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못해도 괜찮아!

by 포근

남 앞에만 서면 쪼그라들고

그래서 어딘가로 숨고 싶은 이 감정이

'수치심'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변한 건 아니었다.



난 여전히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주저하고

또 앞에만 서면 긴장되고 떨린다.



하지만 달라진 것 한 가지가 있다면,

그러한 내 모습을 보더라도

실망과 자책, 자기비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얼마 전,

1차 논문계획서를 심사받기 위한 발표가 있었다.



교수님들 앞에서

논문에 대한 개요를 말씀드리고

피드백을 받는 자리에 선다는 건,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떨리고 긴장되는 일이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자리에 섰지만,

막상 그 자리에 서니

몸은 예전처럼 떨리고 긴장되었다.



5분의 발표와 교수님들의 피드백이 끝나고

겨우 자리로 돌아와서야

심하게 날뛰던 심장이 그제야 진정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마 그랬을 거다.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준비한 만큼 맘껏

자신 있게 발표하지 못한 내게

왜 그것밖에 못했나며

실망의 독설을 퍼붓고

들들 볶으며 나를 괴롭혔을 텐데..

이젠 좀 달랐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논문계획서를 쓰고 발표를 위해 애썼던

지난 나의 고생을 인정하면서

토닥여 주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남들에게 안 좋게 보일 것을 두려워하며

수치스러운 나의 모습을 참지 못해

분노를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고생하고 애쓴, 그리고 다소 창피했던 나를

안쓰럽게 여기며 토닥이고 감쌌던 것이다.



최근 발표 이외에도

그 이전에 있었던 발표에서도 비슷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것은 나의 발표기술이 월등히 향상되어서

이 상황들을 그럭저럭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생기면서

발표 후 실망보다 아쉬움이 나를 토닥이게 하고

그러면서 나에 대한 이해와 배려, 신뢰가 생겨

어려움 앞에서도 좀 더 힘을 내게 되는 것 같다.







예전에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소감을 본 적이 있다.

그 연설은 낭랑한 발성이나 화려한 제스처 없이

작가의 개성과 진정성만으로

충분히 청중을 사로잡고 감동을 주는 것이었는데,

그 순간 발표란 이런 거야..라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이 깨지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나다운 것이, 가장 힘이 세다는 생각을 했고

나 또한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했다.



다소 긴장하는 모습이지만

진심 어린 마음으로 준비한 자료를

성의 있게 발표한다면,

어떻게 보였 건 간에

또 어떻게 보건 간에

나에게 이미 충분한 것 아닐까..



그렇게 나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긍정적인 생각의 선순환을 만들어냈고,

수치심과 불안을 넘어

용기라는 새로운 감정을 불어넣고 있다.

그러했기에 이렇게 브런치를 연재하고

또 수치심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아직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나는 나를 향해 한 걸음씩 옮기고 있다.

그 발걸음의 원천은

나를 향한 따뜻한 시선, 그것 덕분이다.

그리고 문득,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은 당신에게 다정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