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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 마음 회복하기를

나의 삶 하이라이트 8. 오늘은 당신에게 어떤 하루였나요?

by 운아당

집에 오는 길에 동네 카페가 있었다. 따뜻한 분위기에 한 번은 꼭 가야지 생각했었다. 어제가 바로 그날이었다. 문 앞에 가니 카페에서 음악소리가 묻어 나온다. 들어가려고 하는데 옆에 세워둔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그림책을 읽는 소모임이었다. 그림책! 마음에 불이 하나 켜지는 것 같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미 날짜가 지난 것이 아닌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카페는 한산했고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나는 안쪽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림책이 많았다. 눈으로 제목을 읽어 가는데 ‘어떤 약속’이라는 책이 내 눈에 들어왔다. 책에서는 어린아이 둘,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일출을 보기로 약속하고 떠나는 내용이었다. 첫 장에는 새벽어둠 속 아이들이 깨어나는 모습이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그림 속에 빛을 비춰주고 있었는데 온 가족이 그 빛을 따라 나아가는 것 같았다. 가족들은 산을 올라가서 떠오르는 태양을 만나게 된다. 동일한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는 가족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들었고 마침내 해를 맞이했을 때 희망이 실현되는 순간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아이들이 새벽 이른 시간에 과연 자발적으로 갔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 그림책에는 말이 많지 않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말뿐만이 아니다. 그 글을 보듬어 주는 그림이 이야기의 배경을 말해 주고 있다.


나는 에전에 '미영이', '하루거리', '앵그리맨'과 같은 그림책들을 읽고 충격을 받았었다. 이 그림책들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많은 생각과 여운을 준다. 그림책이 다룰 수 있는 이야기들은 너무나 다양하다. 어린이들의 이야기라고 해서 환상과 희망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미영이’는 어릴 적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다가 재회를, ‘하루거리’는 부모님이 안 계신 미영이가 아플 때 친구들이 힘을 합쳐 병을 낫게 해주는 이야기였으며, ‘앵그리맨’은 가정폭력이 어린아이에게 얼마나 큰 두려움인지 잘 보여준 그림책이었다. 세 책 모두 다 마음 깊숙이 눌러 두었던 내면의 감정을 흔들어 깨울 수 있는 작품들이다.

나는 그림책 소모임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포스터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다정한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나는 작가님에게 그림책 모임 날이 지나버려 아쉬웠다고, 그 모임에 참석하고 싶은데 언제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반가운 목소리로 2월 모임이 일요일에 있다고 하며, 자신의 카페에 자료가 있으니 친구 추가해 볼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참석하겠다고 했다. 마음이 두근두근하게 뛰었다.

모임 일자가 되었고 진주의 ‘죽향’이라는 찻집에서 모였다.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있는 아늑한 요새와 같은 방이었다. 작가님은 공교롭게도 그날 내가 커피숍에서 보았던 '어떤 약속'이라는 그림책을 모인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책을 가지고 와서 읽었다. 한 페이지씩 넘기면서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글을 낭독한 후,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느낀 바를 말했다. 놀라운 것은 같은 것을 보아도 느끼는 것은 모두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 책에서 가족의 화목함을 느낀 사람도 있고,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서 부모를 따라 불평 없이 산을 올라가는 것이 대견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책의 색감이 어두운 분위기인지라 아이들이 부모의 강요로 올라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서로 느낌이 다름에 놀랐다.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에 산을 올랐던 책 속의 그 가족은 어떤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했을까. 작가님이 '그렇다면 여러분은 올해 이런 사람이 꼭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냐. 고 물었다. 피부가 고운 미모의 사업가는 그저 마음이 편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고 이야기했고, 멀리 보성에서 온 사람은 자연과 함께 사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나는 올해 내가 오랫동안 외면했던 어린아이의 마음을 회복하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종종 미성숙하고 잘 토라지기도 하고 쉽게 상처받기도 하지만, 순수하고 따뜻한, 쉽게 사랑하고, 또 쉽게 용서하는 재생력이 강한 어린아이의 그 마음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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