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데우고 마음도 데우고, 치유의 맛으로 즐겨요
수술 후 봉합한 신체 부위는 잘 아물었지만, 여전히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체감적으로도 면역력은 약해져 있어 쉬 피로하고 부종은 딱딱한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듯 살짝 누르기만 해도 몸 곳곳이 아팠었다. 혈액순환도 원활하지 않아 손발이 차갑고 자주 저린 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면역력과 스트레스 관련 검사 지수들이 나쁘게 나왔으니 생활 습관 개선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남겼다. 수술까지 받았는데 몸과 마음이 동시에 나쁘다는 진단까지 받다니 개선하지 않으면 큰일 나겠구나, 싶더라.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삶의 본능이 현실 전면으로 튀어나와 지휘봉을 잡고 나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사람이 가장 크게 바뀔 수 있는 추동은 위기인지도 모르겠다. 삶의 위기의 순간에 변화의 진폭이 가장 큰 것 같다. 평소엔 따로따로 놀던 몸과 마음, 정신이 삶의 제동 후 똘똘 뭉쳐 삼위일체의 조화로움을 만들어냈으니.
당시 수술 후, 신체상 제일 고통이었던 것은 다리 근육이 뭉치는 것과 자고 일어나면 굳어버리는 손가락 통증. 자고 일어나면 손가락이 굳어져 구부려지지가 않았다. 늘 마사지를 하며 풀어줘야만 했다. 몸의 고통을 낫게 해 주기 위해 반년 넘게 매주 2~3회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다니면서 물리치료를 받고 했지만, 회복의 속도는 계절이 바뀌는 속도보다 한참 느렸다.
다니던 한의원에서도 수술해서 면역력이 더 떨어져 있을 수 있고 몸의 신진대사가 전체적으로 떨어져 순환이 잘 안 돼 회복이 더딜 수 있다며, 몸을 따듯하게 해 주고 온탕욕을 자주 해보라는 권유를 해주었다. 나는 사실 사우나를 하며 땀을 내는 방식을 평소 즐겼던 편이 아니었다. 답답하기도 했고 매주 적지 않은 시간을 내서 몸을 온탕에 한두 시간을 지긋이 담그고 있는 일은 마음 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치유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전환하니, 몇 시간 사우나에서 보내는 일은 더는 귀찮게도, 어렵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병원과 한의원 치료에 매주 2~3회 사우나를 찾으며 치료하는 마음으로 온탕과 열탕을 번갈아 가며 두어 시간 몸을 데워주었다.
삶을 전환한 세상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미지의 세계.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없었으나 뭐라고 형용할 수 있는 생의 에너지를 기운 삼아 마음이 끌리는 대로 향했다. 심신을 치유해가며 새 방식, 새 습관을 채워가며 새로운 일상을 다시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느긋한 마음가짐으로 몸을 데워가며 방울방울 맺히는 땀을 통해 노폐물을 배출해 주니 개운했다. 그리고 그 횟수가 더해질수록 굳어있던 내 몸에도 좋은 변화가 찾아왔다. 눈에 띄게 변화를 느낄 수 있었던 점은 우선 부기가 서서히 빠지면서 몸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고, 몸도 말캉말캉해지며 순환도 좋아져 냉한 손발에도 온기가 감도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가장 아픈 손가락의 통증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겨울이 지나갈 때까지는 계속되기는 했으나, 느릿느릿 통증이 감소하는 걸 체감할 수 있었기에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계속 몸을 따뜻하게 하고 잘 관리하면 좋아질 수 있으리라, 라는 믿음으로 지속해서 온탕욕을 하면서 몸의 온기 순환에 신경을 써갔다. 그렇게 일 년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추워지는 계절이 왔다. 다시 추워져서 굳으면 어쩌나 불안했는데 지속해서 몸의 기운을 따뜻하게 보살핀 덕인지 일 년 전 겨울에 찾아온 내 손가락 마디에 통증이 더는 찾아오지 않았다. 말끔히 사라졌다. 한 해 동안 심신을 보듬고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같아 이 또한 일상의 새 기쁨이 되어주더라.
돌이켜 생각해보면, 엉망이 된 심신을 치유하는데 산책은 내 마음을 치유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면 온탕욕은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며 체질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지 싶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내 심신의 안정에 산책과 온탕욕 은 심리적 위안을 주고 있다.
물론 즉물적으로는 몸을 다스리는 한약도, 식이요법도, 운동도 병행했기에 이 복합적인 노력이 몸을 회복할 수 있었겠지만, 아픈 몸을 추스르기 위해 스스로 다시 찾았던 사우나가 심적으로는 과거 유년 시절 찾았던 그때의 사우나와는 사뭇 다른 인상을 남겨준 터라, 내겐 그 의미가 남달리 더 특별하게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을 찾아 떠올려보면, 어린 시절엔 엄마 손에 수동적으로 이끌려서 찾았던 사우나에서 온탕욕을 하면 몸이 시원하게 풀린다는 어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 세월이 지나고 몸의 곳곳이 약해진 상태에서 다시 그곳을 찾게 된 나는 옛 어른들의 그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다른 시각에서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온탕욕을 하며 몸이 풀리는 그 기분은 아마도 삶의 고단함을 정화해 주는 이런 치유의 맛을 의미한 것은 아닐는지.
온탕욕이 건강 관리에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일상에 쌓였던 내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고 나를 안정시키는 치유요법으로는 톡톡히 제 몫을 해주고 있다. 그래서 심신을 잘 회복한 내 삶의 일상에서도 온탕욕은 꾸준히 즐기고 있다. 매주 시간을 쪼개서 엄마와 함께 사우나 가서 느긋하게 온탕욕을 하는 것도 모녀의 데이트 일정 하나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사우나 온탕욕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두 가지다. 내 심신의 피로감을 정화해 주는 의식의 하나요, 다른 하나는 엄마와 서로의 삶을 보듬어가며 좋은 추억을 쌓아가는 소중한 일정이라서. 내게 사우나 온탕욕은 개운함을 주는 것 이상으로 심신을 치유해 준다. 스스로 돌보는 자기 치유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방식 중 하나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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