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아내가 '잠들기 전에 동화책 3권은 당신이 꼭 읽어주면 좋겠어요.'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전에도 종종 책은 읽어줬는데, 고정적으로 읽어주진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저에게 '잠들기 전에 동화책 읽어주는 역할'을 부탁(이라고 쓰고 명령이라고 읽는..)하는 겁니다. 그 순간 '우리 집에서 지금까지 내 역할은무엇인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주 듣고 보고 말하게 되는 표현 중 하나가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조직에서든 본인이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었을 때 가치를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생존도 보장받을 수 있게 됩니다. 물론 대체 불가능함을 위해서 정보공유를 안 하고, 후배 양성을 하지 않는 것은 좀 다른(나쁜) 문제입니다.
결혼 초기에는 주말 아침 브런치 만들기, 임신 중에는 태교 동화 읽기, 살트임 방지 크림 바르기 같은 달달한(?) 역할도 있었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없어지는 역할도 있고, 바뀌는 역할도 있습니다. 마치 연말연시에 조직개편이 되면서 직무 변경이 되는 일, 승진하면서 실무자가 리더가 되는 것과 비슷하지요.
요즘 남편이자 아버지로 제 역할을 돌아보면, 주말 청소와 다리미질, 꽃 관리, 사진 촬영 및 정리, 운전 그리고 마사지 정도입니다. 물론 주말이나 저녁엔 청소, 빨래/건조 그리고 설거지 등 다양한 집안일을 합니다만 소위 집안일은 아무래도 아내가 더 많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주말 중 하루는 아이와 단둘이 외출하는 일을 조금씩(정말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아이와 추억도 쌓고, 아내는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되니까요.
부부가 나이를 먹고 아이가 커가면서 가정이라는 조직도 내부적인 변화가 생깁니다. 그럴 때마다 주변을 살펴야 합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인데, 예전에 젖병 소독 열심히 한 이야기는 감동도 없고, 효과도 없습니다. 닌텐도는 화투를 만들던 회사였고, 3M은 광산회사였고, GE는 전구를 만들던 회사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이 변하면서 회사도 변합니다. 그런 회사의 상황이나 시대의 변화를 주목하고 예상하며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조직에서 '계속해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됩니다.
가족과 정서적, 직접 접으로 연계된 역할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밖에서 '돈을 벌어 오는 것'으로는 자신의 역할을 한정 짓는다면, (수많은 드라마와 뉴스에서 보여준 것처럼) 나이 들어 은퇴 이후에 가정에서 자신이 있을 곳을 찾지 못하는 기분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돈을 벌어오는 일이 가치 없는 일이라는 게 아닙니다. '오직' 그 일만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집안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지금 그리고 여기'를 보면서 '내일'을 함께 바라봐야 합니다. 마치 손홍민 선수처럼 끊임없이 빈 공간을 침투하고, 필요하면 빈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정'을 받습니다. 인생 참 힘들지요? 빈 공간을 찾아서 침투하는 주말을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