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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모자라면 발가락으로 수를 세는 딸에게 배웁니다

by 좋은남편연구소

지난해 이사를 오면서 아내는 '유치원 가기 전에 잠깐만 데리고 있으면 되니까.. 괜찮을 거 같아.'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19 때문에 아내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3월 1일은 지났고, 아이의 홈스쿨링은 기약 없이 갱신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동안 아이는 글을 깨쳤고, 숫자는 더 많이 알게 되었고, 덧셈/뺄셈도 약간 하게 되었지요. 아기에서 어린이가 된 듯했습니다.


며칠 전에 딸아이가 산수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덧셈 부분이라 아직은 쉽지 않지만 꾹 참고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는 걸 보니.. 대견하기까지 하더군요. 교재에 컵케이크 개수를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면서 '셋, 넷...' 하면서 세더니 이윽고 '열'을 넘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오른발을 의자에 올리더니 발가락을 가리키며 '열 하나.. 열 두울...' 하며 숫자를 이어갔습니다.


순간 '참.. 녀석도'하며 웃다가 '대단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가락이 모자라면 너무 많다고 할 만도 한데, 산수 공부하기 싫다고 피할 만도 한데, 그걸 견디는구나.. (저도 어쩔 수 없는 아빠인가 봅니다.) 산수 공부를 마친 딸에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서 정말 멋졌어.'라며 양쪽 엄지를 들면서 칭찬해줬습니다.


'결핍'만큼은 차고 넘치는 아이러니한 세상에서 <검이 짧으면 한 발 앞으로 가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용기도 나고, 허탈하기도 합니다. 그냥 처음부터 큰 검으로 시원하게 휘둘러 끝내고 싶지만, 현실은 전혀 멋지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지요. 특히 나이를 먹고, 직급이 올라가면 '로망'만 커지는 듯합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딸아이가 그랬듯 손가락이든 발가락이든 타인의 시선 때문에 망설이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렵니다. 순수하게.. 용감하게.. 그렇게 말이죠.


Small things often.


스샷 1.png

* 4살 소녀의 네일 아트... 작고 오동통한 손이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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