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등 지중해 연안국에서 발생하는 난민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난민들을 최일선에서 접하면서 그들을 돌보고 치유하는 의사 피에트로 바르톨로의 이야기다.
람페두사.
우리로 따지면 마라도와 같은 이탈리아 최남단의 자그마한 섬인데, 이곳은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 독재, 내전, 가난 등을 피해 유럽에서 새 삶을 이어가려는 난민들의 1차 목표지가 되는 곳이다. 본국인 이탈리아보다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에 더 가깝다 보니 난민들은 필사적으로 이곳에 당도하려고 한다. 때문에 난민들 입장에선 '유럽의 관문'으로도 일컬어지는 곳이다.
람페두사. 빨간색 원 안의 가운데 섬. 구글맵 참조.
난민(難民)이라는 표현 속에서 이들의 이동경로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특히 바다를 건너 람페두사로 향하는 경로에서는 밀항, 인신매매, 장기밀매, 납치, 살상 등 더 비극적이고도 비인간적인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래서 그간 뉴스를 통해 단편적으로 접했던 실상이 이 책에선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된다. 바다를 건너다 난파로 인해 홀로 남겨진 신생아, 바닷속에서 자식의 손을 떨쳐버렸다는 비통함에 사무친 부모, 폭풍우로 인한 난민들의 떼죽음과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시신, 그리고 인신매매 및 장기밀매, 온갖 폭행 등.
더 나은 삶을 향한 여정이 오히려 죽음과 참극에 이르게 하는 현실에서 저자 피에트로 바르톨로는 자신의 감정을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표현한다.
2010년 말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시위, 그리고 그 실패에 따른 지중해 연안국 - 튀니지,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등 - 의 난민사태는 람페두사를 일약 전 세계적 뉴스의 중심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2013년 7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후 첫 행선지로 이곳을 정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난민과 관련해선 꽤 유명한 사진이 있다. 서너 살 된 어린아이가 바닷가에서 엎드려 숨져있고, 그 옆에 관계자인듯한 어른이 아이를 지켜보며 뭔가를 적고 있는 모습. 아마 이 사진이 지중해 연안의 난민사태에 전 세계적 관심을 촉발한 계기이지 싶은데, 이 책을 읽기 전엔 람페두사 섬이 그곳인 줄 알았다. 한데 다시 찾아보니 거기는 튀르키예 휴양지의 바다였다. 아마 접근성 면에서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로 가는 것이 최적의 경로라서 난민들이 이쪽으로 몰리는 것 같다.
저자 피에트로 바르톨로는 람페두사 섬에서 태어나 시칠리아에서 학업을 마친 후 다시 람페두사로 돌아온 의사이다. 조상 대대로 람페두사에서 살아온 집안의 후손으로서 동료 의사인 아내와 함께 람페두사로 돌아와 난민들을 위한 인도적 행위들을 1991년부터 이 책의 현재 시점인 2016년까지 25년 동안 계속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람페두사와 난민 그리고 저자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만들어진 '화염의 바다'가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상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조만간 시간을 내어 이 영화도 보고자 한다.
사실 난민문제라고 하면 우리나라도 몇 년 전 화제에 오른 적이 있었다. 사회적 논란 및 갈등과 함께.
인류애적 관점에서 본다면, 국경, 지역, 가정을 뛰어넘어 보듬고 안아야 한다는 면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실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개방성이 사실 쉽지만은 않은 점도 있기에 그런 논란과 갈등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의 경우도 비슷한 것 같다. 메르켈 총리 시절의 독일처럼 국가 노동인력 관점에서 난민을 수용하는 점도 있듯이, 각국이 처한 현실과 여론에 따라 난민을 대하는 상황은 천차만별이고 또 녹록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한편, 그간 난민이라고 하면 사실 시리아 난민에 대한 것이 다수라고 할 수 있겠는데, 최근 시리아의 압제와 독재가 종식되고 새로운 물결에 대한 기대감이 일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는 점에서 앞으로는 난민이 줄어들고 또 귀향을 통해 다시 안정적 삶을 꾸려나가길 인류애적 관점에서 소망해 본다.
섬사람이라고 하면, 곧 바다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삶에 대한 조명을 통해서도 그런 점을 보여준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바다를 통해 삶을 영위해 온 람페두사 사람들. 얼굴에 튀긴 바닷물이 말라서 하얗게 소금으로 얼룩진 그들의 얼굴들. 그리고 그런 힘겨움에 부대껴 눈물이 흐르면서 나타난 아버지의 소금 눈물.
그리고 그런 소금 눈물이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억척의 길을 나선 난민들의 소금 눈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면서 이 책은 끝마친다.
여러 말보다, 이 책을 읽고선 람페두사 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글맵을 찾아보니 오래전부터 한 번쯤 가보고자 했던 몰타 섬 인근에 람페두사가 있는 것을 보고선 더욱더 몰타보다는 람페두사가 생각났다.
여전히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억척의 여정이 계속되는 그곳이라서.
2024. 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