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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혜윰 goodlife Oct 28. 2020

치유의 벗을 만나다

자연은 삶의 영감을 주고, 치유해주는 벗이다

현실만 보였던 세상에서의 자연은 가볍게 지나쳐 버리는 배경 정도로 여겼지 싶다. 계절이 바뀔 때 찾아오는 자연의 변화에 잠깐씩 눈길 한번 주고 그렇게 지나쳐버렸던 존재로서 말이다. 자연을 천천히 바라볼 만큼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지도 모르지만, 여유가 없으면 가깝게 있던 것도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부정할 수 현상.


그러나 이렇게 속도를 늦추고 여유의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보니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삶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가장 큰 변화는 자연 곁에서 느릿한 호흡으로 사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지켜보면서 자연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해보게 됐다는 사실. 자연은 내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그저 지쳐있던 내 곁에서 그렇게 삶에 영감을 주고, 좋은 벗이 되어 주었다.




바쁘고 시끄럽게 살아가는 인간 세상을 둘러쌓고 있는 자연은 여유롭고 조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흔들리는 환경에서도 자연은 삶은 아등바등해 보이지도 않았고, 스스로 삶을 잘 지켜내는 모습에서 그 의젓함이 배어나니 참 부럽기도 하다. 더욱이 자연의 품은 어찌나 넓고, 손길은 얼마나 부드러운지 자연 속에 있으면 내 심신이 보듬어지는 느낌이 들어 참 좋다. 생의 에너지가 줄어들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할 때 즈음부터 자연은 우리 곁으로 다가와 걱정 말라고, 든든한 벗이 되어주는 것일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걸 보면, 우리가 삶의 위안이 필요할 때 비로소 자연의 존재감은 커지는 것도 같다. 어쨌든 자연의 매력에 빠지게 되면서 내 삶 속에도 자연을 더 가까이 두고 싶어 졌고, 주말이나 쉬는 날에는 신랑과 함께 이곳저곳 자연 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자연을 벗 삼아 다니는 여행은 삶의 낙이 되어갔다.


그저 단출한 차림과 무계획으로 이른 새벽에 자연을 향해서 길을 떠나본다. 마음 가는 방향으로 짙은 어둠 속을 뚫으며 자연이 있는 곳 어디라도 좋으니 마음대로, 발길 닿는 대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여행을 즐기고 있다. 목적지도 불분명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 세세한 계획을 세우지 않은 채 그렇게 자연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심신의 충전이 필요한 시기, 새벽길에 떠나는 자연 여행은 매번 다른 분위기로 내게 말을 걸어온다. 지금껏 살면서 자연의 통트는 순간을,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을, 그리고 빼어난 깊은 산세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그런 시기에 자연을 벗 삼아 떠나는 여행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맛이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자연을 마주하는 감정의 온도가 이전과는 달랐기에 자연 여행을 경험의 맛도 달라진 것이지 싶다. 산이든, 바다이든, 들판이든, 그 어디를 가든지 자연은 내게 무언가를 알려주고 싶어서 계속 이렇게 속살거리는 듯했다.


‘지금 네가 보고 있는 이 장엄하고 멋진 풍광도 가까이서 보면 늘 흔들리고 있는 상태야. 흠집도 많고 흔들리게 하는 요소가 많지. 어느 때는 우리도 이상 현상을 보이기도 . 하지만  또한 자연이고,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멈추지는 않으려고  뿐이야. 멈출 이유는 없는 것이니까. 주춤할 수도 있고, 때론 꺾일 수는 있지만, 살아있는 것은  변화를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자연은 자연만의 시간을 절기로 구별해서 자연에 맞는 속도로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의미를 만들어가지. 그것이 삶이라고 생각하니까. 자연의 삶을 훼방 놓는 수많은 티끌을 마주한다 해도 우리는 각자에게 어울리는 속도로, 각자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삶의 방식으로 변화를 주며 살려고 하는 것뿐이야. 그 과정의 한순간을 오늘 네가 마주하는 것이고. 우리는  변화가 때론 이르거나 늦어져도, 탓하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하고 싱클레어한테 차근차근 알려주는 데미안처럼, 자연은 내게 알아듣게 차분히 설명해주는 듯했다.  


자연과 시간을 보내면서 이런 생각이 이야기처럼 스며든 것은 어쩌면 내면이 자연의 모습을 빌어서 지쳐 있던 나 자신에게 살아야 하니까 본능적으로 회복의 메시지를 보내는 건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이런 이야기를 내면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자연과 벗이 되는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아마 그 순간들이 없었다면 여전히 그 메시지는 와 닿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기에.




자연도 모습을 바꾼다. 계절의 환경에 맞춰서 달리한다. 띄엄띄엄 볼 적에는 자연의 삶과 그 변화는 순조롭게만 보인다. 하지만 아름다운 절경을 고귀한 자태로 보여주는 대자연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없이 흔들림 속에서 자연의 삶을 살아내고 변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 꺾이고, 저기 베이고 곳곳이 흠집 투성이다. 다만, 자연은 자신을 스스로 멈추지 않는다. 이런저런 티끌이 자연의 흐름을 방해해도 자신을 스스로 정화하고 치유해가며 자연이 보여주려는 세계를 향해 생명력이 존재하는 한 멈추지 않고 꿋꿋하게 나아가고 있다.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프더라도 살아있기에, 존재하기에, 삶이 끝나지 않았기에, 그것만으로도 존재 이유가 되어 의연하게 대처해나가는 모습이다. 주변의 자연보다 더 멋지게 피워내는 일에 비교하고, 급급해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자연에게 주어진 본연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며 완주하는 일이 진정한 목적인지도 모른다.


삶에서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티끌도 어쩌면 자신을 흔들어 놓는 게 아니고, 자신이 그 티끌에 집착하기에 삶을 더 괴롭히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대개 무의미해지고 삶에서도 기억되지 않는 티끌에 불과할 텐데, 자신의 집착에 의해서 벗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도 싶다.


여행을 좋아하는 맛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여러 여행의 맛을 좋아하지만, 나는 자연 여행에서 치유의 맛을 알게 된 경험에 특히 감사하고 소중한 마음이 든다. 마음이 지쳤던 순간에 떠난 우연한 여행길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며 기분전환을 넘어서 치유하는 맛까지 선물 받게 된 경험이었기에 더 잊지 못한 순간들로 기억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두 번째 인생을 꾸려가며 사는 기분으로 내 미지의 세계를 조금씩 밝혀나가며 살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많은 것들이 어둡고 보이지 않지만, 심신의 건강을 회복하고 여유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니 하나하나 심지를 찾아서 불을 밝혀가는 이 시간도 감사하고 즐겁다.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한 나만의 워라밸 방식을 찾고, 만들어가는 일에 여느 때보다도 관심이 크다.


심신을 회복하기 위해 선택했던 느릿한 삶의 방식, 그리고 자연을 둘러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해본 시간. 그 과정에서 삶의 관점을 바꾸게 됐고, 어떻게 하면 생활의 풍미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깨달았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마음에 기록되고 바탕이 되어주니 새로이 꾸려가는 이 두 번째 인생은 좀 더 특별하고 더 소중하게 와 닿는가 보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이 느릿한 속도로 살아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내 지금의 일상도 금세 다시 세상의 속도에 맞춰서 바쁘게 돌아가려고 한다. 알면서도 하지 않는 죄가 더 나쁘다고 했던가. 자연에게서 배운 속도를 잊지 않기 위해서 일상에서도 자연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생활 방식을 더 가까이 내 곁에 두려고 노력 중이다.


집안에는 자연에서 온 식물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자연을 떠올리고, 틈틈이 시간 내서 집 앞 근처의 자연 산책로나 공원을 오고 가며 자연이 뿜어내는 건강한 내음을 맡으며 심신도 정화하고, 그리고 휴일에는 종종 신랑과 함께 새벽에 일어나서 자연의 더 깊은 곳으로 향해서 자연이 살아가는 삶을 느껴보고 오기도 한다. 그렇게 자연과의 연을 이어가 본다.


자연 여행을 나설 때마다 드는 마음은 소중한 옛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라 설렌다. 자연이 남달리 느끼기 시작한 시기가 내가 힘들고 지쳤을 때여서 더 그런지는 몰라도, 자연은 내게 삶의 영감을 주고 이끌어준 고마운 존재요, 심신을 보듬어주는 치유의 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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