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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를 써보았다.

화이자 백신 2차 접종 완료

by 단아한 숲길

화이자 2차 접종 한 지 나흘째다. 1차 접종 때는 팔이 조금 뻐근한 거 외엔 아무 증상이 없었다. 화이자는 2차 때 더 아픈 경우가 많다고 해서 걱정되었다. 전날 밤, 마음이 어수선하여 맘 카페에 '화이자'를 검색해 보았다. 화이자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들의 경험을 읽고 참고할 건 참고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화이자 백신 접종 후 일상이 힘들어졌다는 누군가의 글을 보니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 대부분 약간의 부작용을 겪은 후 괜찮아졌고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조금 더 심한 부작용을 겪고 있었다.


접종 당일 아침에 노트북을 켰다. '유서'라는 것을 써보자는 생각이 번뜩 들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한 번쯤 유서 쓰는 경험을 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래, 기왕 유서를 쓸 거면 지금이 좋겠다.'

뭔가 두렵고 생각이 깊어질 때 쓰면 더 잘 써질 것 같았다. 약 한 시간 정도 비장한 마음으로 유서를 썼다. 마음 같아선 두 시간 이상 써야 할 것 같았는데 출근 시간이 다가와서 어쩔 수 없었다.


먼저는 나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몇 마디를 전한 후에 남편, 아들, 부모님 순으로 남기고 싶은 말을 적었다. 마음에 물결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파도가 되어 찰싹거렸다. 파도 위로 비가 내렸다. 내 눈에서도 쉬지 않고 물이 흘러내렸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곁에 두고 산다. 의식하지 않을 뿐이지 삶만큼 가까이 있는 것이 죽음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영원한 이별, 그래서 더 슬프고 두려운 것이다. 유서를 쓰면서 마음이 무겁기도 했지만 겸손해지면서 정화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 날 쓴 유서가 진짜 유서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퇴근 후에 화이자 백신을 맞으러 갔다.




병원 예약 시간은 오후 6시였다. 태권도 학원을 마친 아들과 병원 건물 앞에서 만났다. 아들이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했다. 예약 시간까지 20분 정도 남았으므로 아이와 함께 건물 1층에 있는 떡볶이 집에 갔다.

"엄마, 반반 떡볶이랑 김밥!"

"반반 떡볶이가 뭔데?"

"매운맛이랑 순한 맛 반반."

"그래 시켜보자."

매운맛을 우습게 보았던 우리는 어묵 국물에 매운맛을 씻어내며 겨우 겨우 떡볶이를 다 먹었다. 아이와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는 일상조차 행복한 그림이 되었다. 예약 시간이 다 되어 아이와 함께 서둘러 병원에 갔다.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눈 코 입을 살핀 후 물으셨다.

"부정맥 있다고 하셨었는데 1차 때 괜찮았어요?"

"네, 거의 아무 증상 없었어요."

"그럼 이번에도 화이자 맞으실래요?"

"네? 아... 네."

어차피 화이자를 맞으러 온 거라서 그냥 화이자를 맞았다. 따끔하고 끝이었다. 다른 백신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때 의사 선생님께 물어볼 것을 그랬다.


2차 백신을 맞은 날 저녁, 머리맡에 타이레놀과 같은 성분의 약과 물을 준비해 두고 잠들었다.(타이레놀이 매진되어서 대용으로 구매했었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열이나 근육경련은 없었다. 심장 이상도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악몽 한 조각을 맛보았을 뿐이다. 찝찝한 맛이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며 스스로 위안했다.

두 번째 날에는 약간의 증상이 있었다. 더운 날씨에 움직인 게 무리가 되었던지 횡격막 쪽이랑 등 쪽이 콕콕 쑤셨다. 근육통이라고 하기엔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쿠욱 하고 깊게 찔리는 느낌도 여러 번 들었다. 옆에 있던 아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아프지 마. 엄마가 아프면 나도 아파."

말도 참 이쁘게 하는 아들을 꼬옥 안아주었다.

"걱정 마, 엄마 금방 괜찮아질 거야. 어서 집에 가자. 일단은 집에 가서 쉬는 게 좋겠어."

집에 오자마자 타이레놀과 비슷한 약을 먹고 쉬어 주었더니 바로 좋아졌다.

그 이후로 나른한 증상이 좀 있는 거 빼고는 지금껏 별다른 후유증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전문가들이 일주일 정도는 안정을 취해주는 게 좋다고 해서 무리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주사를 맞자마자 타이레놀을 먹는 경우도 많다던데, 몸이 항체를 만드는 걸 방해한다고 한다. (1차 백신 접종 때는 잘 몰라서 바로 먹었음) 열이 나거나 이상 증세가 없다면 6시간 이상 약을 먹지 않는 게 좋다는 내용을 유튜브에서 봤다. 어떤 백신이든 초기에 항체가 많이 형성되기 때문이란다. 다양한 정보가 넘쳐나고 게 중에는 잘못된 정보도 많기 때문에 지금 말하고 있는 정보도 백 프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도 예외 없이 코로나 팬더믹을 겪고 있으며 세상은 매우 어수선하다. 경제와 건강에 타격을 입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막연한 두려움과 싸우느라 다들 지쳐간다. 지인 중 한 사람은 백신 맞고 죽는 것보다 집안에 갇혀 사는 게 낫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좀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오죽하면 이렇게 말할까 싶다.


코로나 백신을 맞은 사람과 안 맞은 사람의 차이는 분명 있다. 혹여 변이 코로나에 걸리더라도 타격이 적다고 한다.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도 백신을 맞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고 하신다. 나 역시 두려움의 산을 넘어 조금 더 안전한 곳에 도착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이 산을 넘어와야 한다. 산을 넘다가 다치거나 쓰러지는 사람이 있을까 봐 염려되고 무섭다. 부디 모두가 안전하게 산을 넘어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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