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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남편연구소 Dec 18. 2019

달리는 것보다 멈추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군대 이야기라 죄송합니다) 저는 군 시절 참모부에서 일한 덕분에 레토나(군용 지프차)를 타고 외근을 다니는 일이 꽤 있었습니다. 당시에 장롱면허를 갖고 있던 터라 운전병들의 운전기술을 눈으로 배웠습니다. 그중에 가장 인상적인 기술은 '정차'였습니다.


특히 여단장님 운전병과 함께 이동할 때면 정차할 때 아주 매끄럽게 정지하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몸이 흔들리지 않고, 언제 멈췄는지 잘 느껴지지 않았지요. 그래서 하루는 운전병에게 비법(?)을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브레이크를 여러 번 나눠서 밟다가, 마지막에 멈추기 전에 살짝 발을 들었다가 놔야 한다'는 겁니다.

 

전역 후에 첫 번째 직장 상사와 외근을 다녀오는데 (물론 그날도 팀장님이 운전을) 팀장님께서 운전을 잘한다는 것은 '동승자가 잠이 들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때 운전병이 알려준 정차하는 법이 생각났습니다. 상대방이 편안함을 느끼려면 급출발이나 갑작스러운 차선 변경도 곤란하지만 '자연스럽게 멈추는 능력'이 정말 중요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서 첫 차를 구입하고서는 한동안 멈추는 연습을 했습니다. 꽉 막힌 동부간선도로는 정말 좋은 연습장이었습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힘든 도로에서 교통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스스로도 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정차하는 법을 열심히 연마했습니다. 아내는 연애시절 제 차만 타면 졸리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가 되었지요.


운전처럼 대화도 편하게 하려면 '멈춤'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화의 시작(출발)은 가벼운 인사말로 쉽게 시작하고, 상대방의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도 진행을 할 수 있지만 '대화를 잠시 멈추는 것'은 기술이 필요합니다. 너무 빨리 브레이크를 밟아서도 안되고, 브레이크를 밟을 때는 마지막에 살짝 놓은 후에 다시 꽉 밟는 것처럼 말이지요.


대부분 가정에서 대화는 아내가 시동을 걸고 출발합니다. 그리고 아내가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끌어 갑니다. 그러다가 잠깐 멈춰보는 겁니다. 급정거하듯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아내 대화를 경청하다가 멈춰야 하는 순간이 오면 살짝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옅은 '미소'로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는 겁니다. 그리고는 '아.. 그랬구나'하면서 매듭을 짓습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멈춘 대화는 아내가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고 합니다. 평안한 대화를 위해서 편안한 멈춤을 연습해 보시길 바랍니다. 연비도 좋아지고 고장도 덜 날 겁니다. :)


Small things often.


* 언젠가 사윗감을 만나게 되면 확인하려는 자료 중 하나가 '운전 점수'였는데 자율주행 때문에 받을 필요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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