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지도 않고 완전히 익지도 않은 이 느낌이 좋다.
사십 대의 삶은 이전과는 다른 맛이 느껴진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 체력은 확실히 이전만은 못하지만,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안정적인 느낌이 난다. 삶의 힘겨운 굴곡을 지나오며 인이 박인 것일까, 아니면 시야가 좀 더 넓어진 것일까. 그 무엇이든지 간에 지금까지 살아본 생의 맛 중에서 나는 지금의 이 맛이 참 마음에 든다.. 설익지도 않고 완전히 익지도 않은 이 느낌이 좋다. 이 중간의 느낌, 참 안정적이다.
젊은 날엔 앞서기 위해서 서둘러 재촉하고, 비교 경쟁에서 지기 싫어서 힘을 많이 주며 살았던 것 같다. 그렇게 바동거리며 올라가 보니 생각보다 크게 별로였다. 동질적인 세대가 보이지 않았다. 함께 나누고 싶은 정서와 감정들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윗세대와 동 세대가 없으니 참 외롭더라. 물론 뒷세대가 싫은 것은 아니다. 낯선 느낌에서 오는 위축감은 피할 수 없었을 뿐이다. 아마도 세대 간의 비율이 깨지니 그 틈을 나서 상대적 정서의 박탈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오르고 싶은 자리에 오르고 나면, 그 행복감이 참 클 것 같았는데 그만큼 상대적으로 함께 할 동기와 동 세대의 사람들이 급격하게 줄어든다는 느낌은 참 외롭더라. 이런 느낌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몰랐다. 윗세대의 그늘이 이토록 그리울지도 몰랐다. 있을 때는 결이 맞지 않을 때마다 답답하고 갑갑하고 내 속도를 자꾸 늦추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심심찮게 불만과 불평을 쏟아냈는데 말이다.
막상 내 윗세대가 없는 곳에서, 내 동 세대의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있어 보니 외로움이 생각보다 크게 밀려왔다. 앞선 세대의 존재가 심리적으로 얼마나 큰 위안이 되고 있었는지를 그제야 느끼게 됐으니. 이건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데.. 그 외로운 맛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알겠더라. 세대 간의 조화로운 구성비가 삶에 얼마나 큰 안정감을 주는지 알겠더라.
그 시간을 겪고 보니, 나는 중간 세대로 지내는 현재의 삶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통제할 수 있다면 이 중간 세대에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앞선 세대를 통해서 지혜도 배우고 예습도 하고, 뒤이어 오는 세대를 통해서도 새 감각도 맛보니 참 좋다. 그리고 나와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생의 동기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큰 위안과 용기가 되는 것 같다. 함께 가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대 간의 조화, 화합이 왜 이토록 중요한지를 세대의 중간층이 되면서 이제야 그 맛을 알아가는 것 같다. 이제 좀 사람답게 사는 맛이 무엇인지 깨닫고 찾아가는 듯하다. 비록 체력은 점점 감소하는 걸 체감하지만 정신과 마음은 더 충만해지니 이 시기에서 교차하는 생의 에너지가 나는 감사하고 행복하다. 영글어가게 해주는 시기를 건너는 느낌을 받는다. 값진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