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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자룡 Sep 06. 2023

헬스장이 망했는데
다시 헬스장이 생겼어요..

망한 자리에 똑같은걸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몇 달 전, 휴대폰에 문자 한통이 왔다. 집 근처에 고급 헬스장이 생겼다는 소식이다. 주소를 살펴보니 고등학생이었던 20년 전, 그리고 몇 년 전에 다녔던 헬스장이 있던 자리다. 그렇다. 헬스장이 망한 자리에 또 다시 헬스장이 생긴 것이다. 과연 이번에는 잘될까? 


당시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강남 에이블짐에 가서 운동했다. 6시 40분쯤 도착해서 운동을 시작하고, 8시 10분 쯤 나와서 선릉역에 있는 회사에 출근했다. 


듣기로는 의지의 사나이지만, 내 속은 그렇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는 게 힘들었다. 어찌저찌 습관은 들였지만, 과연 이렇게 지속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주말에도 에이블짐을 갔다왔다 했는데, 반나절이 전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점점 새벽 운동을 기피하고 저녁에 운동을 가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집 앞에 새로운 헬스장이 들어선 것이다. 기상 시간을 1시간이나 늦출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새로운 헬스장에는 내가 애용하는 해머 머신도 준비되어 있었다. 처음 몇 일은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적응을 마친 상태다. 



옛날로 돌아가보자.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똑같은 장소에 노블 휘트니스 클럽이라는 헬스장이 있었다. 3달에 30만원이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혼자 치는 테니스인 스쿼시하는 곳도 있었다. 나름 시설이 괜찮았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자 그저그런 헬스장이 되어버렸다. 중간에 다른 이름의 헬스장이 들어왔고, 몇 년 전에 1년 정도 다닌 적이 있다. 그리고 이번이 3번째 바뀐 것이다. (내가 중간에 유학을 갔다왔으므로 아마 더 바뀌었을 수도 있다)


같은 장소에서 망한 업종이 다시 들어온다면 잘될 수 있을까? 이번에 구의역 웨스트짐을 다니면서, 충분히 잘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유를 분석해보겠다. 




첫 째, 장소에 대한 인식이다. 


20년 동안 구의역 앞에 항상 헬스장이 있었다. 몇 번이고 다른 업체가 들어왔지만, 해당 장소는 항상 헬스장으로 쓰였다. 동네 주민에게는 혜민병원 맞은편에 헬스장이 있다는 정보가 각인되어 있다. 홍보, 마케팅에는 어마어마한 에너지와 자금이 든다. 지금처럼 SNS로 노력만 퍼부으면 무한대 홍보할 수 있는 시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헬스장은 철저히 지역 기반형 사업이다. 헬스장이 아무리 좋아도 지방에 있는 사람이 굳이 서울까지 올라와서 즐기지 않는다. 물론 헬창력이 만렙인 분들은 가끔 그럴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헬스장은 매일 나갈 수 있는 지근거리에 있는 게 100% 유리하다. 결국 지역 사람들에게 장소가 얼마나 깊게 각인되어 있는지가, 불특정 다수에게 홍보하는 것보다 100배 유리하다. 20년 동안 계속 헬스장이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장소가 브랜딩이 된 측면이 있다. 


둘 째, 관리의 수준이 넘사벽이다. 


내가 구의역 웨스트짐에 다니면서 눈여겨 본 점이 있다. 원판 정리가 기가막히다. 여기는 현재 젊은 부부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두분다 언뜻 보기에 30살 초반으로 보인다. 미남미녀다. 만약 대표라는 직함이 없었다면 20대 후반으로 보인다. 특히 남자 대표가 초반에 원판 관리를 철저하게 했다. 혹여나 관리를 안하고 가는 사람이 있으면, CCTV로 확인해서 구두로 주의를 줬다. 문화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이었다. 


몇 달간 그렇게 빡세게 관리하더니,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원판을 제자리에 둔다. 그래서 어느 타임에 가도, 원판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 운동하기 진짜 쾌적하다. 모든 원판이 제자리에 셋팅되어 있고, 무게에 따라 정렬되어 있다면, 운동하는 사람 입장에서 심리적으로 안정된다. 


반면에 내가 PT를 받고 있는 고급 헬스장이 있다. 웨스트짐보다 시설도 좋고 훨씬 넓다. 그런데 원판 관리가 개판이다. 심지어 자기가 쓴 원판마저 방치하고 떠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거기에 가면 머리가 어지럽다. 관리가 안되니 좋은 시설도 퇴색된다. 바람직한 문화만 장착할 수 있다면, 동네 헬스장도 강남 헬스장을 이길 수 있다. 이런 문화는 대표의 꼼꼼한 성격이 한목했던 것으로 보인다. 


셋 째, 퀄리티에 대한 집착


일단 부부 대표가 운동에 진심이다. 그러다보니 최고급 머신을 계속 들여오고 있다. 장소가 좁아서 계속 테

트리스를 하며, 빈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는 더 좋은 머신들을 꽉꽉 채우려고 한다. 여유 공간이 약간 없어진 느낌이지만, 나같은 머신 애호가에게는 희소식이다. 새로운 머신이 들어올 때마다 등록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구의 웨스트짐을 다니면서 이제 충분히 자고 일어나서 아침마다 운동을 한다.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좋은 헬스장이 동네에 있다는 것은 진짜 축복이다.


결론 : 같은 자리에 이미 망한 업종이 들어와도 잘 될 수 있다. 그 전에 잘못했던 것을 보완하고 발전시킨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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