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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협상

꿈과 조건 사이

문이 반 뼘정도 열렸다.

"엄마, 나 프로게이머가 될래요."

예고도 없이 말하는 아들, 나는 한 박자 쉬어 숨을 고른다.

당장 옳다 그르다를 말하면 문이 다시 닫힐 것 같아서.


나는 의자를 문 앞에 놓고 앉는다.

"꿈 얘기, 끝까지 들어볼래."

아들은 손끝으로 공중에 지도를 그리듯

팀, 랭크, 장비, 연습 방법을 말한다.

말수가 적던 아이가 이렇게 오래 말하는 걸 오랜만에 본다.


이야기가 끝난 뒤, 나는 조심스레 조건을 말한다.

"학교는, 여전히 네가 살아갈 사회야. 학교를 다니며 그 꿈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우리는 종이를 한 장 펴고

서로의 말을 적기 시작한다.

아들은 '가능'을 적고, 나는 '가능한 선'을 적는다.

밤은 깊어가지만, 마음은 조금씩 여유를 되찾는다.


약속의 마지막 줄에 우리는 함께 서명을 한다.

삐뚤빼뚤한 이름들이지만,

그 서툰 것마저도 우리 사이를 잇는 다리처럼 보인다.


문이 다시 닫힐 때,

방 안에는 키보드 소리 대신

조금 더 고른 숨소리가 남아있다.

꿈과 조건 사이,

우리는 오늘 한 걸음만큼 더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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