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질문
회사는 참 묘~한 공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전쟁터이고, 누군가에게는 학교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피난처입니다.
- 어떤 이는 회사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 어떤 이는 회사에서 자신의 한계를 체감합니다.
-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이 어딘가에 서있습니다.
'그'는 오늘도 같은 시간에 출근했습니다.
익숙한 지하철, 익숙한 건물, 익숙한 보안 게이트....
카드를 찍는 순간 들리는 ‘삑’ 소리는 마치 하루의 역할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처럼 느껴집니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잠시 바라봅니다.. 피곤해 보이지만 무너져 보이지는 않습니다. 지쳐 있지만 포기한 표정은 아닙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속삭입니다.
“그래도 잘 버티고 있지.”
이 문장은 위로이면서 동시에 방어막입니다.
회사라는 공간은 많은 것을 제공합니다.
정해진 월급, 정해진 역할,
정해진 목표, 정해진 평가 기준.
우리 대부분은 그 안에서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법을 배웁니다.
- 보고서를 쓰는 법을 배우고,
- 회의에서 말하는 법을 배우고,
- 성과를 숫자로 증명하는 법을 배웁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점점 능숙해지죠.
“회사 생활 잘한다”는 말을 듣게 되고,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게 되며,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신뢰를 얻습니다.
그 모든 과정은 분명 성장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지금 내가 쌓고 있는 이 역량은
회사 밖에서도 그대로 유효할까?”
이 질문은 조용히 스며들지만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기반을 처음으로 흔드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성장의 무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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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 우리는 회사라는 구조 덕분에 빠르게 배웁니다.
- 혼자였다면 경험하기 어려웠을 규모의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 혼자였다면 감당하기 어려웠을 리스크를 조직이 대신 떠안아 줍니다.
회사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회사는 우리를 보호합니다. 그리고 보호는 때로 성장을 둔화시키는 가장 조용한 요인이 됩니다.
보호받는다는 것은 편안함을 의미합니다.
- 실패해도 월급은 들어오고,
- 성과가 부족해도 생존이 위협받지는 않으며,
- 조직의 이름이 나의 신뢰도를 일정 부분 보장해 줍니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 이 구조에 적응합니다.
아니, 익숙해집니다.
아니, 의존하게 됩니다.
그는 한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꽤 경쟁력 있는 기획자라고 생각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회사 안에서 그는 분명 성과를 내고 있었고, 주변의 인정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질문 하나가 분위기를 바꾸었습니다.
“그 역량을 회사 밖에서도 그대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습니다.
자신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기준이 달라졌을 뿐이었습니다.
회사 안에서의 역량은 대부분 ‘맥락 기반 역량’입니다.
조직의 브랜드,
조직의 시스템,
조직의 리소스,
조직의 네트워크....
이 모든 것이 역량의 일부로 작동합니다.
우리는 개인의 능력과 조직이 제공하는 기반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 채 성장을 평가합니다.
회사는 무대이자 보호막입니다.
무대이기에 우리는 성장하고,
보호막이기에 우리는 안심합니다.
문제는 보호막이 너무 견고해질 때 발생합니다.
우리는 도전보다 안정에 익숙해지고,
확장보다 유지에 집중하며,
성장보다 평가에 민감해집니다.
그는 어느 순간 깨닫습니다.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고 믿었던 시간의 상당 부분이 사실은 ‘적응’이었다는 것을. 조직의 요구에 맞춰 최적화되고, 평가 기준에 맞춰 조정되고, 구조 안에서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법을 익혀왔다는 것을.
그것은 분명 가치 있는 과정이었지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회사는 우리를 키웁니다.
그러나 회사는 우리의 모든 가능성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회사는 우리의 인생을 대신 설계해 주지 않으며, 회사는 우리의 미래 경쟁력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회사는 환경입니다.
결국, 주체는 개인입니다.
이 시리즈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회사를 떠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회사를 부정하자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회사를 ‘현실적으로 다시 바라보자’는 이야기입니다.
성장의 무대로서의 회사,
그리고 보호막으로서의 회사.
이 두 얼굴을 동시에 인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다음 질문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회사 안에서 잘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회사 덕분에 강해지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회사 구조에 기대어 안정화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스스로 경쟁력 있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조직 이름이 만들어낸 경쟁력일까요? 이 질문들은 불편합니다.
그러나 자생력은 언제나 불편한 질문에서 시작하죠.
그는 퇴근 셔틀버스에서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1) 나는 지금 ‘성장’하고 있는가, 아니면 ‘적응’하고 있는가?
2) 회사라는 환경이 사라져도 유지될 역량은 무엇인가?
3) 나는 회사에 속한 사람인가, 아니면 스스로 설계 중인 사람인가?
그는 특히 '평가 기준에 길들여진 사고방식'에 얽매여 있다고 생각하고 한숨을 쉽니다.
* '기획자란 작업으로' 브런치는 아래 링크와 같습니다. '어떻게 기획자라는 직업을 저만의 관점으로 정의할지?' 배경으로 생각을 작성하였습니다. 10편 글이 모티브 역할을 하여, 이번 브런치 글을 쓰게 되었네요.
https://brunch.co.kr/brunchbook/strategyplan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