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나를 숨기고 싶었을까

by 포근

대학원에 들어와서 가장 놀랐던 건,

학생들이 미리 수업의 일부를 맡아

정리한 것을 발표하면

교수님이 보충 설명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주입식 교육이 익숙하고 편한(?) 내게

이런 방식은 낯설고

불편한 것이었다.



이유는 한 학기 수업 중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남 앞에 나를 드러내고

발표를 해야 했기 때문인데...



정말 몰랐다.

또 한편으론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남 앞에 나서는 일이 내게 이렇게 큰 일이라니!



열심히 수업 준비를 했음에도

잔뜩 굳어 발표를 마치게 되는 일이 많았고,

기대만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절망이

나 자신을 비난하고 자책하는 말로 돌아와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불안해소를 위해

내가 아는 것은 다해 본 것 같다.

우황청심환을 먹거나

호흡이나 심상을 활용해

긴장을 푸는 연습을 하거나..



하지만 그건 그때뿐.

남 앞에 나서면

나는 너무나 작고 초라한 존재가 되어 있었고,

사람들의 눈초리가 너무 무서워 도망가고 싶고

어디론가 숨거나 사라지고 싶었다.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고민이 생겼고,

그것은 계속 나의 발목을 잡았다.



'나는 왜 이렇게 남 앞에 나서는 것,

나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할까.'






심리치료에서는

증상의 완화만큼이나

그 이면에 숨어있는

심리적 단서의 탐색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은 자신을 이해하고

감정을 수용하는 과정으로 이어지고

그 자체가 치유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불안이나 긴장, 심지어 신체 증상은

무의식적인 갈등과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도 몰랐던 내면의 갈등 혹은

마주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상처, 두려움이

발표불안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발표불안이라는

겉으로 드러난 증상을 없애려고 노력했는데...

문제는 불안,

그 자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증상 이면에는

누군가에게 나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

평가받고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다.



그것들은 나를 긴장하고 얼어붙게 만들었고,

그런 거북스러운 상태가 싫어

나는 발표상황을 피하거나

긴장을 억누르려고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나는 나를 굉장히 못난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

이렇게 부족하고 결함 많은 나란 사람의 정체를 알면

사람들이 싫어하고 떠나서

결국 혼자 남을 거라는 생각에

심한 공포까지 느끼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두려움 앞에

그것을 철석같이 믿고 따르며 두려워하고,

심지어 공포까지 느끼는 나를 보면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은 심한 충격을 느꼈다.



그로부터 또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온몸과 마음으로 느꼈던 이 경험.

타인과의 관계에서 거절당할까 두려워하고

스스로를 불충분하고 결함 있는

나쁜 존재로 평가하며

숨고 싶어 하는 이 감정들이

'수치심'이라는 것을...

논문주제를 탐색하면서 알게 된 것이다.



수치심.

그것이 이렇게나 깊숙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아

나의 발목 잡고 있었다는 것을...

마흔 넘어 대학원에 들어와

한 학기 내내 발표불안으로 힘들어하면서,

비로소 자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에 이렇게 이름을 붙이고 나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