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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웃고 잘 우는 여자

눈물은 힐링이다.

by 단아한 숲길

20대 후반에 천상배필을 만나 결혼이라는 걸 했다. 결혼하면 바로 아이가 생길 줄 알았지만 우리의 신혼은 길게 늘어져서 9년을 채웠다. 그러다가 겨우 임신에 성공해서 10년 만에 낳은 아들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하지만 30대 후반의 첫 육아는 그리 만만치 않았다. 어려서부터 기초 체력이 약했던 터라 수시로 방전되는 체력과 싸워야 했다. 고열에 시달리다 링거를 맞기도 하고 대상포진에 걸려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토록 소중한 아이건만 네 살이 되어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을 때는 솔직히 해방감이 들었다. 드디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신나서 제일 먼저 글쓰기 수업에 등록했다. 수필과 시를 배우는 수업이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수업이 얼마나 좋았던지 그때 만났던 분들과 강의실의 공기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수업 중에 자신이 써 온 시나 수필을 낭독하는 시간이 있었다. 글 쓰는 실력을 떠나서 각자의 삶이 묻어 있기에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내 작품을 읽어야 할 때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겨우 읽고 나서 쑥스러워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놈에 눈물이었다. 다른 분들이 쓴 내용을 몰입해서 듣다 보니 슬픈 내용이 나왔을 때 훌쩍거리며 울곤 했다. 이때 다른 분들도 같이 울었다면 상관없을 텐데 주책 같이 나만 울고 있었다.


평소에 많이 웃고 자주 운다. 마흔 중반에 이른 지금도 그렇다. 감정이 풍부해서 그럴 거라고 스스로 너그럽게 진단하고는 있지만 때로는 불편하다. 웃음소리가 별나거나 요란하지 않으니까 웃음은 패스. 문제는 눈물이다. 남편한테 조금만 서운하거나 화나도 눈물이 콸콸 나고, 대인 관계에서도 가끔 주책없이 눈물이 솟아서 나조차 당황할 때가 있다. 상대방에게 미안한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심지어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주다가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어버린다. 처음엔 왜 우냐며 당황하던 아이가 이제는 적응이 됐는지 조용히 듣는다. 훌쩍거리며 읽어주는 엄마의 슬픈 목소리를... 특히 '성냥팔이 소녀'를 읽을 때는 백 프로 눈물이 나온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누구보다 빠른 눈물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 아, 나는 왜 이렇게 눈물이 많은 걸까?


아마 초등학교 5학년 때였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눈물샘을 바싹 말려버렸던 기억이 있다. 바보처럼 울지 않겠다고 독한 마음먹고 한동안 아예 감정의 문을 닫은 채 살았었다. 거의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다. 그게 안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쉬웠다. 하지만 이 개월쯤 되니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렸다. 혹시 그때의 부작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 본다.


눈물은 힐링이다. 답답한 마음을 씻어주고 화를 녹여준다. 한편으로 눈물은 청승이다. 한참 울다 보면 눈이 붓고 머리가 아프고 온 몸이 피곤해진다. 그러함에도 눈물은 소중하다. 눈물을 흘리고 싶어도 흘릴 수 없는 사람에게는 부러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눈물 많은 내가 조금은 못마땅하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주기로 했다. 따스하게 안아주기로 했다. 눈물 속에 또 다른 슬픔이 있을지도 모르니 다독여 주기로 했다.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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