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놀이공원에서 휴대폰을 떨어뜨렸는데 글래스 커버와 액장이 크게 깨졌습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근처 서비스 센터가 있어서 당일 수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엔지니어의 과다한 친절로 불편(?)까진 아닌데 편하지 않은 순간이 연속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장면 1. 안내 스크린에 제 대기 번호가 표기되자 중년의 엔지니어께서 본인 자리에서 20미터는 떨어진 제게 찾아와 좌석으로 에스코트를 해주시고는 맞은편 좌석에 앉으셨습니다.
장면 2. 수리가 끝난 후에, 결제하는 곳까지 또 안내를 해주시면서 "명절인데 비용이 나오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라고 하시더군요. '내가 떨어져서 깨진 액정에 수리비를 내는데 왜 이분은 미안하다고 하는가'하는 마음에 "아니요. 미안해하실 일이 아닙니다. 잘 고쳐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장면 3. 결제한 지 1시간이 지난 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그 엔지니어셨습니다. '액정이랑 진동모터 수리하셨는데 잘 쓰고 계시냐' 그러고 나서는 또 '명절에 비용이 나오게 해서 미안하다'시더군요. 결국 저는 다시 "아니요. 미안해하실 일이 아닙니다. 잘 고쳐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과연 엔지니어의 업무에 방문객 에스코트가 필요한가, 비용 청구 시 '미안하다' 커뮤니케이션은 필요한가, 사후 전화 확인은 왜 포함되어야 하는가 고민이 들었습니다. 고약한 고객에게 불만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일까, 업무평가를 위해 다양한 단계를 만들어서 감점 또는 가점을 주기 위해서일까. 그렇다면 문제를 피하기 위해, 평가를 하기 위해 계속 업무를 더해야만 하는 걸까. 나는 서비스 센터에서 무엇을 바라고 어떤 점을 바라고 있었을까.. 적어도 과잉친절과 불필요한 연락은 아니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현상을 적지않게 보게 됩니다. 문제가 생기면 문제 원인을 제거하는 것 보다는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 일을 늘립니다. 사전 검토 단계를 늘리고, 실행 체크리스트를 늘리고, 품의서 결재선을 늘립니다. 문제가 생길 때 엮이는 사람이 많아지면 어떤 이는 누군가의 책임없음을 증명하기 위한 업무를 해야 할 때도 있지요. 이쯤 되면 '문제를 해결하자'는 첫 번째 질문은 사라지고 보고서의 맞춤법과 프로세스의 논리 구조가 더 중요해 집니다. 마치 휴대폰 수리 엔지니어에게 고장파악 및 수리능력보다 '친절'이 더 중요해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더 끔찍한 일은 이렇게 일을 늘리는 사람이 일을 잘 하는 사람처럼 평가 받을 때 입니다.
필요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게 하는 것 그래서 직원이 일의 회의를 들게 하지 않는 것 그래서 더 중요한 일을 잘하게 하는 것이 리더에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그것이 자신의 권한을 내려놓는 일이라도 말이죠. 탈권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전략과 선택 그리고 집중이라는 조직과 구성원의 생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로 돌아와 '다양한 제품을 폐기'하면서 애플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그가 했던 일은 '무엇을 할 지 선택'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 지 선택'하는 것 이었습니다.
휴대폰 액정 수리하는 일로 리더십에 전략에 스티브 잡스까지 소환하는 것이 조금 과한 듯 합니다만.. 일을 한다는 것, 리더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과연 어떤 리더가 되어야 할까, 나는 지금까지 어떤 선배였을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말이죠. 고민은 계속 됩니다. 계속...
Small things often.
* 이 사진을 찍고 휴대폰을 떨어뜨렸...
[직장생활 관련 글은 제가 근무하는 회사와 관계가 없고, 개인적인 의견임을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