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이 대상을 평가하는 모순이 존재한다
조직이 침체기에 있을 때 활력을 되살린다는 의미로 보통 '쇄신(刷新)'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쇄신은 사전에 '묵은 것을 깨끗이 씻어 새롭게 한다, 제도·조직·관행 등을 근본적으로 고쳐 새롭게 만든다'는 뜻이라고 나온다. 이런 '쇄신'을 하기 위한 방법으로 흔히 언급되는 것은 '인적 청산'이다. 이처럼 인적 청산을 통해 조직을 쇄신하겠다는 말에는 조직의 구성원 일부가 혹은 대다수가 문제이니 구성원을 바꾸면 조직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구성원이니 구성원을 바꾸면 조직이 변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같은 조직이어도 어떤 사람이 일을 하는가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고 효율성도 달라지는 것을 보면 사람을 바꾸는 것이 조직을 바꾸는 데 가장 적당해 보이기는 한다.
요즘 회자되는 '개혁'은 가죽을 새로이 한다는 말이다. 혁신이라는 말도 가죽을 바꾼다는 뜻이 들어 있는 점에서 비슷한 말로 보인다. 정확히 의미를 따지는 것이야 나중에 할 일이지만 얼핏 개혁보다 혁신이 더 강도가 센 바꿈이라고 느껴진다. 비유가 적당할지 모르겠지만 개혁이 리모델링이라면 혁신은 재건축이랄까. 그래서 쇄신은 개혁과 혁신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개념이 아닐까 싶다. 개혁은 하고 싶은데 혁신까지는 아닌 경우, 뭔가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을 때 '쇄신'하자는 멘트가 나오는 거 아닐까? 아니면 개혁과 혁신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이라는 생각도 든다. 개혁해서, 또는 혁신해서 조직을 쇄신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개념을 설정하게 되면 개혁과 혁신은 쇄신을 위한 과정이 되고 쇄신은 최종 결과가 된다.
내가 속한 조직에도 '쇄신' 바람이 불고 있다. 인적 청산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데, 청산의 대상이 가장 힘이 없는 계층이라는 점이 우려스럽다. 개개인의 조직 기여도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나 피드백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가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의 해고를 결정한 사람들이 과연 그걸 결정할만한 자격이 되는지 의문스러운 상황은 이런 인적 청산을 위한 '쇄신'이 유효할지 걱정이 앞서게 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능력을 인정받아 그 자리에 간 것이 아닌 사람이 이윤을 추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평가할 수 있을까?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그 자리에 있는 경우가 아닌데, 그 사람이 연구자를 평가한다는 것이 타당할까?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없이 낙하산으로 임명된 사람이 연구자들을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꼴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다.
먹고사는 문제가 일단 해결되고 나면 보통 사람은 인정 욕구가 생긴다. 이 와중에 박명수 씨의 매니저가 한 말이 생각난다.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로 연예문화계에 발을 붙이지 않겠다. 그러나 박명수 매니저를 하라면 또 하겠다."라고 했다고 한다. 박명수 씨의 연예계 경력을 보면 그간 부침이 없었을 리 없다. 잘은 모르지만 매니저는 박명수의 부침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박명수를 보좌했고, 박명수는 지금 유명 연예인의 반열에 있다. 인적 쇄신을 진작 했으면, 혹은 개혁이나 혁신과 같은 과정을 겪었으면 박명수가 더 일찍, 혹은 더 유명한 연예인이 됐을까? 글쎄다. 그것보다 나는 그의 쇄신, 개혁, 혁신은 매니저의 마음을 사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박명수 씨는 아마 의리와 배려, 이런 덕목을 강조하고 실천했을 것이다.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같이 일하는 사람의 마음을 읽고 여건을 보장해 주면 어지간한 사람은 열심히 일한다. 이 조직을 망쳐야겠다고 마음먹고 취직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리더가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이유도 그렇다. 공부하고 스스로 쇄신하려는 노력을 할 의지가 없는 자는 리더가 되면 안 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걱정이다. 정작 쇄신이 필요한 대상은 그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