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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토v Sep 06. 2019

스타트업 회고 다이어리의 시작

회고를 통해 성장하는 조직문화

 ※ 전쟁터 같은 스타트업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난중일기 쓰듯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매일 인사이트를 기록하고 나누며 우리는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스타트업에서-


 시간이 지나 2018년 겨울. 동식물이 눈 속에서 곤히 잠들어 있을 때 나는 스타트업에서 뒹굴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스타트업의 겨울은 이세계로 순간이동하는 차원문과 같아서 눈을 깜빡일 새도 없이 지나가곤 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내년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그 와중에 나는 사내 게시판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왜일까?


 단지 추억을 회상하며 속마음을 나누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하루하루 살얼음판 같은 전쟁통의 난중일기와 같았다. 명확한 문제의식과 필요에 따라 목적을 갖고 사내 게시판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작고 빠르게 행동하는 스타트업일수록 '깊은 고민들을 쉽게 풀어내는' 창구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난중일기를 적었다.


스타트업에서 쓰기 시작한 일기

그 이름은 데일리바크(Daily Bark)로 시작했다. 내가 다니던 스타트업 이름에 'dog'가 들어가기 때문에, 매일 짖는다는 의미로 지었다. 처음엔 우리 팀원 3명에게 참여를 부탁해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15명 넘는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누구는 하루 일과를 찍어 그림일기로 적었고, 누구는 출퇴근길 노래를 추천하며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업무적 인사이트와 고민'을 공유하는 장이 되었다.





왜 스타트업에서 일기를 썼나?


 처음 계기는 개인에게 집중된 업무 인사이트와 정보들을 공개된 장소에 풀어놓기 위해서였다.


 스타트업은 특성상 구성원 개개인의 비중이 높고 업무량이 상당히 많다. 게다가 그 많은 업무가 빠른 속도로 처리되기 때문에 휘발성으로 사라지는 정보나 인사이트도 많았다. 정해진 회의 시간에만 이러한 정보들을 공유하다 보면 자연히 시장 반응에 기민하게 대처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개인에게 몰려 있으면서 공유되지 못하고 휘발되는 인사이트를 실시간으로 전사에 공유하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보통 회사에서는 업무 보고나 회의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려고 노력하지만 한계가 있다.

 1) 업무 보고의 경우 임의로 누락되는 정보가 많다. 보고자가 여러 정보를 종합하여 필요한 내용만 요약하기 때문에 항상 누락되는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업무 보고라는 행위 자체가 개인의 의견이나 인사이트를 길게 적기엔 적합하지 않아, 정보 전달 이상의 목적을 수행하기가 힘들다.


 2) 회의의 경우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이 들어서 수시로 진행하기도 어렵고, 하더라도 업무 인사이트를 공유하기엔 적합하지 않다. 스타트업에서 회의는 주로 '생각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의사 결정하는' 자리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디어 회의나 워크샵이라 할지라도 업무에 대한 인사이트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게 아니라 명확한 성과물을 지향하는 게 회의의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에게 축적된 업무 인사이트와 정보들, 깊은 고민들, 자기 자신의 속마음들을 풀어놓을 수 있는 마땅한 장치가 부재한 현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싸이월드 다이어리를 떠올렸다.




스타트업 난중일기 같이 쓰기


자기만의 미니홈피에 다이어리를 적는 것처럼, 사내 게시판 안에서 자기만의 게시물을 만들어 댓글 일기를 쓰는 식으로 진행했다. 월별로 자기만의 게시물 하나를 만들고 거기에 생각날 때마다 일기 쓰듯이 댓글을 달았다. 한 달간 팀 내에서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팀원들도 재밌고 도움이 된다 느껴서 전사에 공유했다.


 하지만 순탄치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글쓰기' 자체가 부담이기도 한데 모든 팀원들이 보는 곳에 '일기'를 쓰는 건 더 부담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반에는 나 혼자 10개가 넘는 글을 쓰면서 시작했다. 업무적인 노하우부터 해서 우리 스타트업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는지, 나는 요즘 어떤 고민을 하는지, 커리어에 대한 목표는 무엇인지 등등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썼다.


 사실 스타트업에는 위와 같은 주제로 고민하는 사람이 특히나 많다. 성장에 대한 욕구가 강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업무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스타트업에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팀원들이 먼저 좋은 반응을 주면서 함께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스타트업이라는 전쟁통에서 함께 일기로 소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정식 런칭 후, 4개월 간 꾸준히 발전하여 나중에는 각자만의 다양한 다이어리로 변형되었다. 하루 일과 중 사진을 찍어 그림일기를 적는 사람도 있었고, 출퇴근길 들을 만한 노래를 큐레이션 하는 사람도 있었다. 누구는 힘든 일을 적었고 누구는 전문적인 노하우를 적기도 했다. 자기가 맡은 프로젝트에 대해 성찰과 피드백을 적는 점도 좋았다.

1월) 참여자 4명, 작성글 약 13개, 좋아요 총 33개
2월) 참여자 5명, 작성글 약 15개, 좋아요 총 67개
3월) 참여자 9명, 작성글 약 29개, 좋아요 총 152개
4월) 참여자 10명, 작성글 약 39개, 좋아요 총 208개
  …

 이후에는 글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 세는 것도 일이 되어서 하지 않았다. 조직 문화로서 자리를 잡고 다양한 인사이트가 나오다 보니 나중에는 다이어리의 글을 마케팅에 활용할 수도 있었다. 공식 계정에서 업무와 관련된 우리 구성원의 인사이트를 풀어냄으로써 조직 내의 고민도 공유하고, 구성원도 소개하면서 양질의 정보도 제공했다.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스타트업 다이어리의 좋은 점

맥락 없이 스피오- 스피오 울어대던 매미 울음소리와 다르게, 맥락이 있는 다이어리는 이런 점이 좋았다.


 1) 스스로 성찰하고 인사이트를 정리할 수 있다.

  업무가 많고 바쁘다 보면 그냥 일처리만 하다가 몇 개월이 지나가버리곤 한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다이어리를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민이나 느낀 점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나 과업에 대해 Wrap-up하고 피드백하는 습관은 굉장히 중요한데, 보통 일하다 보면 새로운 업무가 치고 들어와서 잊어버리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글을 써 버릇하는 게 도움이 된다.


 2) 팀원들과 업무적인 인사이트를 공유할 수 있다.

  바쁜 스타트업 일상 속에서 각 직무 담당자의 인사이트를 들을 기회는 많지 않다. 억지로 회의나 워크샵을 통해 업무적인 인사이트를 발표시키는 건 발표자에게도 큰 부담이고 준비 시간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회의 시간을 조율하는 것도 힘들고 그 시간에 맞춰 참석하는 것도 어렵다. 그러니 일기 쓰듯이 가볍게 쓰는 글이 더 효과적이다.


 3) 조직의 목표와 개인의 목표를 Align하는 데에 효과적이다.

  스타트업 종사자들은 개개인마다 성장 욕구가 크다. 그래서 개인의 목표와 조직의 목표를 어느 정도 합치시켜서 서로 윈윈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개개인의 성장 목표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들어간다. 관리자 한 명이 팀원들과 주기적으로 일대일로 면담하고 공유하는 비용이 전사적으로 치면 꽤나 크다. 일대일 면담이라는 특성상 인사 평가에 암묵적으로 반영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그에 비하면 개인의 목표를 자유롭게 적도록 권장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형태의 다이어리 방식이 보다 유하고 효율적이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좋다. 엣지 있는 사람이 되려면 자기 의사결정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앞으로의 내 선택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는지 스스로 기억할 수 있다.




왜 다이어리 형식이어야 하는가?


 일에 대한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방식은 많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루틴하게 피드백하는 시간을 가지고 개선 사항까지 도출해내는 것은 매우 일반적이다. 사내에서 인사이트가 많은 개인에게 사내 교육을 시키는 경우도 많이 있다. 나 또한 프로젝트에 대한 발제도 해봤고, 인사이트를 모아 매뉴얼도 만들어봤고, 사내 교육도 진행해봤다. 사내에 업무와 관련된 콘텐츠 게시물을 연재하기도 하고 직접 영상을 찍어 공유하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시도 끝에 다이어리 방식이 탄생했다.


 기존 방식들의 가장 큰 한계는 발화자가 '자기 검열'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설명한다는 목적이 명확하다 보니 스스로 사소하다고 생각하거나 개인적인 고민/생각들은 걸러내게 된다. 반면 다이어리라는 형식은 누구에게 말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쓰는 글이기 때문에, 타인을 의식하기는 할지라도 더 많은 생각을 표현하게 된다. 싸이월드 감성이라는 것도 다이어리라는 형식을 빌어 개인의 솔직한 고민과 생각들이 표현되었기 때문이었다.


 글쓰기의 목적 자체가 특정 대상에게 쓰는 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 쓰는 글이어야 한다. 그래야 글에 대한 부담이 조금이나마 덜어지고,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연습을 실천할 수 있다. 생각해보라. 브런치나 미디움 같은 곳에 글을 쓰거나 전사적인 세미나/발제 자리에서 발표하는 건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가? 하지만 인사이트를 정리하고 표현하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빠르게 성장할 수 없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부담이 적은 다이어리 형태로, 매일 자기 업무 일지와 느낀 점을 기록한다는 식으로 시작해야 한다.




스타트업에서 '인사이트 다이어리'를 활용하는 법

심리적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스타트업에서 인사이트 다이어리는 굉장히 유용하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전제가 있다. 나의 의견이 무시당하거나, 인사 평가 등에 있어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느끼는 '심리적 안전'이다. 이를 위해 다이어리를 적는 사람 입장에서, 그리고 회사 차원에서 지켜야 할 몇 가지 룰이 있다.


다이어리를 적을 때에는-

다이어리는 의사소통 채널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곳이다.

회사/팀원에 대한 불만은 다이어리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전달한다.

진짜 일기가 아니다. 다른 사람이 읽었을 때 기분 나쁘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은 제한다.

퇴사 계획이나 퇴사 이후의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는 되도록 적지 않거나, 장기적인 비전에 대해서만 적는다.


스타트업 차원에서는-

CEO는 다이어리 내용에 대해 되도록 코멘트하지 않는다.

다이어리 내용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다이어리는 생각의 단서일 뿐 정확히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대화해봐야 안다.

다이어리는 언제나 보조 수단이다. 개인의 역량이나 성장도를 평가하기 위한 제도는 별도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좋은 문화를 형성하려면-

일단 공감하고 칭찬하고 긍정하라. 이외의 표현은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진행하는 게 좋다.

글쓰기를 적극 장려하라. 약간의 강제성이 있어야 억지로라도 글을 쓰고, 성찰하고, 성장한다.

좋은 글이 있으면 동의를 구하고 널리 알려라. 글쓴이가 신나서 더 질 좋은 인사이트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같이 써라. 남의 인사이트를 취하기만 하지 말고 같이 적어야 나누는 문화가 형성된다.


 시작이 어렵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가장 좋은 조직 문화가 될 수도 있다.




인사이트 다이어리 2.0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경험하면서 나는 더 욕심이 생겼다. 이전까지의 업무 방식들이 소수의 이해관계자와 긴 호흡으로 일을 해왔다면, 현대 사회로 발전할수록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짧은 프로젝트 단위로 협업하는 방식이 늘고 있다.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 마케터 등 다양한 직무가 서로 대화하고 협업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직무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기술 발전이 빨라질수록 각 직무별로 인사이트는 빠르게 변해가기 때문에 항상 긴장하고 학습하지 않으면 이러한 협업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비단 다른 직무와의 협업이 아닐지라도 같은 직무끼리의 인사이트 공유 또한 더욱 중요해졌다. 소비 패턴이나 시장 상황, 기술 발전이 급박하게 변화하면서 모두가 새로운 트렌드를 학습하고 분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 세계의 변화 트렌드를 스터디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정보와 인사이트를 나누는 게 훨씬 유리해졌다.


 교육 트렌드도 마찬가지로 '공동 학습' 중심으로 변해간다. 대부분의 에듀테크 스타트업들이 언제 어디서든,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교육 플랫폼으로 성장하면서, 이 시대의 화두는 '어떻게 학습해내느냐'로 옮겨왔다. 자기 통제를 통해 지치고 피곤해도, 귀찮아도 학습해내는 것이 중요하고, 그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공동 학습이다. 트레바리가 유료 모델이 가능한 이유이기도 하고, 스터디파이나 패캠, 커넥츠 등이 교육을 넘어 스터디 플랫폼으로 진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나와 같은 직무의 다른 현직자 인사이트를 얻는 것, 나와 다른 직무의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하지만 미디움이나 브런치 같은 곳에서 유명 스타트업의 담당자들 인사이트만 일방향적으로 듣는 것은 한계가 있다. 내 주변의 다양한 현직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내 의견을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만 하는 이 시대에 '인사이트 다이어리'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은 다양한 회사의 현직자들이 각자의 인사이트를 다이어리처럼 적으며 스스로 성장하고, 서로의 인사이트를 나눌 수 있는 장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나와 비슷한 직무의 담당자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걸 알고, 스터디나 프로젝트를 제안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 나와 같은 분야에 대해 국내외 케이스 스터디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같이 데이터를 공유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회사 사람들이, 자기 회사나 업무에 대한 정보/인사이트를 적어가면서까지 참여할지는 미지수다. 일단 초대 한정의 비공개 사이트를 만들어 약 15명가량의 다양한 현직자, 대표들을 초대했지만 아직까지 참여는 저조하다. 앞으로 더 강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초반에 분위기를 형성해주면 눈덩이 굴러가듯이 문화가 형성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전쟁통과 같은 스타트업 씬에서

많은 사람들이 각개전투하고 있다.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며, 비슷한 정보 소스를 가지고 스터디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서로 공유되지 못한다. 누군가는 자기만의 정보를 숨길수록 경쟁력이 생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정보와 생각을 나눌수록,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다. 그중에서도 싸이월드 감성을 간직한 밀레니엄 세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도 일기를 쓴다.

도토리는 더 이상 없지만 도토리 감성만은 여기에 남기고 싶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 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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