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sta Mańana>, 헛된 희망 일지라도 쌩큐?

내맘대로 풀어보는 올드팝송

by 늘 쪽빛바다

Sung by ABBA


Where is the spring and the summer/ 봄과 여름은 어디에 있죠?

that once was yours and mine/ 한때는 당신과 내 것이었는데

Where did it go, I just don't know/ 어디로 갔나요? 정말 모르겠어요

but still my love for you will live forever/ 하지만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은 여전히 영원할 거예요



아바의 수많은 노래 중에서 나는 이 노래를 좋아라 한다. 담백한 감정을 어려운 메타포 쓰지 않고 표현하는, 날 것의 퍼덕임이 있기 때문이다.


봄과 여름에 그녀는 사랑에 푹 빠졌던 것 같다. 두 계절을 송두리째 그들의 것으로 만들어낸, 사랑이 주는 기적을 오롯이 경험했던 것이다. 예쁜 꽃망울도 그들 사랑의 튼실함을 보여주는 것 같았고, 나날이 푸르러가던 초록도 그들의 짙어가는 사랑의 표식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꽃이 지듯, 계절이 바뀌듯,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는 자연의 한 순간처럼, 무지개처럼, 거짓말처럼 그렇게 잠깐 동안은 분명 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봄과 여름에 머물러 있고, 그에 대한 사랑도 변함없는데.




Hasta mañana 'til we meet again/ 조만간 봐요,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Don't know where, don't know when/ 어디서, 언제 만날지는 몰라도

Darling, our love was much too strong to die/ 그대여, 우리의 사랑은 너무 강렬해서 끝날 수 없어요

We'll find a way to face a new tomorrow/ 우린 새로운 내일을 맞을 방법을 찾을 거예요



“아스타 마냐나”(Hasta mañana)는 “내일까지”(utill tomorrow)라는 스페인어로서, “See you tomorrow”의 의미로 매우 흔하게 쓰이는 말이다. 화자는 헤어짐을 받아들일 수 없다. 가까운 미래에 조만간 다시 만나리라는 의지로 굳이 롱 굿바이가 아닌, “아스타 마냐나”라고 오늘 하루도 읊조린다.


내일의 해가 떠오르면 또 만날 수 있으려니 기대한다. 내일도 아무 일 없이 저물고 나면, 그다음 날에는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잠시만 헤어져있을 뿐, 이별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헛됨을 알면서도 희망을 품고 사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헛된 것임을 아는 순간부터 희망에게 뒤통수 맞지 않으려, 다른 선택을 시도하는 것이 나을까. 이 문제에서 그녀는 전자를 택한 것 같다.


조금 다른 상황이지만,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가 떠오른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그들의 비루하고 무료한 인생을 단번에 구원해 줄 ‘고도’를 줄곧 기다리고 있다. 고도만 오면 모든 외로움, 허기짐, 무료함이 한방에 해결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의 인생은 오로지 기다림의 연속이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고도만 오면 된다.


어떤 이가 작가인 베케트에게 대놓고 물었다. “도대체 고도가 누구죠? 누구길래, 고도만 오면 다 해결된다고 믿는 거죠? Godot라는 철자에 힌트가 있죠? 신이죠?” 그러자 베케트는 “나도 몰라요. 고도가 누군지 안다면 작품 속에서 밝혔을 겁니다”라고 답했다.


어중이떠중이 같은 인물, 혹은 너와 나의 모습을 한 군상들이 막연히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베케트가 고도의 정체를 드러냈더라면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기다림을 멈추었을까? 뭐가 되었건 새로운 삶 속으로 뛰어들었을까? 고도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하나쯤은 해결되었을까?




Hasta mañana, say we'll meet again/ 조만간 봐요,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말해주세요

I can't do without you/ 당신 없이는 아무것도 못해요

Time to forget, send me a letter/ 잊을만하면, 나한테 편지를 보내줘요

Say you forgive, the sooner the better/ 용서하겠다고 말해주세요, 빠를수록 더 좋아요

Hasta mañana, baby, hasta mañana, until then/ 조만간 봐요, 그대, 그때까지 안녕



그러나 고도는 오지 않는다. 그렇게 기다리던 고도는 “오늘은 해가 저물어 못 오시고, 내일은 꼭 오시겠답니다”는 어린아이의 메시지로 전달될 뿐이다. 그리고 정작 내일이 되면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고, 기다림은 끊임없이 그다음 날로 유예된다.


그저 하릴없이 기다림만 지속되는 상황은, 실존에 직면하여 버벅거리는, 우리 인생에 대한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이 노래에서 화자가 기다리고 있는 고도는 사랑하는 연인으로 치환될 수 있는데, “용서하겠다고 말해주세요”라는 부분에서 미루어 짐작컨대, 연인은 화자의 잘못으로 인해 떠난 것 같다.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상대가 먼저 용서해 주길 바라며 무조건 기다리는 화자는 철부지 같다. 더구나 잊을만하면 편지라도 보내달라는 말은 차라리 귀여울 정도로, 그녀의 세상은 온통 그를 기다리는 일로 가득 차있다. 이 지점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허망한 두 인물과 이 곡의 화자가 묘하게 겹쳐 보인다.




Where is the dream we were dreaming/ 우리가 꿈꾸던 그 꿈은 어디 있죠?

And all the nights we shared/ 우리가 보냈던 그 모든 밤은요?

Where did they go, I just don't know/ 다 어디로 갔죠? 정말 모르겠네요

And I can't tell you just how much I miss you/ 얼마나 많이 당신을 그리워하는지 말할 수도 없어요



과거의 아름다웠던 꿈과 아스라한 추억의 숱한 밤은 이제 더 이상 찾아 헤맬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소환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끝난 것은 끝난 것인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추억의 이름으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화자가 마냥 안타깝다.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오겠거니 하며, 그가 오는 순간부터 그녀 인생은 다시 분홍빛 생기 품은 삶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화자는 막연하게 기대한다. 그러나 화자가 기다리는 연인은 마치 고도가 그런 것처럼 내일 또 내일로, 하루하루 한 발자국씩 멀어져 간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그녀는 기다림 속에서 삭아갈 것이다. 이런대도 허망한 기다림을 택할 건지, 아님, 허망한 기다림일랑 접고 자신이 설 무대의 배경 화면을 바꾸어 보는 건 어떨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 나? 나라면, 바꿀래. 바뀌어볼래. 아니, 숫제 바뀔 테다!

이전 08화<Lemon Tree>, 어른이 된 제제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