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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현 Mar 26. 2021

희망을 주는 정원

포천 서운동산

불안이 삶을 침범했거나 알 수 없는 위험을 느낄 때. 그때는 일상에서 조금 떨어질 필요가 있다. 무엇 때문에 불안한지, 무엇이 나를 위험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보기 위해서. 제일 좋은 쉼터인 집안에도 두려움의 자국이 얼룩덜룩 묻어있다면 그때는 좀 편안한 풍경을 찾아 움직이는 것이 좋다. 움직이지만 움직이지 않는, 고요하지만 쓸쓸하지는 않은 곳. 조용하고 차분한, 포천의 서운동산으로 가본다.


서운동산은 1987년에 대한민국 관광농원 제 1호로 개관한 경기도 포천 죽엽산 아래의 정원이다. 개관한지 30년이 넘었다. 5만 여평에 예쁜 테마 정원과 호수, 레스토랑, 공연장과 동물원 등을 갖추고 있다. 호수를 끼고 산책을 할 수도 있고, 아기 동물들과 함께 숲에서 귀여운 추억을 남길 수도 있다. 오래된 숲의 편안함, 잘 정돈된 정원의 평온함은 혼란스런 일상 중에 늘 그리워지는 풍경이다. 


서운동산은 꽤 구석진 데에 있다. 차 두 대가 왕복하기 어려운 외길을 조마조마하게 운전해서 들어가야 한다. 거짓말처럼 나타난 너른 주차장에 차를 대면, 그 너머가 궁금해지는 작은 출입구가 보인다. 이제부턴 자그마한 비밀의 정원이 펼쳐진다. ‘정원’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어렸을 때 읽은 ≪비밀의 화원≫이 떠오른다. 아픈 소년과 고아 소녀가 울창한 숲에서 행복을 찾는 이야기. 그 책에서 묘사된 정원의 모습은 ‘정원’이라는 단어에 환상을 입혀주었다. 그들이 찾은 작은 출입구처럼,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이지는 않는 출입문. 내부 풍경을 기대하며 입장하기에 알맞은 크기다. 


서운동산은 규모가 크지는 않아도 예쁜 정원의 요소를 다 가지고 있다. 호수와 꽃길, 데크길과 온실. 예쁜 뷰를 감상할 수 있는 자리마다 벤치가 있고 여러 수목을 더욱 빛내줄 조형물도 설치되어 있다. 서운동산 곳곳엔 이곳에 사는 오리 몇몇이 꽥꽥거리며 자유로이 돌아다닌다. 풍경이되는 식물에 이어 서운동산 내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식자재를 재배하는 밭도 있다. 조화를 이루는 삶과 수목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에서 꼼지락 거리던 불안 덩어리가 바스스 흩어진다. 해답은 못 찾았지만, 괜찮을 거란 맑은 마음이 자라난다.     


평일 점심시간 전에 도착했더니 여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완전한 나만의 비밀 정원에 방문한 기분. 하늘을 그대로 담고 있는 호수 앞 벤치에 앉아 눈 앞에 펼쳐진 산과 정원의 모습을 보았다. 애써 이고 왔던 불안도 나쁜 마음도 깨끗하게 씻겨 내려간다. 잔디밭에 핀 예쁜 꽃, 봄마다 꽃을 피웠던 나무, 그리고 그 아래 흐드러지게 피어난 달맞이꽃과 철쭉, 꽃창포.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던 식물을 섞어서 기억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확실히 아름다운 정원이다.     




서운동산 주위엔 딱히 어떤 시설이 있는 게 아니라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내부 레스토랑 쪽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가 이따금 들리는 것만 빼면 오리가 지나가는 소리, 거북이가 참방대는 소리. 아, 오리가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볼 때는 잠깐의 마음의 평화가 깨지긴 했다. 싸우다 쫓겨다니는 오리 한 마리에겐 이곳이 불안의 일상일까. 나는 여기서 편안함을 가지고 돌아가지만 오리는 불안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잠깐 생각하며 걸음을 이어갔다.




저 멀리 어딘가 있을 정원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을 때 이곳에 가끔 들른다. 서운동산은 정원 느낌이 강한 숲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계기가 됐다. 이곳에 방문한 이후론 등산보다는 편안한 숲길에 대해 좀 더 관심을 두었다. 자연스레 조성된 숲도 좋지만, 사람의 손이 닿아 정성스레 자라난 숲이나 초원도 꽤 사랑스럽다.    

  

나도 언젠가 이런 정원을 가꾸며 살 수 있을까. 숲을 가꾸며 살 수 있을까. 사람들에게 ‘우리에겐 00 숲이 있어’라는 위안을 줄 수 있는 삶을 살면 얼마나 좋을까. 숲에 대한 꿈을 키우며 어느새 반짝이는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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