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는 잘못이 없다는 변명
막 다그치며 살아왔던 것 같다. 내 기준은 아니었다. 내가 원했던 삶이긴 했지만, 그 삶은 거기에 들어가기 전 내가 꿈꿨던 것과 달랐다. 아니다. 같았을 수도 있다. 내가 잘 몰랐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미 알고 있었는데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이제 이렇게 지난 생활을 돌아보니 막무가내였던 내 인생이었다. 그렇게 욕심내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는 오만함을 가질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남들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인데 말이다.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고, 재능이 없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어느 분야에나.
출세를 해야 한다고 나는 나름대로 교육을 받아 왔다. 나는 어렸을 적에 위인전을 비롯한 각종 책을 많이 읽었다. 동급 최강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 책에서 내가 배웠던 것은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가치관이었다. 대부분이 그렇다. 삶에는 적절한 보상이 적절한 정도를 가지고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그 보상이 주어지는 시기에는 물론 어떤 지연시간이 존재하기는 한다. 즉, 시기에는 차이가 있지만 결과는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너무 낙관적인가? 나쁜 짓을 하고도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좋은 일을 하는데 엄청난 시련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당장의 모습은 그렇지만 언젠가는 합당한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좀 유치하지 않은가? 마치 다음 생이 있어서 현생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내생에는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식의 불교적 도덕을 말하는 것 같아서 든 생각이다. 나는 불교신자이기에 이런 류의 설명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언젠가, 또는 다음 생이라는 말로 불확실성을 덮는 것에 대해서는 불교신자가 아니라면 반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충분히 공감한다.
사람의 행동은 항상 맥락이 있다는 말에도 공감하는 편이다. 당장의 행동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모든 모습을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맥락이 있다는 말의 본 뜻이다. 화를 낸다고 하면 다양한 이유가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본인이 하는 일이 잘 안 됐을 수도 있고, 본인이 싫어하는 일을 남이 했을 수도 있고, 누가 욕을 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발생한 지는 한참 지났지만 문득 지금 떠올라 기분이 나쁜 상태였을 수도 있다. 사람의 언행에 이런 맥락이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사람한테 실망할 일이 없어질 것이다. 원래 그런 인간이라면 당연한 것이고,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실망할 일을 했다면 그 사람이 처한 맥락이 있겠거니 하고 이해하면 되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나는 다른 사람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나의 기준에 맞는가 여부로 다른 사람을 재단한 것 같다. 그런데 따져 보면 남을 재단했던 그 기준도 사실 나의 기준도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학습했던 생각일 뿐이었다. 왜 그게 나의 기준이 되어야 했는지, 다른 기준은 없는지 등에 관한 심도 있는 고려 없이 그냥 받아들였던 기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생활은 항상 팍팍했다. 시간이 없고 돈이 없었다. 덩달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이렇게 여유가 없으니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강퍅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런 습관이 들었다.
결론을 쓰고 싶은데, 흔한 말로 남들이 다 하는 말로 끝내기는 싫다. 이러이러하게 발전하겠다는 식의 결론 말이다. 그러면 결론이 없이 끝낼 수도 있겠다. 결국 나는 나의 완고함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하지만 나는 그 완고함에 별다른 책임이 없다는 말로 들리겠다. 선택은 내가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