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학생의 광주 체류기 - 기억의 도시에서

K-pop 팬에서 한국학 전공생으로, 그리고 TV 인터뷰까지

by 문맹

K-pop 팬에서 한국학 전공생으로, 그리고 TV 인터뷰까지

"비행기 창문으로 태극기가 보였을 때, 믿기지 않았어요. 제가 정말 한국에 와 있다는 게요." 2024년 8월, 인천공항에 첫발을 디뎠을 때의 감회를 떠올리며 니스린은 수줍게 웃었다. 보훔 루르 대학교에서 한국학과 교육학을 복수전공하는 그녀는 2024년 8월부터 2025년 6월까지 10개월간 광주 전남대학교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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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년 전 소녀의 꿈

"처음엔 K-pop이었어요. 니스린은 자신의 한국 사랑이 시작된 순간을 거리낌 없이 털어놓았다. 어린 시절부터 동아시아에 대한 커다란 관심이 있었던 그에게, 8년 전 우연히 접한 K-pop과 한국 드라마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특히 몬스타엑스라는 그룹은 단순한 팬심을 넘어 그녀의 인생 진로를 바꿔놓았다.

"2018년부터 팬이었어요. 그때는 그저 좋아하는 마음뿐이었는데, 어느새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졌고, 한국 문화와 역사에 푹 빠져들었죠." 아랍어와 독일어를 모국어로 하는 그녀는 학창 시절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까지 익힌 다중언어자이다. 한국어는 여섯 번째 도전이었고, 가장 특별한 선택이었다.

"언어에 대한 열정은 늘 있었어요. 하지만 한국어는 달랐어요. 이건 단순히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 제 꿈을 이루는 과정이었으니까요."


새로운 친구, 머레이드(Mairéad)와 광주에서의 일상

광주행을 선택한 건 의외로 신중한 결정이었다. 많은 교환학생들이 서울을 선호하지만, 니스린은 달랐다. "서울에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오히려 광주가 좋았어요. 영어를 쓰는 사람이 적으니까 한국어를 더 많이 쓸 수 있었고, 무엇보다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살아있는 도시잖아요." 대학에서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며 깊은 인상을 받았던 그는, 민주화운동의 중심지였던 전남대학교에서 직접 그 역사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광주에서의 첫 만남은 룸메이트 머레이드였다. 같은 대학 학생이었지만 독일에선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두 사람은, 한국에서 만나자마자 오랜 친구처럼 금세 가까워졌다.

"머레이드가 있었기에 제 한국 생활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었어요. 우리는 대부분의 수업을 함께 들었고, 새로운 식당을 같이 찾아다녔고, 늘 함께 여행했어요. 한국어 실력도 함께 키웠죠. 재미있는 건, 제가 주로 말하는 담당이었고 머레이드는 샘을 더 잘하기에 이해와 계산 담당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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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록 페스티벌, 음악으로 하나 되다

음악을 사랑하는 두 사람은 여행도 콘서트와 페스티벌을 중심으로 계획했다. 10월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은 그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했다. "잔나비와 몬스타엑스의 아이엠이 온다는 걸 보고 바로 티켓을 샀어요." 페스티벌장에서 니스린은 특별한 깨달음을 얻었다. "잔나비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뮤지션인지는 라이브를 보고 나서야 알았어요. 모든 관객이 모든 노래를 다 따라 부르더라고요. 그 인기를 그때 처음 실감했죠."

하지만 진짜 감동은 아이엠의 무대에서 왔다. 자신을 K-pop의 세계로 이끈 몬스타엑스의 멤버를, 한국 땅에서, 그것도 바로 눈앞에서 보는 순간! "그 순간만큼은 제가 한국에 있다는 것도, 주변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것도, 우리가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는 것도 잊었어요. 친구와 저, 그리고 모든 관객이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하나가 되었죠. 음악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어요. 언어도, 국적도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저 음악에 대한 열정만이 존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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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 스토어에서 만난 2018년의 나

2025년 5월, 니스린에게 또 하나의 특별한 순간이 찾아왔다. 몬스타엑스 데뷔 10주년 기념 팝업 스토어 방문이었다. "멤버들이 모두 군복무 중이어서 행사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팝업 스토어 예약에 성공했을 때 정말 기뻤죠." 서울까지 당일치기로 다녀온 그날, 니스린은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동시에 만났다. "10년의 역사가 담긴 의상들, 사진들, 앨범들을 보면서 미션을 수행하고 포토카드도 받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멤버 주헌의 이름이 새겨진 키링과 스티커도 샀고요." 그러다 몬스타엑스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코너에서, 니스린은 한국어로 편지를 썼다. 그 순간 깨달았다. "제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요. K-pop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한국의 문화와 역사, 사람들에게 빠져 있었어요.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2018년의 제가 되어 있었어요. 그때 그 어린 니스린은 한국어를 하고 한국에 가는 게 꿈이었거든요. 설마 한국학을 전공하고,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한국에서 살게 될 줄은 몰랐을 거예요."

팝업 스토어를 나온 뒤 홍대를 거닐며 버스킹 공연을 보고, 거리 화가에게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하고, 쇼핑도 즐겼다. 광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르기 전까지, 처음으로 서울을 혼자 탐험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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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카메라 앞에 서다

2학기에 니스린은 "5·18 민주화운동과 세계의 저항"이라는 과목을 수강했다. 교수와 학생들—모두 교환학생이었다—이 함께 5·18 묘역을 방문한 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묘역에 MBC 광주를 비롯한 여러 방송국 기자들이 나와 있었어요. 교수님께 교환학생 중에 한국어 할 수 있는 학생이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한국어 할 줄 아는 학생이 몇 명 안 됐어요. 저도 그중 하나였고요. 솔직히 하기 싫어서 숨었어요." 하지만 친구 두 명이 그의 이름을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버스 안이 떠나갈 듯 니스린의 이름을 부르는 친구들. 결국 교수가 도와주겠다며 니스린을 설득했다.

"진짜 무서웠어요. 질문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까. 하지만 친구 둘이 함께 서줬고, 기자분들도 너무 친절하셨어요." 그리고 니스린은 해냈다. 친구들의 도움 없이, 모든 질문을 이해하고 멋지게 답변했다. "떨려서 온몸이 덜덜 떨렸고, 인터뷰 끝나고 무릎에 감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건 제 한국 생활 중 가장 잊지 못할 순간 중 하나예요. 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증명한 순간이었으니까요."


낯선 사람들의 따뜻함

부산 페스티벌을 포함해 여러 도시에서, 서울을 제외하면 니스린과 머레이드는 늘 외국인이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오히려 모두가 친절했죠." 길을 물으면 누구나 도와주었다. 영어 연습을 하고 싶어 하는 어르신들이 먼저 말을 걸어오기도 했고, 음식을 나눠주기도 했다.

"목포에서 등산할 때는 여러 등산 모임에서 음식을 잔뜩 주셨어요. 전주에서는 두 분 할아버지가 우리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한국인들의 친절함은 음식으로 표현되는 사랑이었다고 니스린은 말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매운 음식도 못 먹는 그녀는 한국행 전에 걱정이 많았다.

"제 음식 습관이 제한적이어서 걱정했어요. 하지만 놀랍게도 채식 메뉴도 있었고, 사장님들이 고기 빼달라고 하면 흔쾌히 빼주셨어요." 한 군데를 제외하곤 모든 식당에서 고기를 빼달라는 요청을 기꺼이 들어줬다. 기숙사 근처 김밥나라에서는 나중엔 주인이 먼저 "햄 빼드릴까요?"라고 물어봤다. "그런 작은 순간들이 제게는 큰 의미였어요. 불편하게 하거나 요리사에게 부담을 줄까 봐 걱정했거든요. 하지만 사장님들의 친절함 덕분에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어요." 매운 음식도 3개월 후엔 익숙해져서, 오히려 찾아 먹게 되었고 지금도 독일에서 매운 음식을 즐겨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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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개의 도시, 무수한 인연

10개월간 니스린은 한국의 약 20개 도시를 여행했다. 한국, 독일, 미국, 터키, 중국, 스페인, 포르투갈 등에서 온 친구들을 사귀었다. "한국어 실력도 늘었지만, 제 자신을 뛰어넘었어요.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다른 사람들에게서 얼마나 많이 배울 수 있는지 깨달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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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는 배움

교환학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마지막 질문에, 니스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천천히, 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교환학생을 여행이나 유학의 연장선으로 봐요. 물론 그런 면도 있죠. 하지만 제게 광주에서의 10개월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였어요."

"지금 세상을 보면 무섭잖아요. 전쟁이 있고, 나라들이 서로 경쟁하고, 사람들이 국적과 인종으로 나뉘어요. 뉴스를 보면 '우리'와 '그들'이라는 구분만 보이죠. 하지만 광주에서, 저는 그 경계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배웠어요." 목포에서 등산객들이 나눠준 음식, 전주에서 사진을 찍어준 할아버지들, 김밥나라 사장님이 건넨 따뜻한 배려. 그 모든 순간들이 니스린의 눈앞에 펼쳐졌다.

"낯선 땅에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저를 따뜻하게 맞아줬어요. 제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보다, 제가 '사람'이라는 게 중요했죠. 그리고 저도 그들을 그렇게 대했고요. 이게 교환학생이 주는 진짜 선물이에요. 다름을 넘어서는 법을 배우는 거죠."



분단과 갈등의 시대, 우리는 종종 '차이'에 집중한다. 하지만 니스린의 이야기는 그 차이를 넘어선 곳에 진짜 배움이 있음을 보여준다. 교환학생은 단순한 학점 이수나 이력서의 한 줄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는 통과의례이며, 평화를 실천하는 구체적 방법이다. 세상이 벽을 쌓을 때, 누군가는 다리를 놓아야 한다. 니스린은 광주에서 그 다리를 놓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다리 위로, 오늘도 누군가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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