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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찬 Apr 05. 2024

내 말 좀 들어주세요<너 왜 울어?>

그림책, 바실리스 알렉사키스 글, 장마리 앙트남 그림, 진성희 옮김, 

빨간 손톱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이, 그림자는 아이의 얼굴 가까이 와있다. 아이는 즐겁지 않다.

책 표지의 그림을 보고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아이를 가리키는 손톱은 빨갛고 뾰족하다. 책의 맨 위 쪽에 검지 손가락 끝만 보이는데 손가락의 그림자는 아이의 얼굴까지 와있다. 아이는 움츠려 있고 손은 뒤고 숨기고 있다. 바지는 반쯤 내렸는지, 부츠를 신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코트 입어! 

첫 페이지를 열면 이 외마디가 책 속에서 터져 나온다. 날카로운 말이 심폐를 스쳐간다. 아이는 빨간 모자를 집어 드는데, 엄마는 '어서 가서 장화 찾아와!' '장화 못 찾으면 엉덩이 하나 맞고 집에 있는 거다'라고 다그치며 소리친다. 


아이가 하나의 행동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일을 하라고 뾰족한 말을 한다. 아이가 밖에 나가자고 한 것 같지가 않다. 아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이에 빠져 있다. 엄마의 생각임에 틀림없다. 바깥에 나가서 활동을 좀 하고 오는 것이 교육상 좋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아이가 밖에 나가 놀기를 바란다고 생각한 것일까. 전자인 것 같다. 


아이는 목도리, 신발, 우산 등을 뒤적이며 장화를 찾고 있다. 그러자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쏟아진다. 

'엄마는 나가고 싶지 않은데, 할 일도 잔뜩 있는데, 날씨도 좋지 않은데 너를 위해 나가는 거야!'라고 장대같은 비처럼 말들이 내리 꼿힌다. 


책 속에는 엄마의 고함 소리만 요란하다. 아이는 그림만 보이고 말은 한마디도 없다. 온전히 엄마의 폭탄 세례를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엄마의 언어 공격에 아이는 상처 투성이다. 


밖으로 나와서 빨리 따라오지 않는다고 야단친다. 땅에 있는 끈을 주웠다고 더럽다고 혼낸다. 말 잘 들으면 슈크림 빵을 사준다고 했다가, 말 듣지 않으면 사주지 않겠다고 한다. 말을 듣지 않으면 아빠에게 일러바칠 것이라고 협박하기에 이른다. 


아이의 얼굴에는 눈물이 떨어진다. 엄마는 '너를 위해 밖에 나왔고, 너를 위해 내가 함께 해줬고, 네가 사달라는 슈크림빵도 사주었는데 웃어야지, 뭐가 부족해서 우느냐'고 윽박지른다. 너 왜 울어?


마지막 페이지에는 아이가 엄마 치마폭 속에 갇혀 있는 그림이다. 치마폭에는 창살이 그려져 있다. 아이는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엄마의 치마 속으로 들어가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너무나 흔한 이야기다.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바쁜 일상에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이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엄마의 틀 안에서 꼼짝 달싹도 못하게 아이를 통제하고 있다. 


아이들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가 느껴져서 죄책감과 후회의 감정이 올라왔다. 평소에 일어나는 그 흔한 일을 글과 그림으로 펼쳐보니 끔찍하다. 방어막 없이 엄마의 화살 같은 말이 아이에게 마구 쏟아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내 몸과 마음이 아픔을 느꼈다. 


이 그림책은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필요한 교육서인 것 같다. 아이는 표현을 못할 뿐이지 소통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온몸으로 말하는 아이의 언어를 잘 살펴서 서로 소통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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