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의 독일 책방 투어
나는 시내에 있는 한 서점을 문맹임에도 불구하고 문지방 드나들듯 다닌다. 서점에 멋지게 비치되어 있는 책들은 껍질만 봐도 독서에 대한 욕망을 뜨겁게 달구고,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하고 신기방기한 서점 안의 상품들은 독일어로 된 책들을 사전 없이 술술 읽지 못하는 내 허전한 마음을 달래준다. 서점직원들의 기막힌 상품진열 요령과 마케팅 스킬은 얄팍한 내 지갑을 위험에 빠뜨리곤 하지만 크게 지를 재정적 능력도 용기도 없거니와 서점은 서점인지라 집안 뿌리 뽑을 정도의 비상식적 가격의 물건은 팔지 않기에 스트레스로 솟구친 분노나 하루의 피로를 푸는 정도의 소비를 하기에 딱 좋다.
이 서점에서는 유난히 마음이 편해지는데 아마도 그동안 사들인 독일어 교재의 권수로 미루어 보아 내가 이 서점에 응당 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 그러하리라. 왜 독일어 교재는 새로 산 것을 시작함과 동시에 또 다른 것을 사야 제맛일까. 문법교재를 살 때는 곧 내가 세상의 독일어권 국가들을 나폴레옹처럼 정복할 갓 같은 생각이 들다가 막상 집에 가서 교재를 펼쳐 한 두 장 공부하다 보면 1. 너무 어렵다거나 (그러니까 제 실력에 맞는 것을 샀어야지) 2. 문법설명이 지저분하거나 (실력이 안돼서 설명을 못 알아듣거나 처음부터 차근차근 풀지 않고 원하는 문법부터 펼쳐서 시작해서 그렇겠지) 3. 연습문제가 실용적이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중도하차하기 일쑤였다. 그리고는 다시 책방에 가서 또 다른 교재를 사가지고 들어와 다시 1.2.3. 을 반복하며 영원한 핑계의 챗바퀴를 돌리면서 꾸준하게 책방에 지분을 쌓고 있다."마이어쉬 서점이여, VIP 고객의 외침이 들리는가?"
이렇게 나의 꾸준한 공헌도 한 몫해서 성공가도에 오른(?) 이 서점은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미끄럼을 타고 어린이 코너로 갈 수 있게 참신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이제는 애들이 다 커서 갈 일 없고 볼일 없는 미끄럼이 되었지만 소싯적 애 둘을 데리고 다닐 때는 애들이 이 미끄럼을 하도 좋아해서 책방 안에서 이 미끄럼 주위를 떠날 수가 없었다. 책을 읽어주고 싶어 데려왔는데 우리 집 아가들은 책에 1도 관심 없고 주구리 장창 미끄럼만 타댔다. 그 덕에 이 미끄럼과 에스컬레이터 옆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애들을 보고 있어야 했던 답답하고 조바심 가득했던 기억이 오랜 시간 남아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얼마나 나만의 시간, 나를 위한 무엇을 열망했던가. 서점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미끄럼과 동화책 코너를 벗어나 새로 나온 신간, 잡지, 문구 등 이것저것 구경하고 싶은데 내 맘을 알리 없는 이 작은 생명체 둘은 미끄럼의 재미에 푹 빠져 타고 또 탔다. 미끄럼에서 벗어나 다른 층으로 가려면 애들을 얼마나 구워삶아야 했었는가. 생각만으로도 그 시절의 스트레스가 다시 혈압을 올린다. 이제 아이들은 다~~ 커서 오히려 내가 같이 서점 가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책 쇼핑 함께 하자고 조르는 입장이 되었다. 물론 서점에 가자고 하면 아무리 사탕발림의 오퍼를 제공해도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하게 위아래로 눈을 굴리며 일없다는 듯이 '엄마 혼자 다녀오세요'이다. 뭐냐, 내가 지들이 어렸을 때 품었던 치사한 마음에 대한 복수인가?
하여튼 한동안 근처도 안 가던 미끄럼과 어린이 코너에 요즘은 혼자 자주 드나든다. 장난감도 구경하고 요즘 아이들은 어떤 동화를 좋아하나, 청소년들한테 인기 있는 책은 무엇인가 주의 깊게 살피면서 다닌다. 애들 키우면서 생겼던 서점 안에서 미끄럼을 떠나지 못했던 트라우마는 세월의 힘으로 스러지고 이제는 메가급 청개구리가 되어 갈 필요도 없는 어린이 코너에서 홀로이 즐기고 있다. 나의 얄팍함이란...
언제부터인가 독일 서점에 점점 커지는 코너가 있다 - LGBTQ+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intersex, queer/questioning, asexual and many other terms such as non-binary and pansexual). 알록달록 무지개색으로 꾸며놓은 이 코너에의 책들은 성소수자들이 주가 되어 있는 작품이겠다. 책들의 색깔도 무지개 빛으로 알록달록하고 호기심도 생겨서 읽어보고 싶지만 알라스, 문맹이다.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일 의지를 장착하여 조만간 로맨스 장르로 한 권 구입해서 읽어볼 예정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랑을 세상의 억압 속에서 해내야 했던 (과거다!) 사람들을 힘차게 응원하면서 읽어나가고 싶다. 누구나 자유롭게 읽는 책들을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마음껏 사서 읽지 못해 괴로운 내 처지도 슬금슬적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학기 어느 날 학교에서 화장실에 갔다가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손을 씻으러 거울 앞에 섰는데 예쁜 필체로 편지가 붙어 있었다. 자신은 트랜스 젠더인데 여학생 화장실을 써도 되는지 의견을 묻고 싶단다. 혹시 자신을 화장실에서 마주쳐 놀라거나 불쾌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이 조심스럽고 가여운 편지에 여학생들이 줄줄이 답글을 달아놓았는데, 우리 모두는 편안하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니 걱정 말고 화장실을 쓰라고, 힘내라고, 응원한다고, 이런 편지를 써줘서 고맙다고 등등. 7시 30분 아침 댓바람부터 학교 화장실에서 손 씻다가 눈물 콧물 쏙 뺐다. 학생들의 답변이 대견하고 이렇게 까지 편지를 써 붙여야 했던 학생의 처지가 너무 딱하고 미안해서… 누군가는 LGBTQ 커뮤니티가 커지는 것을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지만 다양성을 존중하는 트렌드는 끊임없이 응원받아 마땅하고 특히 교육기관에서는 말할 필요 없이 지켜져야 하는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에서 저 트랜스 학생은 화장실마다 절절하게 저런 손 편지를 써야 했을까 속이 아련했다.
LGBTQ코너를 지나 로맨스장르의 책들이 펼쳐져 있는 코너, LOVE. 독일어로 사랑을 나누는 젊은 이들을 생각하면서 독일어로도 과연 끈적함이 가능할까 생각하며 피식 웃는다. 내가 우리 집에 같이 살고 있는 이 독일 남자를 만난 것은 한국에서였고 당시 나는 남편 회사의 컨설턴트였다. 한국으로 발령 오는 외국인들을 한국사람들과 잘 협업할 수 있도록 트레이닝을 하고 컨설팅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우리 사이의 소통언어는 영어였다. 그 후 호주로 발령 날 것이라는 남편의 꼬심에 빠져 신나서 난짝 결혼을 했는데 웬걸, 독일로 끌려 들어왔다. 정말 독일은 상상 속에서도 내 인생 리스트에 없던 나라였다. 프랑스도 있고, 스페인도 있고, 호주도 있고, 살아 보고 싶은 나라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 독일인가? 물론 독일남자와 결혼하면서 독일에 살 수 있다는 상상을 못 한 건 내가 모지리라 그런 것 맞다. 어찌 되었든 독일 사람이랑 결혼한 건 맞는데 독일로 가서 사는 것은 충격이었다. 지금 써 놓고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으나 당시 나는 아마 남편만 쏙 도려내서 가지고 그 외의 불편을 맞이하고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우리의 커플언어가 초기에 영어로 고정된 것은 이런 연유에서였고, 독일로 와서도 두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전수해야 하는 특별한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집에서 독일어 사용을 자제? 했었다. 그리고 사용하지 않다 보니 습득도 느려졌다. 물론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내가 독일로 유학을 와서 독일어를 체계적으로 배우지도 못한 상태에서 우리의 공용 언어를 독일어로 세팅하면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남편도 나도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배우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언어로 관계를 유지하면 평등한 생활을 이뤄내기 쉽지 않다.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싸움이 나면 독일어 잘하는 남편이 단번에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지 않겠는가...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에게 한글을 더 힘들게 가르쳐야 했다. 20년 전에는 안타깝게도 오징어 게임도 BTS도 없었기에 한글의 위상이 지금 같지 못했다. 우리 집 아저씨는 두 시간 만에 한글 읽기를 마스터하고 한글의 우수성에 찬사 반, 자뻑 반하며 배움에 열정적인 시기가 있었으나 말을 배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을 떠나온 지 20년이 다된 지금 언어에 별 소질 없는 공돌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독일땅에 살고 있는 내가 독일어를 배우는 것이 빠르겠고 마땅하겠으나 나이가 들면서 N차 언어를 배우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그리고 독일어를 배워 독일어로 러브를 속삭이는 시나리오는 왠지 닭살 돋는다. 가끔 남편 기분 좋으라고 독일어로 누구나 다 잘 아는 '이히 리비 디히'를 날려주면 장르가 코미디로 바뀌면서 남편은 낄낄대며 웃느라 난리다. 쳇, 이러니 독일어를 배우고 싶겠는가. 내 탓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적적으로 독일어로 확실하게 해낸 장르가 있다. 이름 하야 "야한 책"이다. 이 장르의 획기적임은 단어도 잘 모르고 구문을 이해 못 해도 바로 통독이 된다는 것에 있다. 편치 않은 제2 외국어로 책 한 권을 통독하고자 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야한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사전 없이도 그냥 죽죽 읽히는 힘은 그 야함을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온다. 그 열망은 메타 인지에 불을 댕겨서 문법, 단어, 구문도 다 초월하여 문맹의 독자를 완독으로 이끈다. 심지어 내가 시리즈를 다 끝낸 작가도 있다.
독일은 철학의 나라이기에 여러 가지 철학서적을 집에 두고 있기는 하다. 잘 나가는 리처드 다비드 프리히트의 시리즈는 중고로 책책이 사서 집에 모셔놓기도 했으나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몇 페이지만 읽다가 독일어가 어려워서 내팽개쳐 놨다. 쇼펜 하우어의 인간관계에 대한 책은 번역서로 마음이 불편한 일이 생겼을 때 정신과 의사 선생님을 찾는 간절함으로 읽어본 적 있고 효과를 톡톡히 봤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정확한 인용은 아니지만 "남들 신경 쓰지 말고 남들 때문에 불편한 마음은 길가에 돌을 차내듯이 뻥 차라" 뭐 이런 말이었고 일하면서 부딪히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모든 문제를 생각하며 발길질을 하며 거둬내는 연습을 한다. 은근히 먹힌다.
책방의 철학책 코너를 돌다가 빵 터져 웃은 적이 있는데 다름 아닌 철학자의 머리를 본떠 만든 쿠키커터였다. 칼 막스를 위시하여 여러 다른 철학자들의 두상을 쿠키커터로 만들어 팔고 있었다. 실제로 철학자 쿠키를 만들어 구워 먹으면 어떨까 생각을 하니 더 우스웠고 독일인들의 철학 사랑이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쿠키커터의 마케팅 문장은 "철학을 (씹어) 먹자!"여서 진열되어 있는 책을 읽기가 나처럼 쉽지 않은 사람들이 많을 테니 어려운 책을 써서 우리를 징벌한 저자들을 당분 출중한 쿠키로 만들어 구워내서 잘근잘근 씹으며 책을 사 읽으라는 이야기인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쿠키커터에는 “독창성이 부족하고 개성이 없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르는”이라는 그러니까 ”생각 없이 찍어서 붙여 나르는 “ 의 부정적인 의미가 있기에 쿠키커터 철학자라는 말은 자신만의 생각이 아닌 다른 철학자의 생각을 그대로 답습하여 철학을 하는 비꼬는 말이 되기도 한다. 저 읽기 복잡한 철학서 사이에 남의 생각을 베낀 쿠키커터 개똥철학을 집어넣어 나처럼 철학적 분별력이 모자라는 독자들에게 모르고 책을 사게 만드는 철학자를 비꼬는 말(?) 일 수도 있겠다. 어떤 의미에서든 이렇게 철학자를 구워 먹도록 하는 도구까지 있다니 신박하다. 그렇지만 굳이 사서 구워 먹고 싶은 생각까지는 들지 않더라. 다른 것도 맛있는 것이 많은 게 굳이 철학자들의 면상까지 구워 먹고 싶지는 않다.
요즘 들어 내가 뻔질나게 다니는 코너는 아시아 코너인데 여기서 보는 한국책들의 독일어 및 영어본을 보는 맛은 짜릿하다. 수년 전만 해도 한강의 채식주의자 등 한 권만 나와도 신났었는데 이제는 82년생 김지영, 미쓰김은 알고 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고래 등 많은 작품들이 일본작가들과 중국 및 타 아시아 작가들 틈에 끼어 한 코너가 만들어졌다. 언젠가는 영어책 코너가 있듯이 따로 한국어책 코너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언젠가 나의 책도 저 속에 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불온한(?) 욕망을 홀로 불태우면서 고마운 책들을 만지작 거리며 내 느슨한 생활을 꽉 조여 올리는 계기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서점을 사랑하는 이유는 창밖의 뷰이다. 사방팔방이 유리로 된 4층 건물로 층마다 코너마다 펼쳐지는 바깥경치가 제법 멋지다. 대부분의 날이 우울하고 회색진 독일이지만 알록달록하고 스토리 가득한 책방에서 보는 탁 트인 바깥경치는 일품이다. 문맹이라 마음껏 책을 읽지 못하는 갑갑한 마음을 이 통창을 통해 확 풀어낸다. 책방에서 책을 못 읽으면 바깥 경치라도 감상해야지. 이가 없으면 잇몸만으로도 잘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