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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현 Mar 28. 2021

동백꽃, 추억의 무게

부산 동백섬

매년 봄, 나는 부산에 간다. 내가 태어난 봄날을 엄마, 아빠에게 굳이 축하받으러. 또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과 팥밥을 기어이 얻어먹으려고. 인천 근처에 살면서 인천 바다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다고는 하지만 가끔은 파도가 철썩대고, 반짝이는 하얀 모래와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가진 해운대의 바다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 그리움을 꼭꼭 눌러두었다가 매해 돌아오는 봄날의 생일날, 나는 해운대의 봄을 느끼러 간다. 

   

해운대, 하면 떠오르는 것이 많다. 해수욕장을 비롯해 청사포, 미포, 달맞이길, 그리고 101층이나 되는 엘시티! 그래도 나는 여전히 달맞이 고개, 그리고 그 맞은편에 자리 잡은 조선 호텔과 호텔이 자리 잡은 동백섬이 해운대의 상징이라 생각한다. 그것들은 오랜시간 변함이 없었다. 번쩍이는 주상복합이 들어서기 이전에도, 어린이였던 내가 물놀이를 갔던 1990년대에도 늘 그곳에 있던 풍경. 어떤 랜드마크가 들어와도 그 상징을 대체할 수는 없다.


동백꽃이 꽃방석을 이룬다는 동백섬. 조선 호텔 뒷쪽으로 난 산책길은 해운대에 방문할 때 마다 늘 걸었던 곳이다. 동백섬을 둘러보는 데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물론 누리마루에 들러 구경하고, 곳곳에 앉아 산책하다 보면 1시간이 훌쩍 넘기도 한다. 바다를 끼고 걸을 수도 있고, 동백나무 길을 따라 숲길을 걸을 수도 있다. 따뜻한 봄바람을 담은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바다 풍경을 잠시 숨겨둔 따뜻한 동백나무 숲길을 걷는 것도 좋다. 겨울부터 피는 동백꽃은 3월 말이 되면 절정에 달한다. 3월 초의 동백섬엔 애기 동백꽃이 예쁘게 피어있다. 이미 지난겨울부터 피어있었을 꽃. 동백꽃이 만개했다는 건, 이제 본격적인 봄날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곧 동백꽃의 날들이 저문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3월의 초입인데도 뎅강, 숲길에 떨어진 동백꽃이 보인다. 푸른 잎 위로 새빨갛게 떨어진 꽃. 누군가는 동백꽃의 이런 개화 시기를 두고, ‘철 아닌 철에 피었다가 지는 붉은 눈물’로 동백꽃을 묘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운대 바다의 화려한 풍광을 배경으로 피었다 지는 동백꽃이 도저히 ‘슬픔’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동백꽃이 피고 지는 시기가 다른 봄꽃에 비해 좀 빠를 뿐. 다른 것들과 시기가 다르다고 해서 그게 슬픔이어야 하나.

     

부산에 살 때는 친구들과 종종 동백섬을 찾았다. 해운대 바닷가에 앉아있다, 동백섬을 산책하는 것이 코스였다. 한 번은 친구 하나와 김밥을 싸 들고 동백섬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후드티 뒤에 달려있던 모자를 무심히 얹어 쓰고, 비를 맞으며 김밥을 먹으며 그렇게 걷기도 했다. 봄이라서 그런가, 비가 안 차갑네. 이정도 비는 맞아도 괜찮다, 라고 하면서. 마흔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동백섬에 들를 때면, 비를 맞으며 먹었던 그때의 김밥이 떠오른다. 그때 우리가 함께 걸었던 길, 비 때문에 동백꽃이 더 빨리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하던 친구의 목소리가 아직도 뚜렷하다.     


동백섬을 걷다 보면 숲 사이로, 숲 너머로 해운대 바다가 펼쳐진다. 그 풍경을 한참 보고 있자면 바다 향기에, 바다를 비추는 숲의 영롱함에 기분이 꽤 가벼워진다. 동백꽃은 곧 질 것이다. 이곳에 함께 왔던 친구는 이미 지고 없고. 다른 꽃, 다른 사람과 달리 움직이는 시간. 그걸 슬프게 여기고 싶지는 않은데, ‘붉은 눈물’이란 선명한 표현 때문에 가끔 슬픔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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