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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국 Nov 15. 2021

글쓰기는 나를 치유한다

책을 쓰는 이유 (1)

    책을 쓰는 목적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많은 것이 떠오르지만, 어느 것을 특정할 수가 없다. 책을 한 권 읽으면, 뭔가를 알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을 많이 읽다 보면 점점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게 된다. 책을 읽을수록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 몇 마디로 짧게 표현하면 사람들은 정보의 공백을 상상력으로 채워버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말이 점점 길어졌고, 나의 길어진 말을 들어줄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말을 짧게 했을 때 상대는 오해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오해의 가능성조차 나는 견디기 어려워한다. 말이 길어지면 상대는 '내가 이해를 못한다고 생각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상대가 온전히 이해했을 수도 있으나 아닐 수도 있기에 나는 성심껏 오해의 여지가 없게 하려 한다. 상대가 오해하지 않았을 가능성까지 고려하여 나의 말은 길어진다는 사실을 오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이런 오해의 도가니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래서 긴 이야기를 들어줄 거란 확신이 없는 사람 앞에선 종종 벙어리가 되었다.


    벙어리도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낯선 사람은 만나는 것조차 거부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많이 만나야만 정서적으로 충만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의 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만 만나도 삶이 충만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다. 정서적 충만감이 사람을 만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인간이 다른 종에 비해 우세한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건 물리적으로 더 강해서가 아니라, 많은 개체가 서로 협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역사가 흐를수록 인간이 이루는 공동체의 크기는 점점 커졌고, 현대의 인간 개체는 베어 그릴스나 김병만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타인과의 협력 없이 완전히 고립된 상태로는 생존하기 어렵다. 현대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까지 실시간으로 정보 교환을 할 수 있는 매우 긴밀하게 연결된 사회이다. 요컨대 생존을 위해서도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때 '할많하않'이라는 말이 많이 들렸었다.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다.'의 줄임말이다. 나는 그 말에 공감하면서도 말을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사람의 비겁한 변명처럼 들리기도 했다. 결국 말을 하지 않으면 할 말이 많았는지 아닌지 알 겨를이 없다. 나는 할 말이 많아도 말을 삼킬 때가 많았지만 변명처럼 할많하않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할많하않을 직접 사용해본 적은 없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길어진 말을 미리 적어놓기로 했다. 짧게 말해 생긴 오해의 책임을 벗어던지고 싶었다. 할많하않이라 말하지 않고, '할 말이 많습니다만, 공개된 웹 페이지에 적어두었으니 읽어주십시오.'라고 말하겠다. 책 쓰기는 나를 치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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