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뽈뽈러 Aug 04. 2023

책 이야기 34. 도시의 얼굴들

# 허정도 지음


이 책은 옛 도시 마산(馬山)에 대한 이야기다.


구한말 1899년 개항을 하면서 시작된 마산이라는 곳을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에서부터 김춘수, 천상병 시인, 김수환 추기경 등 여러 유명인사들의 마산에 대한 흔적을 중심으로 당시의 지리, 문화, 정치, 사회적 상황을 짚어가면서 풀어쓴 책이다.


언급되는 시기는 순종이 다녀간 1909년에서부터 1960년 4.19 도화선이었던 마산 3.15 의거 당시의 김주열 열사 동선까지 대략 50여 년 정도이다.


그리고 미리 언급하자면 이 책은 전형적인 마산 관련 책이다.


마산에 고향을 둔 사람들, 거기다 마산 역사에 좀 더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읽기엔 입문서로서도 제격인 책이다.


물론 다른 지역의 역사라곤 하지만 우리가 익히 한 번쯤은 들어봤을 역사적 인물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글이 엮어졌기에, 타향인들도 읽기에 불편함보다는 그 재미와 함께 마산을 새롭게 알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1899년 개항(開港)을 통해 근대화의 길로 본격 접어든 마산은 2010년 마산시, 창원시, 진해시 세 곳이 통합 창원시(당시 110만 인구)로 재편되면서 도시로서의 명칭은 사라졌다.(*진해시도 역시)


다만, 창원특례시(현재 104만 인구) 내에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라는 행정구역 명칭으로만 남아 그 명맥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진해시는 진해구라는 명칭으로.)


이 때문인지 '마산시' 명칭 하에 최소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경우에는 마산에 대한 향수가 대체로 깊다고 할 수 있으며, 그래서 자신의 고향을 얘기할 때는 창원이 아닌 마산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듯하다.


이 책이 출간된 게 2018년이니까 통합 후 8년이 지난 시점인데, 그래서 점점 쇠락하고 잊혀가는 마산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련함이 그 배경이 아닐까 혼자 추측해 보게 된다.




마지막 왕 순종 / 한글학자 이극로 / 여장군 김명시 / 나도향의 마산 석달 / 고향의 봄 이원수 / 만석꾼 옥기환 / 시인 백석 / 임화와 지하련 / 독립지사 명도석 / 귀천 천상병 / 산장의 여인(*무명의 인물) / 꽃의 시인 김춘수 / 열사 김주열 / 천생 춤꾼 김해랑 / 추기경 김수환


이렇게 '도시의 얼굴들'은 열다섯 꼭지로 총 16인의 행적, 즉, 마산에서의 며칠에서부터 몇 년여 동안의 주요 행적을 당시의 대략적인 마산 지도와 함께 해당 인물이 처한 상황 및 사회적 상황을 함께 짚어간다.





- 사실 김춘수, 천상병 시인의 경우에는 마산과 관계가 깊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지금은 고교 학습과정에 문학 교과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옛 고등학교 시절 문학시간 때면 김춘수, 천상병 시인에 대한 문학 선생님의 설명은 정말 대단했기 때문이다.


김춘수 시인은 1950년대 초중반 마산고등학교 교사로서, 그리고 천상병 시인은 그 제자로서 마산과 모교와의 인연이 깊다는 점을 자주 언급했는데, 아마도 우리들에게 그런 학교와 학생으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주려는 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덕분인지 그 시절 김춘수의 '꽃', 천상병의 '귀천' 같은 시는 암송을 넘어 버튼만 누르면 바로 나오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했던 것 같다. ㅎㅎㅎ




- 김주열 열사의 경우에는 마산 사람이라면 절대 모를 수 없는 인물이다.


우리가 보통 대한민국을 일컬을 때 2차 대전 이래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라고 많이 얘기하는데, 그 축소판이 바로 마산이며, 그 한축으로서 민주화의 서막이 바로 1960년 마산 3.15 의거이다.


그리고 그 3.15 의거의 발화점은 말할 것도 없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시신이 되어 솟구쳐 올라온 김주열 열사였던 것이다.


지금도 마산에서는 가히 3.1절만큼이나 3.15 의거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3월 15일 전후에는 김주열 열사와 그 외 다수의 열사 및 수많은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행사와 기념행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마산의 역사와 정신은 면면이 계승되어 가고 있다.




- 김수환 추기경의 경우에는 2009년 초엽으로 기억하는데, 추기경께서 생을 마감하면서 그의 일생이 언론에 연일 나오면서 이 분의 첫 부임지가 마산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면서 반추했던 게,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신문배달을 했던 남성동 성당이 혹시 김수환 추기경께서 미사를 집전했던 곳인가였는데, 이 책을 보면서 그 추리가 맞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나의 살던 고향은~'으로 시작되는 '고향의 봄' 역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을 것인데, 이 노랫말을 이원수 시인이 만들었다는 것도 모르진 않았지만, 이 분을 창원 사람으로만 생각했지 마산과의 인연이 깊은 지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마산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 그리고 성년기의 일부를 보낸 마산 사람이었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 김명시, 옥기환, 명도석의 경우에는 귀향 후 지난 3년의 시간 동안 새롭게 알게 된 마산의 역사적 인물인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서 또 이 지역 발전에 지대한 공이 있는 유력자이자 명망가로서 지역사회와 각계의 노력으로 재평가되거나 지속적으로 관련 사료들이 발굴되고 부각되고 있는 인물들이다.


특히,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지역사회의 버팀목이었던 옥기환, 명도석 님에 대해서는 그간 전혀 몰랐던 터라 좀 더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도 일었다.




- 그 외 비교적 짧지만 임팩트 있는 시간과 흔적을 남긴 순종, 이극로, 백석, 임화와 지하련, 나도향, 김해랑, 무명의 산장의 여인 역시 이 책을 통해서 마산과의 인연을 처음 알게 된 인물들인데, 이런 마산과의 인연들을 어떻게 알아내어 자료를 찾아내고 글을 엮어냈는지 사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면서 읽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흥미롭게 읽다 보니 어느 순간엔 휴대폰으로 네이버 지도 앱을 켜놓은 채 인물들의 행적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보는 재미가 정말 쏠쏠했다.


물론 마산 사람이기에 그럴 수 있었지 싶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친구의 한 모임 참여 권유 덕분이었다.


마산 관련 연구와 활동을 하는 30여 년 역사의 한 단체 실무를 맡고 있는 친구가 어느 날 정기 월례회 일정과 함께 강연자 정보를 알려줬는데, 그분은 허정도 박사였다.


이 분은 마산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활동한 건축가이면서 시민사회 활동으로도 많이 알려진 분인데, 나 역시 지역 언론 칼럼을 통해 그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검색해서 보니 이 책의 저자라는 것을 알게 됐고, 목차를 보면서는 평소 마산에 대해 가져왔던 궁금증들이 이 책을 통해 해소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으로 집었는데, 시종일관 그간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소하고 또한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을 흥미롭게 새길 수 있어서 정말 유익했던 책이었다.


무엇보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이 마산과 다채롭게 엮어있다는 점이 지금 마산에서 새롭게 살아가는 나의 입장에서는 나름 삶의 재미와 풍성함을 안겨준 책이라고 느껴졌다.


그런 점에서,



.......



좋다, 마산.



2023. 8. 4.



※ PS. 기억의 또 다른 한 대목.

- 3년 전 귀향 후 어느 날, 어린 시절 살던 동네와 모교가 궁금하여 잠시 짬을 내 홀로 투어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마산고등학교 담벼락 옆길, 봄이 되면 화려한 벚꽃길로 변모하던 그 길의 도로명이 '심온길'인 것을 보고 설마 세종대왕의 장인어른인 그 심온일까 궁금함을 안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그 '심온'은 천상병의 호였다는 것을. 즉, 마산고 담벼락 길은 바로 천상병의 길이었던 것이다. 저자인 허정도 박사께서 내가 정말로 책을 읽은 게 맞다면서 웃어주던 그 대목, 석 달이 지나서 되돌아보는 그날의 책 이야기 34.

매거진의 이전글 책 이야기 33. 줬으면 그만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