신을 처음 확인한 뒤 한 달까지는 열흘 안팎의 간격으로 계속 병원을 찾으며 아기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지를 지켜보았다. 아기집을 확인한 뒤 8일 후에는 초음파 검사'난황'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난황은 엄마의 몸과 아기의 몸이 탯줄로 이어지기 전까지 태아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는 중요 역할을 담당한다.


아기 콩이의 모습을 처음 확인한 건 난황을 보고 10일이 더 지난 후였다. 임신 기간으로는 7주 4일이 됐을 때다. 초음파 검사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콩이는 크기가 1.5mm에 불과할 정도로 작았지만, 제법 여유로운 모습으로 아기집 안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었다. 난 처음 콩이와 인사하며 '이렇게 작은 한 생명이 고맙게도 우리를 찾아왔구나'라고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은 초음파 검사로 아기의 심장소리도 들려줬다. "추크 추크 추크" 소리를 내며 어른의 그것보다 빠른 속도로 뛰었던 아기의 심장 소리는 '엄마 아빠, 건강하게 자랄게요!'라고 힘차게 말을 거는 것처럼 들렸다. 가슴이 뭉클하고 벅찬 순간이었다.


임신 안정기가 주는 커다란 행복


아내의 뱃속에서 아기가 자라나고 있음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처음 임신을 확인했을 때처럼 마음이 들뜨는 일은 드물었다. 차분한 마음으로 임신 초기를 보내기로 아내와 약속한 것도 이유였지만, 유산 가능성이 걱정된 탓이 컸다. 유산이 드문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던 나는 '어려운 난임 치료로 겨우 임신했는데, 혹시 잘못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이런 긴장은 임신 13주가 넘을 때까지 지속됐다. 임신 13주까지를 흔히 임신 초기라고 말하는데, 이 기간은 전체 임신 기간 중 유산 가능성이 높은 편에 속한다. 특히 임신 초기 유산은 염색체 이상 등 태아 자체가 더 자랄 수 없는 상황일 때가 많아서 난 이 기간이 어서 흘러가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다행스럽게 콩이는 13주를 잘 넘겨주었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2019년 6월 말 아기가 16주가 됐을 무렵 난임 치료 병원을 졸업하게 됐다. 임신이 안정기로 접어들면서 이제는 난임 치료가 아닌 출산 준비를 전문으로 하는 곳으로 병원을 옮겨야 했기 때문다. 물론 출산하는 그 순간까조심에 조심을 거듭해야 지만, 이때부터는 염려하기보다는 콩이와 만날 미래를 기대해도 좋을 시기였다. 임신 안정기는 우리 부부에게 기대 이상의 커다란 행복과 안정감주었다.


다음 편 - 아기 태명을 짓는 일
https://brunch.co.kr/@sangbin78/82
이전 편 - 난임 치료, 앞 일이 정말 궁금하지만
https://brunch.co.kr/@sangbin78/80

참고

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 서울역센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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