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가 멸시받는 슬픈 시대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칼의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는 「눈먼 자들의 도시」를 소설로 엮어냈다. 그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도시에 갑자기 눈이 안 보이는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하는데 첫 번째 환자는 차를 운전하던 중 실명하게 돼 병원에 가봤지만 의사는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고, 의사도 간호사도 그만 눈이 멀어버린다. 이 전염병이 급속히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자 두려운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러자 정부는 눈먼 자들을 모아 이전에 정신병원으로 쓰이던 건물에 강제로 환자들을 격리수용한다. 그리고 무장군인들에게 감시하게 하고, 탈출하면 사살해도 좋다고 말한다. 그 후 안과의사의 부인은 눈이 안 보이는 척하면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태의 전개를 생생하게 목격하게 된다. 가공된 소설의 내용인데 그 전개가 근자의 우리네 삶과 아주 일맥상통해 기시감(旣視感)이 일었다.
과학과 기술문명의 진보로 육로와 바닷길 하늘 길을 통한 이동수단과 통신과 방송 등의 연결수단은 세계화를 촉진했다.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원자재와 자본의 결합을 앞세운 세계화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환영받았고, 원자재나 물류나 공산품은 국경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서로 윈윈하는 시스템을 거부할 명분은 누구에게도 없었고, 이런 세계화의 장점은 지구촌이라는 말에 가장 걸맞은 훈장처럼 빛났다. 그러나 ‘다 된 밥에 코 빠뜨린다’는 말처럼 현재 코로나19는 전 세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기에 세계화의 치부가 드러나고, 일순간 세계화는 몹쓸 서자 취급을 받게 되었다. 세계화를 맛본 사람들이 다시 세계화의 영화로웠던 시절을 찾겠지만 예전으로 돌아가려면 2~3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올 초 중국의 우한폐렴이 박쥐 혹은 천갑산을 숙주로 해서 발생했다거나 아니면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우한의 바이러스연구소에서 시작되었는지 명백히 밝혀진 것은 없다. who(세계보건기구)도 조사차 중국을 찾아갔다는 뉴스는 들었지만 아직 결과 발표는 자세한 소식이 없는 듯하다. 공산국가 중국은 시진핑의 독재를 강화하며 일대일로 정책으로 세계에 중국몽의 실현으로 세계 최고의 패권 국가를 이루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과 힘겨루기에 온힘을 쏟아 붓는데 이런 방역에 협조하는 눈치는 보이겠지만 결국 우한바이러스라는 명칭을 채택하지 못하도록 할 개연성이 짙다. 필자는 정확한 원인과 사태진단이 아주 중요하고, 그래야 재발방지가 가능하고, 또 다른 변종바이러스의 발생을 차단할 수 있다고 본다. 백신 개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숨기려다가 더 커지고, 끝끝내 감추려다가 도끼로 제 발등을 찍게 된다.
한국은 수출주도형 국가인데 ‘코로나 19’로 각국의 국경이 폐쇄돼 나라의 경제활동이 급격히 위축돼 곳곳에서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경제만 아니라 교육과 보건 등 내우외환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 이전에 지나보지 못한 미증유의 사태에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경제를 살리려니 보건이 무너지고, 방역을 철저히 하려니 내수시장이 말이 아니게 쪼그라들고 있다. 어려울 때 정부가 어렵다고 말한다고 무시할 국민은 없다. 진영 논리에 매몰되고 상대진영과 척진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내 탓이오’를 토설하며 난관을 헤쳐 나가면 좋겠다. 그리고 방역에 피해를 주는 단체와 지도자들도 방역의 비상시국에 정부 정책에 자진해 협조해야한다. 눈먼 자들의 도시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의 깨어있는 선진의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