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끌려다니는 편이었습니다. 2부
나는 ‘연락’이 사랑의 척도라고 믿었다.
카톡이 뜨면 가슴이 뛰었고,
답장이 늦어지면 불안해졌다.
그는 회피형이었다.
연락은 자주 끊겼고, 감정 표현은 드물었다.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먼저는 들어주고 바뀌겠다고 했지만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각하며 다시 조용해졌다.
무의식 속에서, 나는 가족을 의지할 수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연인이 내 세계의 전부처럼 느껴졌다.
‘그 사람이 나의 구원자가 되어줄 거야.’
‘이 사람과 잘 되기만 하면, 내 삶이 달라질 수 있어.’
그 믿음이 너무 절박해서, 연락 하나에 하루가 무너지고 다시 세워졌다.
어느 날은 연락이 두절됐다.
밤새 그 사람은 직장 동료들과 있었고,
그 자리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그 사람은 말했다.
“다들 너 보고 보살 같대.”
“그 정도로 맞춰주는 사람 없다더라.”
그 말을 들었을 때, 이상하게 울컥했다.
내 이야기를 나 아닌 사람들과 나눈 그 사실보다,
내가 왜 보살이어야 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왜 다른 사람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나는 그 사람이 숨고 싶어 할 때 기다렸고, 그 사람이 먼저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려 했다.
그러면서 내 마음은 점점 닳아갔다.
그럼에도, 나는 그 안에 사랑이 있다고 믿었다.
"과거가 안타까운 사람이야, 나만이 옆에 있어줘야 해."
“바빠서 그런 거겠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일 거야.”
그가 나의 전부인 것 처럼, 내가 그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단단하게 오해했다.
그를 대신해서 이해하고, 해석하고, 변명하는 건 늘 나였다.
책을 읽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애착 이론을 알게 되었고,
‘불안형’이라는 단어에 내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감정이 생기면 도망가는 사람을 만나고 있었고,
그 사람을 더 쫓을수록,
나는 더 작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용기 내어 말했다.
“너가 그렇게 하면, 내 기분이 나빠.”
“나는 이런 식의 관계가 힘들어.”
하지만 그 말이 관계의 끝이 될까 봐 무서웠다.
내가 말하는 순간, 이 사람은 떠날 것 같았다.
그래서 또 참고, 또 조용해졌다.
이제는 안다.
‘연락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연락이 없는 관계’가 사랑일 수는 없다는 것도.
당신은 누군가의 연락에 일희일비하나요?
‘표현하지 않아도 사랑은 있는 것’이라고 믿으시나요?
‘상대의 과거’ 때문에 지금의 당신이 괴롭고 있다면, 그것은 사랑일까요, 연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