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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7. 여행의 이유

# 김영하 저

by 뽈뽈러


시칠리아 여행기 같은 전작과 다르게, 여행 그 자체에 대한 사유를 담은 글이기에 쉽게 읽히면서도 돌아서면 막연한 뭔가만 남는듯한, 그래서 다시 읽으면 이해하다가도 또 잊으면서 다음 글로 이어나가는 독서였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는.


많은 글을 읽은 작가답게 한 꼭지당 두서너 개씩 인용하는 책들과 인문학적 소견들이 읽는 내내 여러 생각들을 하게 만들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나도 어느 순간엔 이런 글을 쓸 수 있겠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젠가부터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 인상적인 장면이 나올 때면 그것이 나온 페이지 끝을 접는 버릇이 생겼다. 책을 다시 읽어보기에는 부담스러운데 이런 것들만이라도 살펴보면 글 전체 흐름을 복기하는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도 접어놓은 부분을 다시 읽었다.


2주 전에 4분의 3 정도 읽은 후, 나머지를 이제야 마무리하다 보니 앞서의 내용이 더욱 가물했기 때문이다. 여행-달아남, 여행-현재적 삶, 여행-인생의 원점, 여행-일상을 여행할 힘, 여행-정신의 고양. 뭐 이런 구절들이 눈에 띄고 떠오른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여행의 이유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일반인들에 비하면 많은 곳을 다니고 또 다니려고 하여 국내외를 꽤 가본 것 같다. 작가처럼 어릴 적 환경이 유동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태생적으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것 같다. 살펴보고 경험하고 관찰하여 사람들이, 집단이 어떻게 살아가고 움직여나가는지를 접하는 것. 이것이 내 삶의 원동력이자 에너지였던 것 같다.


특히, 역사적인 순간을 역사적인 곳에서 내가 직접 접하는 것. 이것에 나는 많이 목말라했다. 그래서 여의치 못할 때의 아쉬움을 크게 삼켰던 것 같다. 물론 20대, 30대, 40대를 거쳐오면서 점점 덜해졌고, 지금은 그런 정서가 거의 메말랐다고 해야 할까. 그저 여유로움을 조금은 새로운 곳에서 만끽하자는 정도일 뿐이다. 꽤 오랜 시간 삶의 열정이 사라져서 그런가 싶다.


다만, 최근의 제주도 여행을 생각해보면 앞서 여행의 도식과 거의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다. 할 수 있는 여건이라면 사치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떠남을 통해 삶을 회복하고 새롭게 세상과 소통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것을 경험한 귀중한 여행이었다. 뭔지 모를, 아직은 희미하지만, 어떤 작은 열정 내지 목표 그리고 현재적 삶을 위한 노력 등이 마음으로부터 샘솟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시공간을 직접 접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직장을 이런 것이 가능한 쪽으로 구하려 했고 그것의 최적화된 곳이 지금의 직장이라서 10년 정도는 즐겁게 다녔다. 하지만 근래 4,5년간 직장이 처한 상황과 나 스스로의 매너리즘 등으로 인해 열정과 열의가 바닥을 헤맸었다. 그나마 최근 1,2년부터 바닥을 찍고 다시 올라오는 수준이랄까.


뜻하지 않은 육아휴직도 일상으로부터의 큰 변화이고 따라서 여행과 다름없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 기간 동안 여행자로서 그 편익을 잔뜩 얻고 흡수하여 가정과 직장 그리고 내 삶에 있어서의 모든 열정을 다시 회복하고 발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것이 현재 내 여행의 이유이다.



2020.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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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30. 연말을 앞두고 올려보는 앞선 독후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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