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하 저
몇 년 전, TV 채널을 돌리다가 김영하 작가가 홀로 나와 청중들 앞에서 15분 정도 강연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떤 사람이길래 저렇게 인문학적 견해를 섞어서 얘기를 잘하는지 점점 빠져들어 끝까지 다 봤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알쓸신잡'이라는 TV 프로그램에도 고정 패널로 나오길래 검색을 했더니 그제야 유명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올해 초, 서점에 들렀다가 판매대에 이 분의 소설이 아닌 에세이집이 놓여있길래 그냥 특이하다 싶어서 구매를 했다. 이 책과 '여행의 이유' 두 권을. '여행의 이유'를 먼저 읽기 시작했지만, 또 한 번의 마음 생채기에 마지막 부분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가출이자 여행이었던 떠남을 감행하면서, 나는 제주도에서 이 책을 먼저 마무리했다.
이 책에는 군데군데 시칠리아의 사진들도 있고, 갖가지 경험담과 여행지의 특색들 그리고 김영하 작가의 인문학적 소양이 듬뿍 담긴 문장들이 있어서 나는 읽는 내내 즐거웠다. 그리고 그리스-로마에 대한 신화부터 역사에 이르기까지 시칠리아 곳곳을 그것으로 풀어낼 때에는 이 분의 지적 역량이 부럽다는 생각과 함께 이 참에 나도 오래전부터 궁금해했던 그리스-로마에 대한 것들을 제대로 살펴보자는 결의가 생겨났다. 그래서 예전에 사뒀던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과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뭐부터 시작할까?
시칠리아는 나도 가보고 싶은 곳이다. 이 글처럼 대부, 마피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도 어렸을 때부터 세계지도, 세계사, 지구본 보는 것을 좋아하여, 시칠리아라는 곳을 왠지 모르게 호기심 가득 살펴보았었다. 2002년 여름, 홀로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이탈리아는 베니스, 피렌체, 피사, 로마, 아시시, 나폴리 등지로 7일 동안을 다녔는데, 마지막까지도 시칠리아를 들어갈지 말지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워낙 거지처럼 다닐 때라 유레일패스 일정과 비용 때문에 아쉬움을 머금고 먼 훗날을 기약했었다.
그런 시칠리아를 18년 만에 다시 관심을 갖고 간접 체험을 하게 되니 뭔가 신선한 느낌이다. 책 초반부에 김영하 작가의 아내를 통해 이탈리아 철도 상황이나 역무원들의 태도를 보여주고 또한 그에 분통을 터뜨리는 반응에선 절로 웃음이 나왔다. 2002년의 상황이 떠올랐는데, 십분 공감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한편으로 시칠리아 사람들의 여유와 친절이 예상치 않게 나타나 마음을 녹여내는 대목에서는, 나 역시 유사한 경험이 있었는데, 마치 이 나라가 나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요즘 말로 뭔가 밀당을 하려는 건가 싶은 느낌이었다.
이처럼 이 책은 예전 기억도 되살려주면서도 새로운 호기심과 함께 인문학적 욕구도 샘솟게 한 책이라고 하면 될까? 어지럽고 심란하고 복잡한 마음을 한가득 안고 떠난 곳에서, 마침 마음이 다시 회복하는 시점에 읽은 터라 이 글이 더욱 유쾌하고 재미있게 다가왔다.
이야기를 말랑말랑하면서도 교양 있게 풀어내는 작가를 보면서, 나도 이런 소양을 기르고 다져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내 삶도 이전과 다르게 좀 더 밝고 긍정적이면서도 보다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2020. 12. 18
2020. 12. 30. 연말을 앞두고 올려보는 앞선 독후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