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고과는? 난 괜찮은가?
한번 생각해 봤음 합니다.
언제부터 판단의 순간마다 ‘옳은가’보다 ‘괜찮은가’를 먼저 고민하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은 낯설지 않지만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너무 익숙한 구조 속에서 너무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이며, 회사라는 공간에서 기준은 공기처럼 존재하여 늘 영향을 미치지만 그 존재 자체를 의식하게 되는 순간은 많지 않기 때문이죠.
그는 사회생활 초반의 자신을 종종 떠올립니다. 그 시절의 판단은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고 문제는 해결의 대상이었으며 선택은 비교의 결과였습니다. 무엇이 더 나은 방향인지, 무엇이 더 효과적인 방법인지, 그는 문제 자체에 집중하려 했고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일은 피곤함보다 설렘에 가까웠습니다. 회의는 긴장되었지만 살아 있는 느낌이 있었고 보고서는 부담스러웠지만 성장의 통로처럼 느껴졌으며 그때 그의 사고에는 아직 ‘평가’라는 필터가 지금처럼 두껍게 자리 잡고 있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점점 능숙해졌습니다. 어떤 보고서 형식이 선호되는지, 어떤 논리 구조가 설득력을 갖는지, 어떤 표현이 안전한 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감각을 익혔고 조직의 언어를 배우며 조직의 흐름에 적응했습니다. 그 능숙함은 인정으로 돌아왔고 그는 보고서가 깔끔하다는 평가를 들었으며 정리를 잘한다는 말을 들었고 이제 믿고 맡길 수 있겠다는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는 성장하고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도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성장의 성격을 깊이 구분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회사라는 조직은 '기준'으로 움직입니다. 성과 기준과 평가 기준, 의사결정 기준과 역할 기준은 조직의 효율을 위해 존재하며 수많은 판단을 일일이 새롭게 해석할 수 없기에 조직은 공통의 잣대를 만들고 구성원은 그 잣대 안에서 움직입니다.
기준은 혼란을 줄이고 속도를 높이며 의사결정 비용을 낮추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기준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기준이 참고선에서 절대선으로 변하기 시작할 때, 그리고 판단의 도구였던 기준이 사고의 전제가 되는 순간부터 서서히 드러납니다.
그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사고 흐름을 관찰하게 됩니다. 보고서를 작성하며 가장 오래 붙잡고 있는 질문이 ‘이 내용이 정확한가’가 아니라 ‘이 표현이 문제 되지는 않을까’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아이디어를 정리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이 접근이 효과적인가’가 아니라 ‘이 방향이 리스크로 보이지 않을까’라는 점을 인식합니다. 그 순간 그는 설명하기 어려운 낯섦을 느끼고 사고의 중심이 문제 해결에서 '평가 대응'으로 조용히 이동하고 있다는 감각과 마주합니다. (팀리더 및 임원에게 잘 보여야 하기 때문이죠.)
평가 기준에 적응하는 능력은 회사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경쟁력입니다. 조직은 혼자가 아니기에 정렬은 필요하고 조화는 중요하며 방식은 의미를 갖습니다.
그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 늦게 눈치챘습니다. 자신이 기준을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기준에 의해 사고가 조정되고 있었으며 판단의 방향이 본질보다 안전을 중심으로 재배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회의 자리에서 그는 여러 번 말을 삼킵니다. 머릿속까지 올라온 문장은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에 부드럽게 수정되고 날카로운 문제 제기는 완화된 제안으로 바뀌며 근본적인 재검토 요청은 표현의 톤이 낮아진 의견으로 정리됩니다. 틀린 선택은 아닙니다.
조직에서는 방식이 중요하고 표현은 관계에 영향을 미치며 불필요한 긴장은 피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합리적 조정이 반복되는 동안 사고의 반경은 조금씩 줄어들고 판단의 기준은 조용히 이동합니다.
(평가 기준에 길들여진 사고는 극단적인 왜곡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대부분 지극히 합리적인 조정의 형태를 띠며 조금 완화되고 조금 둥글어지고 조금 무난해지는 방식으로 축적됩니다. 변화는 드라마틱하지 않기에 쉽게 감지되지 않지만 오랜 시간 반복되면 사고의 결 자체가 달라지고 판단의 출발점은 ‘무엇이 더 나은가’에서 ‘무엇이 더 문제없는가’로 이동합니다.)
그는 후배의 기획안을 검토하다가 잠시 멈칫합니다. 내용은 신선하고 접근은 과감하며 문제 정의는 날카롭지만 무심코 떠오른 문장은 ‘좋은데 우리 스타일은 아니네’라는 말입니다. 그 순간 그는 묘한 불편함을 느끼고 ‘우리 스타일’이라는 표현 속에 얼마나 많은 기준과 관성,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제한이 담겨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회사 안에서의 기준은 조직 안정성을 중심으로 작동합니다. 예측 가능성과 리스크 관리, 내부 정렬은 조직 운영의 핵심 요소이며 그 논리는 충분히 타당합니다. 그러나 회사 밖의 기준은 전혀 다른 축으로 움직입니다. 고객 반응과 시장 선택, 가치 입증은 생존과 직결되며 무난함은 때로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 차이를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몸으로 체감한 적은 많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외부 세미나에서 그는 다른 언어를 듣습니다. KPI 대신 시장 검증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보고 승인 대신 고객 반응이라는 기준이 제시되며 조직 설득 대신 가치 입증이라는 관점이 강조됩니다. 그곳에서의 판단 기준은 단순하고 냉정합니다. 실제로 통하는가. 그는 낯선 감각과 함께 이상한 해방감을 느끼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판단을 평가 기준 중심으로 해왔을까. 틀리지 않기 위해, 지적받지 않기 위해, 문제 되지 않기 위해 조정해 온 선택들은 비겁함이 아니라 성실한 적응이었지만 그 적응이 사고의 경계를 함께 좁혀 온 것은 아닐까?"
평가 기준은 필요합니다. 문제는 기준이 사고의 경계를 결정하는 순간이며 참고선이어야 할 기준이 절대선처럼 작동하기 시작할 때 사고는 안전해지지만 확장은 멈춥니다. 그는 이제 작은 연습을 시작하고 판단의 순간마다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 나는 지금 무엇을 피하려는가?
- 나는 무엇을 지키려는가?
- 나는 정말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하고 있는가?
'자생력'은 회사를 떠나는 순간 갑자기 생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회사 안에서 사고의 기준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자라며 기준을 이해하되 갇히지 않는 태도와 조직의 언어를 사용하되 본질을 놓치지 않는 시선' 위에서 조금씩 형성된다고 봅니다.
우리는 모두 기준 속에서 일합니다. 문제는 기준에 맞히는 삶이 아니라 기준에 갇힌 사고이며 사고가 갇히는 순간 성장은 멈추지 않지만 방향을 잃고 방향을 잃은 성장은 결국 불안으로 되돌아옵니다. 유념해야 할 사항입니다.
여러분들 생각은 어떤지요?
아래 질문에 대해 같이 생각해 봤음 합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댓글로 생각을 알려주시면 좋겠네요.
1) 나는 판단의 순간마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지?
2) '틀리지 않는 선택’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지?
3) 회사 기준이 사라져도 유지될 나만의 기준은 존재하는지?
다음 글은 이번 주 글 후속으로 '성과 중심 역량의 함정'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풀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