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누군가를 설득하는 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팀원들을 설득하는 것, 다른 팀의 팀원들을 설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마냥 마음대로 결정하고 찍어 눌렀다간 일 잘하는 사람들이 불만을 갖고 나가게 될 수도 있으니 마음대로 할 수도 없다. 심지어 내가 회사의 CEO라고 할지라도, 내 회사지만 내 마음대로 하기는 어렵다. 근데 회사가 원래 그렇다. CEO도 예외는 없다.
결국 일이 되게 만들려면 누군가를 설득해야 한다. 리더의 역할을 맡고 있으면 더더욱 그렇고, 리더가 아니더라도 우리 실무자들 모두 누군가를 설득해야 일이 진척되는 경우가 많다. 설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고, 의무이고, 또한 역량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경험 많고 노련한 경력자 분들은 자기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스킬을 '소프트 스킬'이라고 부른다. 기술이나 툴을 익혀 사용하는 '하드 스킬'과 다르게 눈에 보이지 않는 비정형의 방법론과 노하우를 소프트 스킬이라고 한다. 프로페셔널들은 작은 말과 행동, 표정조차도 업무의 영역이자 역량이라고 본다.
하지만 경력이 많다고 해서 항상 완벽한 소프트 스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서 의견을 일부러 묵살하는 경우도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을 은닉해서 오해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겠다. 각자의 노하우가 있겠지만 '정도'를 벗어나면 항상 부작용이 따라온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소프트 스킬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동안 배우거나 실천한 소프트 스킬 몇 가지를 공유한다. 되도록 부작용이나 역효과를 최소화하고 팀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들 위주로 정리해보았다. 물론 장단점이 있으니 글을 읽으실 때, '이런 방법도 있구나', '이것도 소프트 스킬이라고 할 수 있구나' 하는 정도로 참고만 하시길 바란다. 어차피 방법이 있어도 자기가 실천할 수 없는 방법들도 있다. 모든 사람이 일론 머스크나 스티브 잡스처럼 행동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마찬가지라고 본다.
1. 회의 전 물밑 작업하기 - 통보가 아닌 논의로 만들기
2. 공론화 법칙 - 솔루션 전에 문제의식부터 공감시키기
3. 킹핀 설득하기 - 핵심 이해관계자 공략하기
4. 협력자 모으기 - 3명이 모이면 호랑이도 만든다
5. 스몰토크와 넛지 - 생각 바구니 채워주기
6. 원온원 미팅 - 다이다이로 조지기
여기서 이야기할 소프트 스킬은 인간의 심리나 무의식, 본능, 사회학적인 원리 등을 포함하고 있다. 누군가는 '정치적이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인생 선배들로부터 소프트 스킬을 보고 배울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전사를 설득하기 전에 협력자를 미리 구해놓고 논지를 펼친다든지, 하는 방식이 이른바 '사내 정치'가 아니냐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내가 사내 정치라는 걸 너무 오해하고 있었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당시엔 이슈를 공론화하고 여론을 형성하여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 자체를 사내 정치라는 개념 안에 포함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을 설득하는 일'과 '파벌을 형성하여 대립하고 서로의 이권을 따지며 갈등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즉,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설득하는 건 다른 사람과 맺는 모든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비즈니스에서 넛지(Nudge)로 소비자의 무의식적인 심리를 이용하여 어떠한 행동을 유도하듯이,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로 넛지를 활용하여 구성원들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활용해야 한다. 어떻게 보자면 일상에서의 '정치'란 회사건 삶이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소프트 스킬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또한 '현상과 당위'를 잘 구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1명이 주장하는 것보다 2명, 3명이 주장하는 것에 더 설득력 느낀다. 인간의 심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여기에 '소수의 의견도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와 같은 당위적 논리가 끼어들면 일이 어려워진다. 당연히 소수 의견을 존중하는 건 그렇게 '해야 하는 일(당위)'이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는 여러 지성체가 동일하게 주장하는 의견이 더욱 설득력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활용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똑똑한 사람들은 A라는 행동을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떻게 행동할지 미리 예측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상상해본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성인이 그렇게 살지 않던가. 그런데 회사에서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
상대방이 반발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말해놓고 상대방이 내 말을 즉각 수용해주길 바라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일상생활에서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얼마든지 다르게 표현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말의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알지 않던가.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상대방이 내 말에 설득이 안 될 때, 그 사람이 자기 이득이나 자기 팀의 이익을 위해서 정치적으로 행동한다고 생각해버리곤 한다.
조금 더 그 상황에 효과적인 소프트 스킬을 알고 실천했더라면 얼마든지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회의 시간에 A라는 주장을 들었을 때 "아니, 그게 아니라~"로 답변을 시작하는 사람이랑 "좋은 생각이에요. 제 생각은~"으로 답변을 시작하는 사람이 다른 결과를 낳을 거라는 건 너무나 자명하다.
너무나 많은 경우에 우리는 '사람'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저 사람은 말이 안 통해', '저 사람은 자기 일 늘어나지 않는 거만 생각해서 저래', '저 사람은~' 등등의 문제 정의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만든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고, 똑같은 현상도 '사람의 문제'로 정의해버리면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게 아니라, 소프트 스킬을 통해 똑같은 사람이라도 다르게 설득하는 방법을 알아볼 것이다.
(A는 혼자서 생각해본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서 회의 때 이를 공유해본다)
A : "우리 대시보드를 만들어 봤으면 좋겠어요. 한눈에 보기에도 편하고요"
(일동 침묵)
A : "어떻게 생각하세요?"
B : "대시보드가 더 맞는 방법인지는 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C : "대시보드에다 정리하는 게 오히려 하나의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D : "기존대로 회의 때 현황 공유를 더 잘하면 되지 않을까요?
(A는 속으로 팀원들이 너무 협조적이지가 않다고 불만을 갖는다)
회의 때가 돼서야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한다면 이미 실패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회의 전에 이미 주요 이해관계자를 설득해놓고 나서 회의에 들어가야 한다.
자주 이런 일이 생긴다. 내가 생각했을 때 정말 좋은 솔루션이라고 생각해서 이야기했는데 사람들 반응이 뜨뜨미지근하고 협조적이지가 않다. 뭐만 하자고 하면 다들 안 된다고만 하고,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건지 답답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회의 때 어떤 의견을 맞닥뜨렸을 때 실무자들이 겪는 심리적 반응을 생각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실수다.
사람은 정보를 언제 어떻게 입수하는지에 따라 그 정보의 꼬리표를 다르게 분류한다. 만약 일대일로 사석에서 이야기하다가 어떤 솔루션을 제안받았을 때는 서로 이야기하면서 그 의견에 대해서 논의를 이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있는 회의에서 어떤 솔루션을 제안받을 때는 이미 결정된 사항을 통보받는 것처럼 느낀다. 그 발화 자체가 한 사람이 여러 사람에게 하는 말이기 때문에 '나에게 말하는 제안'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하는 공지/통보'에 가깝게 들리는 것이다.
처음부터 아이디어 회의라거나, 해당 주제에 대해 논의하는 회의가 아니었다면 위와 같이 흘러간다. 회의 때 낸 솔루션은 논의사항이 아닌 '통보'로 들리기 쉽다. 회의라는 환경 자체가 그렇다. 그래서 항상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물밑 작업이 이미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
회의 때가 돼서야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한다면 이미 실패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회의 전에 이미 주요 이해관계자를 설득해놓고 나서 회의에 들어가야 한다.
(A는 팀원 B를 만나서 일대일로 아이디어를 설득하기로 마음먹는다)
A : "B님, 우리 대시보드를 만들어 봤으면 좋겠어요. 한눈에 보기에도 편하고요"
B : "그런데... 그렇게 되면 너무 절차가 복잡해지지 않을까요?"
A : "그냥 현황을 대시보드 형태로 정리하는 거니까 크게 복잡해지진 않을 거예요"
B : "음... 하지만 주간회의 때 공유하는 내용이랑 중복되는 것 같기도 해요"
A : "그야 글로 적은 걸 대시보드 현황판 형태로 관리하자는 거니까 중복은 돼도 훨씬 눈에 잘 들어오잖아요"
B : "흠..."
A : "대체 뭐가 문제예요?"
B : "대시보드가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어요. 공감이 안 돼요"
그럼 똑같은 아이디어라도 회의 전에 일대일로 이야기하면 무조건 설득이 잘 되느냐? 그것도 당연히 아니다. 위 대화를 보면 B라는 사람이 마치 딴지를 걸기 위해 안달 난 사람처럼 보이는가? 그러나 겪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누군가에게 어떤 솔루션부터 툭 던지면 대부분의 '실무자'라는 사람들은 위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 모든 일에는 관성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오픈마인드라 할지라도 그 아이디어를 도입했을 때의 결과를 비교하고 따져보게 된다.
우리가 흔히 업무 커뮤니케이션에서는 항상 '배경과 맥락'을 먼저 설명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설득하려면 배경과 맥락을 설명하고, 또 공감시켜야 한다.
내가 조직문화나 업무 방법론에 대한 글을 적으면 항상 달리는 질문이 있다. 이 내용이 참 좋아 보이는데 회사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대로 하자고 설득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팀원들이 부담스러워하거나 또 다른 일처럼 느낄 것 같다는 걱정 때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이야기한다.
절대 솔루션부터 이야기하지 마세요.
아예 말도 꺼내지 마세요.
그전에 문제부터 공감시키세요.
앞선 사례에서는 '대시보드'라는 솔루션을 팀에 도입하려고 한다. 업무 진행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한 판에 칸반 보드 형태로 정리한다고 치자. 만약 당신이 리더이고, 팀에 대시보드를 적용시키고 싶다면 팀원들을 설득해야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존 방식으로는 업무 진행상황을 너무 불편하다'라는 점을 팀원들에게도 공감시키는 일이다.
이때 포인트는 자기가 생각한 답이나 솔루션이 이미 있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말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점을 공감시킨 다음에 다음번 회의에서라든가, 몇 시간이라도 지나고 나서 밥 먹을 때 슬쩍 이야기해본다든지 솔루션은 나중에 이야기하는 게 노하우 중 하나다.
팀원들 머릿속에도 문제의식이 싹트고, 솔루션에 대한 욕구가 자리잡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이 무르익을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한다.
결국에 일이 되게 만들게 하는 것이 역량이다. 어찌 됐든 퍼포먼스를 내야 한다. 위와 같은 차이만으로 결국 솔루션을 실행시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이 그 사람의 역량이 된다. 작은 말 한마디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를 해결하고, 팀을 완전히 바꿀 수도 있다. 물론... 실제 현실은 말 몇 마디만으로 다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누군가는 간과하고 생각하지 못했을 법한 작은 말 한마디의 차이가 큰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볼링에서 스트라이크를 치려면 맨 앞에 있는 핀이 아니라 5번 핀을 맞춰야 맨 뒷줄의 양 끝에 있는 핀도 쓰러트릴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핵심이 되는 숨은 핀을 '킹핀'이라고 부른다. 어떠한 사안에는 대부분 킹핀이 존재한다. 이걸 팀 전체에 설득하기 위해서는 A라는 사람을 설득해야만 일이 추진이 되고, A라는 사람이 설득되면 쉽게 일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전 직장에서 이런 노하우들을 많이 배웠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최종 의사결정권자라고 해서 그가 킹핀이 아닐 때도 많다. 예를 들어 영업이나 마케팅 부서에서 제품 카탈로그를 새롭게 제작하고 싶을 때, 이를 회사에 설득하려면 최종 결정권자인 대표이사를 설득해야 하는 게 아니라, 디자인팀이나 제품팀을 설득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대표는 디자인팀에서도 리소스 상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거나 오히려 이 프로젝트를 지지한다면 굳이 반려할 이유가 없다. 훨씬 설득이 쉬워지는 것이다.
킹핀을 응용할 수 있는 노하우가 있다. 내가 직접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킹핀이 직접 이야기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소프트 스킬은 정말 수도 없이 자주 활용할 수 있다. 내 아이디어라고 해서 내가 직접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결국에 이를 설득해내려면 킹핀이 대신 이야기하게끔 만드는 게 가장 강력하다.
예를 들어 HR 담당자가 팀 리더들의 면접관 참여율을 더 높이고 싶다면, HR 담당자가 직접 이를 요청하고 발의하는 게 아니라 가장 면접에 자주 참여하고 있는 팀의 리더에게 이를 발의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여, 그가 직접 이야기하게 하는 방법이 있겠다. 같은 팀장급이면서 가장 면접에 시간을 많이 뺏기고 있는 당사자가 다른 팀장들에게 필요성을 제안하고 이야기를 꺼낸다면 HR 담당자가 그들을 설득하기 굉장히 쉬워진다.
결국에 일이 되게 만들면 된다.
더 나아가서 두 명의 협력자를 추가로 구한다면 설득은 더욱 쉬워진다. 나 혼자서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떠들어도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한 명이 "나도 봤다"라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거기서 또 다른 한 명이 "방금 호랑이를 보고 왔다"라고 말하면 기정사실로 믿게 된다. 당연히 설득력이 다르다.
팀을 운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매일 하루 일과에 대해 회고하고 일기처럼 적는 '회고 다이어리' 문화가 있다고 치자. 우리 회사에도 이러한 문화를 도입하고 싶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일단 물밑 작업을 시작한다. 전사에 이야기하기 전에 누가 킹핀인지 생각해보고 그 사람을 만난다. 솔루션부터 이야기하기 전에, 임직원 수가 많아져서 말 한마디 안 하게 되는 팀원이 생기고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문제 상황을 언급한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 매일 가벼운 회고를 각자 적어서 공유하면 어떻겠냐는 솔루션을 던져본다. 이러한 문화적 활동에 굉장히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을 몇 명 더 찾아서 한 번 이야기해본다. 그러고 나서 그들에게 얘기한다. "이거 회의 때 한 번 이야기해볼까요?"
협력자들은 이미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 회의 때 반박하거나 거부반응을 보이더라도 자기가 먼저 나서서 설명해준다. 여러 명이 함께 이야기하면 훨씬 설득도 쉽다. 똑같은 내용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 예전엔 이런 게 사내 정치 아닌가 생각도 해봤다. 팀이나 소속, 군집, 파벌, 무리가 갈려서 협력하지 않는다면 사내 정치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팀이나 소속, 파벌이 아니라 회사 전체를 생각하고 자기가 속한 작은 팀 구분에 상관없이 더 훌륭한 의견에 동의하고 협력한다면 오히려 긍정적인 현상이다. 협력자를 모으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다. 더 훌륭한 의견이 있으면 동조하고 협력해도 좋다. 다만 팀이나 파벌과 같은 이해관계에 따라 훌륭한 의견임에도 있는 그대로를 보지 않는 게 문제다.
사람에겐 생각 바구니라는 게 있다고 치자. 평소에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하냐에 따라서 생각 바구니에 생각들이 담긴다. 그리고 어떤 말이나 행동, 판단을 할 때 생각 바구니 속에서 꺼내어 쓴다. 예를 들어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항상 욕을 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속으로 욕이 먼저 생각날 가능성이 크다. 생각 바구니에 눈을 감고 손을 휘저어서 아무거나 꺼내도 욕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욕이 손에 잡힐 가능성이 큰 것이다.
회사에서도 사람마다 생각 바구니가 있다. 대부분은 자기 실무와 관심사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있다. 이러한 팀원들을 설득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른 사람의 생각 바구니에 슬쩍슬쩍 나의 생각을 끼어넣어야 한다. 정말로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지나가는 말 한마디를 쌓고 쌓아서 동료의 생각 바구니에 탑을 쌓아 올린다.
스몰토크를 활용할 수 있다. 화장실 갔다 와서 잠깐 옆 자리 동료에게 하는 말, 점심 먹으러 가면서 하는 말, 책상에 앉아 일하다가 혼잣말로 슬쩍 대화의 시작을 여는 말들이 바로 스몰토크다. 따로 회의를 잡아서 정식으로 논의하는 게 아니라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거나, 혹은 10~15분 정도만 시간을 내어서 동료와 짧게 이야기하는 방법이다.
설득을 잘하는 사람은 내가 설득하려는 일의 배경과 맥락부터 스몰토크 형태로 주변 사람들에게 차근차근 이야기한다. 흔히들 '빌드업한다'라고 이야기하는 바로 그 이야기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해볼 수 있다.
(일하면서 혼잣말로) "아... 이거 진행이 어떻게 되고 있지? OO님, 이거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아세요?"
(점심 먹으러 가면서) "아까 보니까 우리 진행 현황이 잘 파악이 안 되는 것 같더라고요"
(10분만 시간을 내달라고 요청하여) "OO님, 우리 진행 현황들을 대시보드 형태로 정리해보는 건 어떨까요? 잘 될까요?"
(다음 날) "OO님, 제가 한 번 대시보드 초안을 잡아봤거든요? 이런 식으로 해보는 건 어떨까요?"
(피드백을 받아서 수정한 뒤) "이렇게 하면 진행 현황이 좀 더 잘 보이지 않아요? 한 번 시험 삼아 써볼까요?"
혹은 넛지의 형태로 킹핀에게 은근히 솔루션을 제안해 볼 수도 있다. 넛지란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라는 뜻으로 은근히 다른 사람이 특정한 행동을 해보도록 유도하는 걸 말한다.
(팀원 B에게 지나가며 하는 말로) "요즘 옆 팀 A님한테 무슨 일 있나? 표정이 안 좋던데"
(오후에 커피 마시면서) "B님은 요즘 어때요? 요즘은 무슨 일 하고 있어요? 요새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 하는지가 잘 안 보이는 거 같아요"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리며) "최근에 본 아티클인데 회고 다이어리라는 걸 쓰는 곳도 있대요. 재밌어 보이네요"
(팀원 B가 위 게시물에 댓글을 단다) "우리도 한 번 해볼까요?"
스몰토크도 역량이고 기술이다. 일 잘하는 사람들은 이미 다 하고 있다.
말 그대로다. 일대일로 설득하는 게 가장 강력하다. 제도적으로 원온원 미팅을 정기 운영하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원온원 미팅은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팀원의 업무를 구체적으로 파악한다.
팀원과 특정 사안에 대해 심도 깊게 논의한다.
팀원이 평소라면 말하지 않았을 법한 레드 플래그(Red Flag)를 알아낸다. (레드 플래그는 사업/일에 적신호가 되는 요소를 말한다)
팀원의 업무적 고민이나 개인적인 고민을 듣고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낸다.
팀원과 정서적이고 인간적인 유대 관계를 쌓는다.
팀원과 업무적인 피드백을 주고받는 시간으로 활용한다.
필요한 상황에 맞게 원온원 미팅을 부담 없이 요청할 수 있다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회사에 원온원 미팅 문화가 있든 없든, 필요한 적절한 시점에 핵심 이해관계자에게 일대일로 미팅을 요청한다.
평소에 사무실이나 팀 회의 때 업무적 대화를 많이 나눈다고 해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특별히 시간을 따로 내어서 일대일로 이야기할 자리를 만들었을 때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 그리고 팀원을 설득하려면 팀원이 설득되지 않는 진짜 이유와 속마음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원온원 미팅은 강력한 방법이다.
이전 직장 생활을 거쳐오면서 회사 대표나 고연차 선배, 동료, 후배들에게서 많이 배웠다. 특히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소프트 스킬은 스스로 깨닫지 않는 이상 특별히 학습하기가 어려운 영역이다. 그래서 이미 시행착오를 겪은 사람들로부터 구전되어 지혜가 전달되곤 한다. 그 말은 누군가 전해주지 않는다면 접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나에게 피드백하거나 조언해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들의 말을 그 자리에서 모두 받아들인 건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언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특히 소프트 스킬을 처음 접했을 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게 사내 정치인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들의 조언이 더할 나위 없이 값진 자산이 되었으며 나에게 큰 호의를 베푼 것이라는 걸 절실히 느낀다. 내가 더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런 조언을 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정답을 찾는다. 그리고 항상 정답만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쓰는 수많은 글도 누군가는 '전문가도 아니면서 다 아는 것처럼 적어놨다'라고 비난하곤 한다. 그래도 내가 접근하는 방식은 항상 동일하다. 정답이든 아니든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와, 거기서 어떤 식으로 대처하여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공유하는 건 이 사회에 반드시 필요하다. 인류 문명은 항상 그런 식으로 발전해왔고 서로의 지혜와 경험을 나누며 위대한 업적들을 쌓았다. 물론 말과 글의 무게를 올바르게 인지하고 신중하게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겠지만, 만약 정답만을 말하려 했다면 수많은 선배들이 나에게 그런 조언들을 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전에는 전문성을 쉽게 입증할 수 있는 하드 스킬만이 답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결국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푸념 삼아서 농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수록 시행착오 경험은 더더욱 중요해지고, 시행착오를 줄여줄 수 있는 지혜가 가장 비싼 자산이 된다.
이러한 자산은 정말 감사하게도 나누면 나눌수록 가치가 더해진다. 자기 혼자 꽁꽁 싸매고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에게 나누었을 때 자산이 배가 된다. 그래서 내가 보고 배운 소프트 스킬들을 몇 개 적어봤다.
회사 직원을 경영에서는 '내부 고객'이라고 부른다. 팀원들을 설득하는 것도 업무의 일환이고 기술이 필요한 영역이다. 소프트 스킬은 그냥 말을 좀 부드럽게 하는 방법이 아니라, 결국에 일이 제대로 처리되게 만드는 고급 기술이다. 모쪼록 팀원들이나 다른 팀이 비협조적이라고 비난하지 말고, 나의 소프트 스킬 또한 부족한 점은 없었는지 돌아보고 더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협력하는 것도 역량이고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문제 원인을 외부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서 찾는 사고방식은 성장에 도움이 된다.
어제보다 더 나은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