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되기는 쉬우나 사람다운 사람은 되기 어렵다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하라는 말은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잘하라는 말일 것이다. 이 의미를 생각하면 나는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의 역할이 무엇일까 가만 생각해 보면, 우선 가정에서 남편과 아빠로서의 역할이 있고, 직장에서의 직위와 직책에 따르는 역할이 있을 것 같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내 인생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이 이 두 가지일 것이다. 가만 보면 나는 직장에서는 그럭저럭 역할을 하겠는데 가정에서는 나의 역할을 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왜 그랬는지 젊었을 때는 잘 몰랐다. 살기 바빠서 깊이 있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인데, 그보다 우선 가정에서 남편이나 아빠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보고 배운 게 없었던 탓이 크다고 보인다.
가정이 평화로울 때 다른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고사성어는 그냥 고사성어로만 생각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게 가장 기본적인 삶의 조건임을 깨닫게 되었다. 가정이 평화롭지 않다고 해서 잘 못 사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가정이 평화로우면 마음이 편하고 하는 일은 자연스레 편안하게 진행된다는 것이 나의 깨달음이다. 실례로 집안일 때문에 직장을 바꾼 선후배를 봤고, 뒤늦은 반성이지만 가정이 편안했으면 내가 하고자 했던 일들이 더 잘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인터넷을 보면 각종 분야에서 잘하는 사람의 영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가장 부러운 영상은 가족들이 친밀하게 지내는 영상이다. 부부가 친구처럼 지내는 것은 물론이고 부모자식 간에도 그렇게 지내는 영상들이 꽤 있다. 이런 영상을 보노라면 나와 이 사람들의 차이를 생각해 보게 된다. 다른 사람과 나의 차이가 무엇일까라는 생각은 내 주변의 동료나 친구, 선후배들의 모습까지 확대된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배워서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성격 탓이란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성격 자체가 삶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니 배운다라기보다 익힌다는 말이 맞을 것 같기도 하다. 나의 생각과 내 주변 환경이 내게 스며든 결과가 성격일 것이다. 그런데 성격이 좋고 나쁨은 나의 기준이다. 원만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야 거의 모든 사람들과 잘 어울리겠지만 그걸 좋다거니 나쁘다고 판단하는 것, 보통 나와 맞는가 안 맞는가로 표현하겠지만 이런 판단은 사람마다 다르다. 마치 삶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가정에서의 역할이든 직장에서의 역할이든 주변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나 같은 사람은 더 그렇다. 내 성격의 단점이 그런 것이다.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 같은데, 추진하는 동력을 얻으려면 남의 격려가 필요한 이율배반적이다. 그래서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 같은데 비난이나 질책에 대해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주눅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쩌랴? 어디서나 내가 주인공일 수는 없으니 질책을 받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거니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식들에게 진정한 사람 노릇은 이런 것이라고 체득시켜 주고 싶은 희망이 있었다. 희망으로 끝날 것 같긴 하지만 반면교사라는 말도 있고, 정 안되면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스스로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보다 나은 인생을 살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요즘 애들은 내가 자랄 때보다 보고 배우는 범위와 깊이가 훨씬 넓고 깊으니까. 모쪼록 실수를 하더라도 치명적인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칫하면 정말 사람 노릇 못 하는 자손이 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