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남편연구소 Nov 20. 2019

축의금에 관하여 : 원시적 P2P금융에서 벗어나..

한국 사회에서 경조사는 서양의 그것과는 꽤 다릅니다. 특히 경조금 문화는 '원시적 P2P 금융'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개인 간 금전거래가 엮여있습니다. 그래서 경조사는 단순한 축하와 위로의 자리가 아니라 개인 간 채무관계를 정리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본인 결혼은 부모 행사, 본인 장례식은 자녀 행사라는 말이 있을까요.


특히나 결혼식은 '채무관계'의 정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본인이 낸 축의금을 모두 정리해 놓았다는 이야기도 하시지만 저는 축의금이라는 게 '당시에 친하게 지낸 사람들이 축하하는 의미로 내는 돈'이라는 생각에 정리해 놓기는 부담이 되었습니다.


결혼식 후에 하객 리스트를 정리해 보니 제 친구, 동료, 선후배 198명이 축의금을 주셨더군요. 자연스럽게 저 역시 '채무관계'를 생각하게 되었고, 결혼 후 1~2년 동안에는 지인이 결혼을 한다고 하면 '내 결혼식에 축의금을 냈나, 얼마나 냈나' 확인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혼 한 지 3년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 당시에는 경제활동을 못했던 후배들이 결혼을 하기도 하고, 결혼 이후에 입사한 동료들이 결혼을 하게 되니 확인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지금 회사에서 근속연수가 10년이 넘고, 직급이 올라가면서는 동년배 결혼보다는 후배들 결혼식이 자연스레 많아집니다. 게다가 제 업무 특성상 회사에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는 편이라 새롭게 입사한 후배/동료들은 결혼을 하면 꼭 청첩장을 들고 와서 수줍게 전해주고 갑니다. 그럴 때 '너는 내가 결혼할 때 안 왔잖아.'라고 하는 것은 바람직 하진 않더더군요. 그렇다고 임원들처럼 '축의금'이 회사에서 지원되는 것도 아니라 부담이 안된다면 거짓말입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다보니 축의금도 축의금이지만 결혼식에 다녀오는 시간도 문제였습니다. 아내에게 주말까지 아이를 돌보라고 하는 것도 어렵고, 부부가 함께 참석하면 '축의금' 부담도 2배로 커지게 되니까요. 결국 결혼 축하는 참석해서 축하하는 방식, 돈으로 축의금을 내는 방식에서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의미는 지키되 비용은 낮추고 효과는 올리는 방식 말이죠.  


지금까지 찾은 방법은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영화 쿠폰&팝콘 set' 또는 '커피&디저트 set'를 축의금 대신 보내는 겁니다. 예산은 2~3만 원 수준이라 '축의금'으로 내기엔 부족한 금액이지만 받을 때 기쁨도 있고, 사용할 때 즐거움도 있기 때문에 받는 분 입장에선 수많은 직접 온 하객 못지않게 고마워하더군요. (그냥 제 앞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하핫..)


[선물하기]는 결혼 1~2일 전에 보내는 것이 좋고, 축하 문구는 참고하시라고 공유드립니다.  

1. 00님, 결혼 축하드려요. 아쉽게도 마음만 보냅니다.

    결혼 후에도 데이트는 꾸준히 하시길!!

2. 00님, 결혼 축하드려요. 아쉽게도 마음만 보냅니다.

    결혼 후에도 친구들과 커피 한 잔은 하고 지내세요.

3. 00님, 결혼 축하드려요. 아쉽게도 마음만 보냅니다.

    연애시절보다 더 즐거운 신혼이 되길 바랍니다.


한국사회에서 인맥은 중요하고, 경조사를 챙기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기혼자라면 내 가족을 먼저 챙기는 것이 맞습니다. 소중한 주말을 아내와 함께 보내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특히나 결혼식은 굳이 내가 챙기지 않아도 본인이 스스로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 챙기면서 스트레스 받고, '가족을 그렇게 챙기세요'라는 핀잔을 듣지 않도록 완급 조절도 필요하고, 효과/효율적 도구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략은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Small things often.


ps. 가능한 본인이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드리는 게 좋습니다. 물가상승율도 고려해야하니까요. :)

* 요즘 제 딸이 공주옷 입고 공주님(신부) 만나는 걸 좋아해서 직접 방문이 늘고 있습니다만.. 쿨럭..

매거진의 이전글 만화<쿵푸팬더> "좋은 뉴스, 나쁜 뉴스가 어디 있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