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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졸리고 힘들지만 희망을 얘기하고 싶어.

by 단아한 숲길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카페에 왔다. 아들이 코딩 무료 수업에 참여하게 되어서 세 시간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막상 자리에 앉았더니... 이런! 눈은 침침하고 허리는 불편하며 머리는 멍해서 그냥 집에 가고 싶어졌다. 야무지게 열심히 써서 제법 유명한 수필 공모전에 응모하려 했건만 진입 초반부터 난관이다.


매우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중년의 딸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반항했던 사연을 쓰고 싶었고, 외모 콤플렉스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글쓰기가 계속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글쓰기는 엉덩이 힘이 반 이상이라고 했던가. 피곤에 절어 침대를 그리워하고 있으니 무슨 글이 써지겠는가... 에휴, 아예 글을 안 쓰고 들어가면 오랜만에 주어진 귀한 시간이 아깝기에 마음을 비우고 브런치에 끄적거리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 브런치에 너무 소홀했었다. 미안해 브런치~)


피곤한 것도 있지만 잘 써야겠다는 부담감이 한몫하는듯하다. 며칠 전에 온수풀이 있는 숙소에 가서 놀았는데, 17년 전에 배운 수영을 다시 해보겠다고 버둥거리다 물만 잔뜩 먹었다. 심지어 제 작년까지 수월하게 해내던 배영마저도 자꾸 실패했다. 혼자 괜히 민망해져서 결국 잠수 놀이만 실컷 했다. 잠수 상태에서 하는 가위 바위 보 놀이와 숨 오래 참기 놀이등은 우리 가족 셋이 하기에 딱 맞는 유익한 놀이다. 그나저나 수영을 다시 배워야 할 텐데 엄두가 안 난다. 세상에는 배우고 싶은 것과 배워야 할 것이 참 많다.




수영을 잘하려면 마음과 몸에 긴장을 빼야 하듯 글을 잘 쓰려면 쓸데없는 긴장을 내려놓아야 한다. 허나 그게 제일 어렵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노트북을 확 닫아버리고 싶어 진다. 당연한 얘기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쓴 글이 오히려 잘 읽히는 것 같다. 수다 떨듯 자연스러운 글 말이다. 그나저나 아이 수업시간이 아직 50분이나 남았는데 어찌해야 할까? 눈을 들면 카페 통유리 밖 풍경이 거대한 스크린 속 영상 같다. 푸릇한 나무들이 싱그러워 보인다. 입춘은 이미 지났으나 진짜 봄이 오려면 한 달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할 듯. 거센 바람에 키 큰 소나무의 까실한 가지와 잎들이 흔들리고 있다. 좀 더 작은 소나무들은 온몸을 방정맞게 흔드는 중이다. 밖에 나가면 콧물이 줄줄 흐를게 뻔하다. 지금 여기, 따뜻한 레몬차 한 잔의 향긋함과 여유로움이 좋다. 제목을 알 수 없는 은은한 음악도 좋다. 그러니 그냥 버티기로.


모든 작가들이 존경스럽다. 작품성이 뛰어나면 더 좋겠지만 한 권의 책을 탄생시키기 위해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한 권의 책을 낳은 정성과 열정만큼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대부분의 경우, 책을 출간하는 일은 인생에 큰 경험이자 훈장이 된다. 나 역시 오래전부터 출간의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자가출판 플랫폼 부크크를 활용해서 책 표지부터 내지 디자인까지 다 해보고 싶지만 아직 시작조차 못했다. 시작하지 못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아직 글이 모아지지 않았다는 것. 시가 100편 이상 모아지면 출간 작업을 시작할 생각이다. 올해 안에 시집을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겠다. 시집 이후로는 에세이나 수필집을 출간하고 싶은 야무진 꿈이 있다.


하지만 야무진 꿈만 있는 게 아니다. 두려움도 있다. 사람들이 내 시를 비웃으면 어쩌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면 어떡하지? 이런 식의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의기소침해진다. 어떻게든 긍정적 암시와 현실적 노력으로 두려움을 뛰어넘어야 한다. 힘들지만 한 계단씩 올라야 한다. 오르고 싶다. 꾸준히 읽고 쓰면서 다듬어 나가다 보면 꿈 앞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해냈으니 나도 할 수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창밖에 나무들을 보면서 '희망'을 생각한다. 봄이 오는 것과 공모전에서 상을 받는 것, 첫 책을 출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내겐 희망이다. 희망은 지금 여기 바로 내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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