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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남편연구소 Nov 05. 2019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 악기는 한 번 튜닝을 한다고 평생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연주가 있을 때마다 늘 다시 튜닝을 하여 쓰는 것이네. 크고 작은 사건이 생길 때마다, 마치 연주자가 튜닝을 하듯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조율하시게... 많이 싸우시게. 그러나 거칠게 다루어서는 안 되네. 그것이 튜닝이라는 것을 잊지 말게. 결혼은 '관계라는 제단에 자신을 헌신하는 것'임을 늘 기억해주기 바라네.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 구본형 저, 54p)


누군가 '결혼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보면 저는 위 책 구절을 말해주곤 합니다. 길게 말하지 말고 한 단어로 말하라고 하면 '서핑'이라고 합니다. (물론 서핑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오래되면, 좋았던 것도 시큰둥해지고 별일 아닌 것도 큰일이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을 살펴보고 관리해야 현상 유지를 할 수 있는 거라고 말이죠.   

제가 좋아하는 주말은 빨래를 남김없이 하고, 집안 구석구석 청소기를 돌리고, 세차까지 하는 겁니다. 물론 결혼 전에는 세차 말고는 한 적이 없습니다. 결혼 후에 생긴 좋은(!) 버릇이죠. 아내도 그런 모습을 항상 칭찬하고 인정하고 격려해줬습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하던가요. 저녁 8시 이후까지 건조기를 돌리고, 퇴근하고선 무선청소기를 사용하는 제가 아내에게는 불만이었습니다. 평소에도 뛰어다니는 아이 때문에 층간 소음에 예민한데, 남편까지 늦은 시간에 소음을 만들어 냈으니까요. 건조기는 9시 조금 넘으면 끝난다, 청소기는 1단으로 조용하게 잽싸게 하겠다고 했지만 아내는 강력하게 거절했습니다.  

지난 일요일 오후 4시에 집에 도착해보니, 빨래를 2번 돌려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건조기까지 돌리면 예상 종료시간은 오후 10시가 조금 안될 듯했습니다. 아내에게 '여보, 빨래 2번 하면 9시 40분쯤 끝날 거 같은데.. 돌려도 될까요?'라고 묻자 아내는 '8시 이후에는 건조기, 청소기 안된다고 했죠? 빨래는 한 번만 돌렸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저는 '여보, 이거 빨래 마무리하면 안돼요?' 그러자 아내는 '여보, 층간 소음 나는 거 싫다고 했잖아요'라며 딱 잘라 말했습니다. 결국 빨래는 한 번만 돌리고, 청소를 한 후에 샤워를 했습니다. 빨래를 못하게 한 아내의 마음도 이해는 하지만 아쉽고 서운한 마음에 저녁도 먹지 않고 침실에서 그냥 잠을 잤습니다. '흥, 칫, 뿡!' 하면서 말이죠.

.

.

10시가 넘어 아내가 저를 깨웠습니다. '오빠, 지금 시위하는 거야?'라고 물어보더군요. 그래서 '아니, 그냥 졸려. 그냥 잘래'라고 말했습니다. 김밥 사 왔으니 저녁은 먹고자라는 아내의 말에 눈도 뜨지 않고 계속 '싫다, 자겠다'만 계속 대답했습니다. '근데 양치는 한 거지?'라는 아내의 질문에 결국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아내를 꼭 껴안고 '사랑한다고 말해줘'라고 말했습니다. 아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사랑해'라고 말해줬습니다. 그제야 포옹을 풀고 화장실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아내를 보며 한마디 했습니다. '난 안 사랑해'..  


Small things often.


* 흰색 수국의 꽃말은 변덕, 변심입니다.


ps. 그동안 층간소음에 고통받으신 아랫층 어르신께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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